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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숄더 Sep 05. 2024

누구에게나 사랑스러운 모습이 있다.

지지받지 못한 기억

유년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조용히 분위기를 살폈다. 새엄마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TV를 켰다. 평소 같았으면 티브이를 끄라고 소리를 질렀을 텐데, 오늘은 조용했다. 나는 잠시 안심하며 TV를 보고 있었지만, 이내 그녀가 다가와 TV 코드를 뽑으며 화를 냈다. 익숙한 일었이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분노와 서운함이 섞인 감정을 뒤로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나. 납득이 안 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마음대로 울 수도 없었다. 그녀는 방 문을 열고 우는 나를 또 한 번 다그쳤다. 아마 아빠가 오실 시간이 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이불 속에 들어가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리고 억눌린 감정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삼키려다 체하기로 한 듯 가슴이 답답해서 몇 번이나 주먹으로 두드렸다.

성년

나는 사람들이 그냥 하는 말, 나를 캐내려는 질문,
돌려서 하는 말을 인식하지 못해 곧이곧대로 대답하고 나중에 후회한다. 나는 상대의 말에 숨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단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솔직하게 얘기하고 아니면 말고.

“네가 피곤하잖아~/ 나 안 피곤한데?”
나중에야 알았다. 나를 배려하는 것 같지만 본인이 귀찮고 피곤하다는 것을.

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지만 눈치가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돌아보면, 아마도 어린 시절의 감정적 억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저는 새엄마와의 갈등 속에서 늘 조심스러워야 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력적인 감정의 폭발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늘 그녀의 눈치를 보고, 언제 혼날지 몰라 불안해하면서도, 정작 그 감정 속에서 내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고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썼습니다. 말에 숨은 뜻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그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대화를 이어갈지 여기서 그만둬야 할지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했어요.


저는 분위기도, 타인의 감정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표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게 제일 쉽고 편했거든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저는 "다 좋아"로 일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제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화를 내야 할 순간에도,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나부터 '나'를 무시하고 '나'와 친하지 않은데 타인의 감정을 읽고 타인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저와 먼저 친해져야 했어요.


그때 소설『더 메이드』몰리를 만났습니다.


#더 메이드

이 소설의 주인공 몰리는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하는 메이드입니다. 몰리는 일에서는 매우 능숙하지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는 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녀는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엉뚱한 말을 하거나 분위기를 읽지 못해 어색해지곤 합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하게 보지만, 몰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몰리는 혼자 있을 때는 문제없이 모든 일을 해내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서툴기 그지없습니다. 그녀는 사적인 대화나 스몰 토크에 약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몰리는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해나가며,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결국 자신만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너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너 키우기 힘들다
-너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스스로의 행동에 자신이 없고 타인의 반응에 자주 흔들리는 사람은 지지받은 기억이 부족해서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몰리의 이야기는 그런 저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어요. 소설 속에서 몰리는 현실에서 저와 같은 고민을 가졌지만, 그녀는 자신다움을 유지하며 계속 살아갑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몰리를 보는데 자꾸 웃음이 나더라고요. 어쩌면 나도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보기로 했어요. 대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녀를 통해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는 것과 내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몰리가 그랬듯이, 저도 사람들에게 완벽한 관계를 형성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몰리는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진실되게 살아갔습니다. 그 모습은 저에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관계를 맺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서툴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책하기도 해요. 하지만 조금씩 저 자신을 존중하고, 지지받지 못한 상처에서 오는 두려움을 마주하며 천천히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더 이상 숨지 않으려는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여러분 중에서도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저처럼 어릴 때의 결핍이 어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미치거나 이후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몰리처럼 서툴러도 괜찮고, 나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충분히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존중하고 내 방식대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조금씩 믿어보세요. 결핍에서 오는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지 않도록,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세상과 소통해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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