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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숄더 Sep 02. 2024

나도 글을 쓸 수 있을까

내면아이

중학교 1학년. 내가 다니던 학교는 운동부 특화 학교였다. 첫 등교하고 일주일. 운동부는 신입생을 뽑기 위해 각반을 돌며 운동부 홍보를 했다.
“운동부에 들어오면 학비는 면제입니다”
나는 학비 면제라는 말에 솔깃했다. 내가 운동부에 들어서 부담을 줄여드리면 날 예뻐해 주겠지? 신나는 마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새엄마에게 이러쿵저러쿵 얘길 했다.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칭찬해 줄 거라 기대했는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그럼 그냥 안 해야겠다’

며칠 후, 새엄마는 나에게 화를 냈다. 이유는 운동부 얘기하더니 왜 운동부에 안 들어가냐는 거였다. 사실 운동보단 공부가 좋았다. 단지 칭찬이 받고 싶었던 것뿐인데 오히려 혼이 났다. 그 뒤로도 계속 혼이 났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운동부에 지원했다. 운동부는 1년을 버티다 그만두었다. 운동도 잘하지 못했지만 소심하고 눈치 보는 내 성격을 답답해한 선배가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운동하기가 너무 싫었다. 그만둔다고 말하는 것도 나에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새엄마의 고함소리를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동하는 게 더 싫었기 때문에 새엄마가 지칠 때까지 버티기로 했다. 다행히 아빠는 내 편을 들어주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단짝이 생기고 무리가 지어져 있었는데 나는 운동만 하느라 교실에 단짝이 없었다. 나는 친구가 필요했다.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거지?? 큰일이다. 
겨울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단짝 없이 대충 지내는 중이었다. 점심을 같이 먹을 정도의 무리는 생겼지만 1년 가까이 단짝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은 생각나는 게 거의 없다. 별로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유치한 나의 생각과 행동들. 주변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아직 그대로일까? 하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직장 동기들과 어울리며 서로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나만 동떨어지는 느낌. 20살에도 30살에도 그랬어요. 저는 멈춰있는 기분이었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몰랐습니다. 관계의 방향은 늘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외로워졌습니다. 저의 자존감은 끝없이 낮아지고 있었어요. 그 뒤로 일련의 사건들마저 겹치면서 위기에 봉착했고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선생님은 가슴속에 11살의 제가 있다고 하셨어요. 이해나 수용받은 경험이 없어 내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삐져있는 아이가 있다고요.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이 태도가 되는 나. 몸만 크고 정신은 성숙해지지 못한 어른아이가 된 이유죠.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때 책을 만났습니다.


#여름과 루비

 소설 <여름과 루비>는 7살 여름이의 유년 이야기입니다. 어쩌다 한번 들렀다 가버리는 아빠. 그리고 그의 딸 여름. 여름이는 고모집에 맡겨져 고모의 딸 겨울언니와 사이좋게 지내며 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젊은 여자 한 명을 데려왔습니다. ‘많은 여자들 중 하나일 테지’. 잠깐 만나다 헤어질 거라 여겼던 그 여자와 셋이 가정을 꾸립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름이를 아끼고 보살필 만큼의 어른도 아니었죠. 늘 7살 여름이와 말싸움을 하는, 아빠를 가운데 두고 경쟁하는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듯했습니다. 그런 새엄마 밑에서 여름이가 겪는 외로움과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유년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해 집어 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슨 숨에 유년이 박혀있다. 붉음과 빛남을 흉내 낸 인조보석처럼. 박혀 있다. 어른의 행동? 그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p72


'나의 유년'을 안타까워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있을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와 공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나도 내 이야기를 글로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 책을 읽으면 내가 더 나은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는 마음으로 커졌습니다. 그렇게 막연한 기대감으로 책을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작가의 소양 중 하나로 "불우한 유년시절"을 꼽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글쓰기를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까요?ㅎㅎ


 여러분 중에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느라 힘든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 한 권이 모든 상처를 치유해주지는 않겠지만, 책을 읽으며 주인공이 되어보고, 비슷한 캐릭터를 만나면서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로 치유받고 성장하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서툴고 느리더라도 나를 이해하고, 내 안의 상처를 조금씩 다독이며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치유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애쓰고 있는 여러분 자신을 믿어주세요. 모든 변화는 그렇게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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