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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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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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크루가 되는 트레이닝을 받는 동안 머물게 되었던 호텔은 4성급 호텔로 일반 비즈니스호텔 보다 규모도 크고 체계적인 호텔의 자매 호텔이었다.
각국에서 온 트레이니들로 인해 하나의 호텔로는 절대 수많은 인원들이 커버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조이닝하던 무렵에는 예를 들어 한국에서 5월 25일에 오는 스무 명 남짓만이 있는 게 아니라, 27일에 23명의 한 팀 30일에 22명의 또 다른 팀 이런 식으로 거의 며칠에 한 번꼴로 수십 명의 새로운 인원들이 홍콩에 날아왔다.
회사가 예약한 몇 군데의 호텔에 이와 같은 순환이 온갖 국적의 사람들로부터 있었다.
그곳은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이라 물론 비행을 하고 있는 캐빈 크루들(내가 있었던 홍콩 회사가 아니더라도)도 마치 썰물처럼 호텔에 오곤 했다. 당연히 여행 투숙객들도 있었다.
두 달 넘게 한 호텔에 투숙하게 된 건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그동안은 아주 유명한 작가나 비즈니스맨(내게는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출연한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기업 인수 합병 전문가로 나왔던 리처드 기어쯤 되는 엄청난 사업가) 같은 사람들만이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트레이닝을 시작하며 알게 된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 두 달 넘게 호텔 투숙 예약이 잡혀 있어서 마치 기숙사에 살면서 친구들 방에 가는 것처럼 근처의 친구들 호텔에 가는 것 또한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내가 있게 된 호텔에도, 나의 배치(나와 같은 날짜에 트레이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단기적인 하나의 팀) 친구들이 머물던 호텔도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내가 있던 F 호텔의 규모는 친구들의 N 호텔보다 작았지만 더 현대적이었고 아늑했다. 반면에 N 호텔은 규모도 크고 더 오래되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고 대형 쇼핑몰과 전철역, 버스 정류장이 연결되어 있었다. 오래되었지만 또 그렇게 낡았다고 할 수도 없고, 기억에 남는 건 깨끗하게 반질거리는 넓은 홀과 대리석 바닥, 높은 천장과 거기에 달린 큰 샹들리에. 그래서 그곳에 갈 때마다 마치 연회장에 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호텔을 좋아했던 건, 깨끗하고 쾌적한 호텔에서 그토록 바라던 캐빈 크루 그 전의 캐빈 크루 트레이니로 지내게 되었다는 새롭고도 떨리는 기분뿐만이 아니었다.
근사한 호텔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낸 스스로가 좋았고, 이토록 비슷하면서도 낯선 나라의 낯선 도시 풍경에 적응하며 매일처럼 다양한 감정들을 계속 느끼고 간직하며 많은 추억들을 쌓게 된 곳이 공교롭게도 호텔이라는 장소여서였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확연이 줄어든 늦은 밤에도 통총의 아파트 숲은 늘 불빛으로 황홀하게 반짝였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그 어느 때보다 온 정신을 몰입한 하루를 보내고 호텔 방으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다가 혼자서는 이도 저도 안 되겠다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하던 날부터 드나드던 N 호텔.
그렇게 친구들의 방문을 두드려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도움을 얻고 배우며 자정이 넘어서야 야자수가 우거진 공원을 따라 걸어오며 어느덧 서늘해진 홍콩 밤의 습한 공기를 마시면서 느꼈던 피곤함과 뿌듯함. 그리고 그 순간 차오르던, 다시 또 다른 내일이 온다는 설렘.
불확실하지만 가슴 속 어딘가 뜨거워지는 낭만을 품고 어느덧 나의 호텔에 돌아왔을 때면 벌써 이 지루한 과정을 끝내고 유니폼을 갖추어 입고, 비행팀으로 레이오버를 하는 캐빈 크루들을 보곤 했다.
나도 곧 저 사람들처럼 저기에 다다를 수 있을까. 내게도 그 시간이 올까 하며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이때 내가 맡았던 호텔의 냄새는 단지 호텔 저마다의 아로마틱 한 향기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바라고 꿈꾸며 치열한 하루를 보내는 나와 내 또래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냈던 잊히지 않는 청춘의 냄새였던 것 같다.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낯선 나라에 와서 캐빈 크루가 되기 위해 애쓰던 이 5주가 내게 또다시,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