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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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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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션 교육 첫날부터 한 테이블에 앉게 된 친구들 중에는 이후 세이프티 트레이닝에서 내 짝꿍이 된 마크와 트레이닝 동안 나의 투 브라더스였던 쉬락과 프레이븐이 있었다.
인덕션 교육이 언제 시작되는지 알려주는 공지 메일을 받았을 때, 함께 메일을 받은 사람들 명단이 있었다. 스물두 명의 전부 이국적인 이름들 가운데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오는 두 명의 이름이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그 두 명이 트레이닝 동안 내게 가장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마크는 그중 한 명이었다.
성까지 두고 보았을 때는 언뜻 백인 같은 이름이라서 명단만 보고선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그는 인도인이었다. 배치가 밀렸다고 통보받기 직전에 아주 잠시 참여했던 인덕션 교육은 정확한 장소만 주어졌지 자리까지는 배정되지 않았었는데, 정말로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첫 교육날에는 이름표에 나의 이름이 예쁘게 적혀서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마치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왕자님 역할로 나올 것 같이 생긴 인도인 마크가 있었다. 트레이닝 기간 내내 꼭 나의 여동생 같았던 레이첼과 나중에 크게 웃으면서 공감한 이야기로 마크는 <인어공주>의 에릭 왕자가 진하게 태닝 한 얼굴과 거의 99% 흡사했다.
첫날, 마크는 큰 눈을 반짝이면서 짙은 얼굴과 대비되는 하얀 치아를 씩 내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또 마크 옆으로는 장난기 넘치는 모습의 프레이븐과 또 반대로 아주 차분해 보이는 쉬락도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난생처음 보는 세 명의 인도인 청년들이 반갑기도 하면서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접해보지 않았던 인도의 문화와 사람들이 새로웠다. 그리고 나 조차도 캐빈 크루 트레이니가 되기까지 그동안의 내 삶에서 수많은 사연들을 모아 여기 이곳에 와서 앉아 있는데, 인도인 친구들은 나 같은 아시아 사람보다 훨씬 더 먼 걸음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그들 한 명 한 명이 가진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마크는 이미 6년 동안 자국 인도의 한 항공에서 캐빈 크루였고, 역시 2년 넘게 크루였던 프레이븐 그리고 공항의 지상 직원으로 일했던 쉬락은 모두 이미 항공업계 종사자였다.
신기하게도 마크와 쉬락은 둘 다 왼손잡이였다. 같은 테이블에 왼손잡이가 두 명이나 있으니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게 흔한 일 같았다. 마치 나와 레이첼처럼 동아시아 여성이 또래의 인도인 청년들과 그렇게 함께 앉아 있는 일이 흔한 일인 마냥.
인덕션 교육 오리엔테이션은 말 그대로 오리엔테이션이라서 세이프티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전반적인 내용을 들으며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알아가는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세이프티 교육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비장한 기분으로 세이프티 스쿨 빌딩에 가서 교실 번호를 확인하고 차가운 교실에 들어가 앞으로 앉을자리를 잡았을 때였다.
그간 얼굴을 익힌 마크와 프레이븐, 쉬락 삼총사가 차례로 들어왔고, 마크는 내 쪽으로 다가와 나의 옆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나 같은 ‘뉴비’로서는 친절해 보이는 데다 경력까지 있는 마크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프레이븐과 쉬락은 바로 내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 이때는 잘 몰랐다. 경험으로 다져진 노련함을 가진 사람들과 엄청난 긴장감만을 가졌을 뿐 아무것도 모르는 채 앉아있는 내가 하늘과 땅처럼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