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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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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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배치마다 트레이닝 세부과목의 시험 순서가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그것은 크게 모든 트레이닝을 마치고 시험을 일괄적으로 한꺼번에 치르는지 아니면 트레이닝 과정 중에 각 과목이 끝날 때마다 시험을 치르는 지의 차이였다.
나의 경우에는 후자였고, 어느 배치이든지 시험의 첫 번째 단추는 심폐소생술(CPR) 실기 시험이었다. 게다가 우리 배치는 첫 번째 실기 시험이 있던 바로 다음날 응급 처치 과목의 필기시험이 이어졌다. 이렇게 시험을 치르면서도 앞으로 시험을 치를 안전 교육의 진도는 계속 나갔기 때문에 첫 시험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컸다.
경력이 10년쯤이나 되는 친구도, 적어도 2년은 크루로 일했던 친구도 트레이닝 기간 동안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강사들에 대해 다들 조금씩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강사들은 수업 시간 동안 말 그대로 불이 나게 많은 내용을 가르치면서 중간중간 가르친 내용을 확인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그것도 트레이니 이름을 지명하며 한 명 한 명에게 말이다.
경험이 있어 내용을 이미 알고 있거나 당장 가르친 내용을 잘 숙지한 게 아니라면 던져진 질문에 대해 대답할(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문제는 대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트레이니의 역량으로 평가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부담스러웠던 것은 질문을 받는 그 시간 동안은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강사와 다른 친구들의 모든 눈과 귀가 대답해야 할 사람에게 던져져 있었다.
어느 누가, 방금 가르친 내용을 물어볼 때 잘 대답하고 싶지 않을까? 대답이 시원치 않다는 건 내가 모른다는 걸 반증했고 부끄러움 역시 고스란히 스스로의 몫이 되었다. 운이 나쁘게 비교적 어려운 내용을 질문받았다든가 대답을 못했다는 인상을 주면 곧 똑같은 사람에게 또다시 질문이 던져졌다. 그렇게 어떤 순간, 무슨 질문을 받는지도 무척 중요했다. 그리고 그때는 막 시작한 참이라 긴장감이 더 컸다.
나는 이러한 수난(?)을 겪는 가운데 처음 마크의 호텔로 갔던 것이다.
곧 N호텔로 다시 가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프레이븐 방에서 마크와 프레이븐, 쉬락과 함께 모이게 되었다. 한 편으로는 내가 수업 시간에 꽤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서인지 황금 같은 오프 날에 이렇게 시간을 만들어준 마크 삼총사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매일 트레이닝을 마치고 호텔 방에 돌아오면 지친 하루도 잊어버린 채 잠을 아껴가면서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나는 스스로가 너무 불안했다. 당장 머릿속에 욱여넣어야 하는 처음 보는 용어들의 향연과 생소한 내용들의 범위가 벅찼다. 그렇게 필기시험에 잘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게다가 빡빡하기로 악명 높은 첫 실기 시험도 더럭 겁이 났다.
하지만 마크 삼총사와 서로 질문을 하고 답을 나누는 사이에 어렴풋하게 알듯 말 듯하던 응급 처치 이론이 조금씩 머릿속에 입력되었던 것 같다.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날이기도 하다. 이날 무엇보다 마크 삼총사와 열심히 연습했던 것은 심폐소생술이었다.
수업시간에 처음 배울 때는 인형 모형을 가지고, 홀로는 호텔 베개를 가지고 연습했는데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니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실제로 경험 많은 친구들 앞에서 시연하는 게 왠지 부끄럽기도 했지만 인스트럭터 눈앞에서 인형 모형을 두고 치러야 하는 실기 시험에 대한 부담이 확연히 줄어드는 것 같았다.
심폐소생술과 AED(자동심장충격기)를 잘 다루는 것은 캐빈 크루에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어서 수업 시간 외에도 더 연습하고 싶은 사람들은 쉬는 날 회사에 올 수 있는 날이 있었다. 물론 우리 배치 친구들 전부가 참석했다.
트레이닝 스쿨의 교실에 모여 소그룹으로 인원을 나눠서 심폐소생술을 연습할 때의 일이다.
마크 삼총사와 몇 번이나 연습해서인지 아무런 감이 없을 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실기시험을 연습하러 회사에 온 날에는 이전 시간보다 더 똑바로 알고, 더 분명히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어느새 손등에 멍이 들고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삐질 삐질 났다. 열심히 연습을 하는데도 심폐소생술을 올바르게 실시하며 자동심장충격기를 잘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마크가 슬며시 “아멜리아가 연습하게 해.” 라면서, 내가 조금 더 연습할 수 있도록 짝꿍 티를 냈다. 그렇게 연습할 때마다 주의 깊게 바라봐 주는 마크 삼총사뿐만 아니라 주위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무척 고마웠다. 처음에는 내가 그저 낙동강 오리알 같았는데 함께 힘들게 공부하고 연습하는 와중에 어느덧 ‘우리’라는 묶음이 된 것 같았다. 우리 배치에는 따뜻한 친구들이 많았다.
이건 나중에 할 이야기지만... 그래서 그 특별한 ‘우리’에 내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게 속상했다.
대망의 첫 실기 시험은 이렇게 마크 삼총사의 도움으로, 또 정말 운이 좋게도 재시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첫 시험날에는 심폐소생술 외에도 또 다른 실기 시험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 암기에 가까운 장비 사용법 시험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자나 깨나 양치를 하다 가도 연습하곤 했다. 빠르게 시험에 통과한 것처럼 그 시험에 대한 기억은 또 금방 휘발되었다.
대신 뜨거운 기억으로 남은 건 응급 처치 과목에서 만나게 된 홍콩 로컬의 한 남자 선생님이다.
비록 첫 시간부터 제 자리에 앉아있는 걸 그야말로 벌벌 떨게 했지만 그럼에도 이 인스트럭터는 아주 따뜻한 마음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나이도 꽤 있으셨고, 선생님의 번개 같은 발화 속도와 홍콩식 영어를 쫓아가기 어려웠을 뿐이지 다소 느린 트레이니들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분이었다.
걱정으로 울상이 되어 있는 내게, 내 눈을 바라보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공부 열심히 해야 돼.”
“그런데 난, 네가 꼭 해낼 수 있다고 믿어.”
때로는 이런 말이, 어떤 초인적인 힘을 주는 것 같다. 나는 나를 믿어주는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어보고 싶었다.
그간 초긴장 상태로 수업 시간에 참여했던 날들과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맨 땅에 헤딩하듯 공부한 시간들, 부족한 나를 도와주었던 그 모든 사람들의 응원을 빛바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크 삼총사와 공부했던 것은 내가 응급 처치 과목을 위해 공부한 양의 10분의 1 정도였을까.
처음 트레이닝이 시작할 즈음만 해도, 두꺼운 책 중에는 모르는 게 태반이었다.
하지만 계속 읽고 또 읽으면서 그중에서도 절대적으로 암기가 전부인 응급 처치 과목의 내용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컴퓨터로 치르는 필기시험에 대한 두려움이 정말 컸다. 왜냐하면 저마다 풀게 되는 문제가 다르고, 시간은 한정적이며 반드시 넘겨야 하는 점수가 있어서 한 마디로 바로 문제를 파악하고 알지 못하면 풀 수 없기 때문이었다.
피곤함도 잊은 채, 늦은 밤이 어느덧 새벽이 될 때까지 도무지 잘 외워지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외우려고 애썼던 늦은 밤이 떠오른다. 시험 전 날, 여느 때처럼 회사로 가기 위해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으로 알람을 맞추고 겨우 잠자리에 든 게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공부하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알람을 맞추고 잠시 눈을 붙인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몽롱한 상태로 회사로 출근해, 교실에 앉자마자 우리는 바로 필기시험을 치러 컴퓨터실에 가게 되었다.
그 이동조차 두려움을 배가 시켰다.
그리고 난 기적적으로 제시간에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시험지를 재빨리 제출하고 허물 벗듯 컴퓨터실을 나가는 다른 친구들 같지 않았다. 시험 종료 마지막 1분 전까지 검토하고 또 검토하느라 도무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심지어 공포감을 느끼면서 들었던 그간의 수업시간과 그럼에도 내가 나를 믿어 본 이 시험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험지를 제출하자마자 채점 결과가 바로 모니터에 떴다.
결과는 단 세 개의 실수였다. 시험을 감독하던 또 다른 인스트럭터가 왜 빨리 안 움직이냐는 얼굴로 내게 “패스” 라 했다. 90점대 초반의 점수로 통과였는데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이렇게 통과했다는 게 그저 감격스러웠다.
긴장이 풀려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프레이븐은 내 점수를 물어보았고, 그제야 나는 조금 당당히 내 점수를 말할 수 있었다. 프레이븐은 그간 내가 응급 처치 과목에 얼마나 좌초해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마크 삼총사의 점수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자신만만했던 마크만 자기 점수를 밝히지 않는 것이었다. 서두르는 바람에 실수를 했다나... 난 마크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렇게 첫 시험이라는 커다란 산을 어렵게 넘었고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에베레스트만큼이나 높은 산은 사실,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