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홍콩의 늦은 봄은 이미 여름이 온 듯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반팔 티나 반바지로 갈아입으면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회사에 가기만 하면 고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긴장 속에 사는 나날이었고 저녁 무렵 호텔 방에 돌아와도 쉬이 긴장이 풀어지지 않았다. 호텔이라는 새로운 임시 거처가 생겼어도 진짜 집은 아니었기에 호텔 방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호텔 정문 바로 맞은편에는 작은 빨래방이 하나 있었다.
나는 종종 머리를 식히고 산책을 하고 싶을 때 며칠간 뭉쳐 놓은 빨래 꾸러미를 들고 빨래방에 가곤 했다.
내가 묵던 F호텔은 호텔 뒷면에 바다를 끼고 있었고, 그 바다를 따라 너른 산책로 겸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통총 지역 호텔 인근의 아파트 주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며 운동을 하고 F호텔의 투숙객들 또한 많이 이용하는 곳이었다.
나는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세탁이 완료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 30분 정도, 건조기에 넣어서 빨래를 말리는 45분간 그 주변을 자주 걸었다. 그때는 바다가 바로 곁에 있다는 게 가장 큰 위안이었다.
며칠 간의 빨래 뭉치를 세탁기에 넣어 작동 버튼을 누르고 나서, 더운 바닷바람이 살며시 불어오는 산책로에 다다르면 주머니에서 에어팟을 꺼냈다. 곧 좋아하는 노래가 귓가에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그 순간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피곤하고 무척 지쳐 있는데도 왠지 싫지 않았다. 이국의 풍경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부푼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걷던 날들은 기운이 있던 때였다. 이제 산책로를 걸어 다닐 에너지도 없고 단순히 깨끗한 옷이 필요해서 저녁 늦게 빨래방에 온 어느 늦은 밤이었다.
환하게 불 켜진 빨래방 의자에 앉아 덜거덕 거리며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가는 빨래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빨래방에 들어온 사람이 있어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배치의 태국인 ‘리’가 아니겠는가. 리는 나 만큼이나 퀭한 모습이었다.
리는 N 호텔에서 머물고 있었고, 그에게는 F호텔에 자주 올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다른 배치에 소속되어 역시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친한 친구가 F호텔에 머물었기 때문이다. 인덕션 교육날의 반짝거리는 아이돌 같은 모습은 저 멀리 사라진 리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보자 이 아이도 꽤나 힘들게 지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라... 안녕, 리.”
“엇, 안녕.”
“지금 빨래하러 왔구나.”
“응. 너도 지금 왔어?”
“아니 조금 아까.. 근데 꽤 남았어." "오늘 되게 피곤하지?”
“정말 너무.. 피곤해.”
우리는 빨래방 한편에 앉아 세탁기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대부분 같은 국적의 친구들끼리 소그룹으로 짝지어 같이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을 보냈다. 트레이닝 스쿨의 교실과 교실 밖에서는 긴장이 풀어진 진짜 대화를 나눌 시간은 거의 없었다. 같은 호텔이거나 서로 같은 말을 하지 않으면 추운 교실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앉아있는 개별의 사람들 그 얼굴 뒤의 이야기를 알 수 없었다.
리는 수업시간이면 늘 초조하게 앉아있다는 오라를 풍겼다.
보기에도 어려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20대 초중반의 남자였다. 리는 나처럼 크루 경험이 없는 뉴비였고 트레이닝이 힘들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기 외에 다른 태국 친구들(우리 배치에는 리 외 다섯 명의 태국인이 더 있었다.)이 아주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놀라웠던 건 이때만 해도 우리가 본격적인 트레이닝에 들어간 지 며칠 안 되는 때였다. 리는 수업이 끝난 저녁이면 태국인 그룹끼리 날마다 함께 모여 공부하고 있고 그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배치에는 한국인이 너무 적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아마 나는 이때,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어볼 사람이 외국인 친구들 뿐이더라도 더 다가가 부딪히고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수업시간마다 불시에 질문을 받고 답하는 것이 굉장히 큰 스트레스고 힘들다는 게 우리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다. 리는 또 자신이 한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리가 나도 처음 듣는 한국 가수를 말하고 한국어까지 몇 마디나 하는 걸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빨래방에서 ‘리’와 나눴던 심심한 대화는, 그날도 홀로 호텔방에 돌아와 느꼈던 허전한 마음을 담담히 채워주었다. 런드리 토크 이후로 회사에서 리를 볼 때면 비록 인사만 하더라도 리에게 반가운 마음이었다.
재미있는 건, 저녁에 N호텔에 갔다가 다시 F호텔로 걸어 돌아오던 깊은 밤 그것도 늘 거의 자정이 다 될 무렵이었다. 드넓은 통총 길거리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리를 몇 번이나 마주치곤 했다. 나야 당연히 뭐라도 물어보러 N호텔에 갔던 거지만, 리는 늘 F호텔에 머무는 친구와 함께였다.
한두 번은 우연이라 쳐도 항상 야심한 시각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마주치는 일이 생기자 이제 어둠 속에서 서로의 형체를 알아보고는 반갑고 피곤한 밤 인사를 나눴다. "내일 아침에 보자." 하면서.
나중에 리는 우리가 늦은 밤 우연히 마주치던 그때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That was epic.(정말 멋졌어!)”
귓가에 ‘리’ 특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언제 들어도 좋게 느껴졌던, 높은 듯 낮은 리의 음색. 아마 공부하느라 충혈된 빨간 큰 눈이, 잠을 못 자서 어딘가 푸석해 보이는 얼굴까지. 더웠던 날씨와 흔들거리는 세탁기 통들이 함께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