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아시아 대륙 남쪽의 인도 반도에 위치한 거대한 나라, 인도.
인도는 남아시아에 속하며 북쪽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중국, 네팔, 부탄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동쪽과 서쪽에는 벵골만과 아라비아해가 흐르며 남쪽으로는 인도양이 펼쳐져 있다.
인도에서 홍콩으로 오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가장 드넓은 바다 중 한 곳, 인도양을 거쳐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350만 평방 킬로미터의 남중국해를 통과하거나 인도와 방글라데시, 미얀마와 스리랑카를 감싸고 있는 대륙 동쪽의 벵골만을 거쳐야 한다. 벵골만의 크기는 217만 평방 킬로미터.
출발지가 남쪽 인도인지 혹은 북쪽 인도인지 경로에 따라 어떤 바다를 거치게 되는지는 다를 수 있지만 인도는 이토록 큰 바다를 건너야 다다를 수 있는 먼 나라이다.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측면에서 남인도와 북인도는 커다란 차이가 있고 심지어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 음식 문화를 향유한다. 내가 트레이니로 만난 친구들은 벵갈루루 같은 남인도 지역에서 온 인도인도 있었고 인도의 수도 델리처럼 북인도 지역에서 온 인도인 역시 많았다.
‘남국의 프린세스’라 한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어느 남쪽 먼 더운 나라의 공주가 떠오른다. 그러나 인도의 일부 남부 지역만이 적도에 가까워 남반구와 거리가 멀지 않고 인도 전체를 놓고 보면 북반구에 속하므로 남미나 브라질, 호주 같은 완전한 남반구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아시아의 인도 반도에 위치한 인도의 지형적 위치는 동아시아와 큰 물리적 거리를 가늠하게 하고 대체로 더운 날씨를 가졌다는 기후적 특성이 왠지 남국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나는 인도인 여자친구들을 ‘남국의 프린세스’라 부르고 싶다.
나의 인도인 여자 친구들은 출신 지역에 따라 제각기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옅은 갈색의 피부에 비교적 아시아인을 닮은 모습이었고 또 다른 이는 더 짙은 색 얼굴 바탕에 보다 뚜렷한 이목구비의 이국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배치가 함께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인덕션 교육날에는 이를 더욱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달리 느껴지는 생김새에서 그 지역을 추측할 수 있었고, 인도대륙에서 온 인도인이라고 해서 하나의 인도인으로 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인도양을 건너 홍콩에 온 인도인 트레이니 가운데 뉴비는 극히 드물었다. 즉, 자국에서 이미 크루로서 자격을 얻어 일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인도인 여자 친구들은 마치 공주처럼 당당하고 우아한 매력이 있었다. 경험을 통한 노련함과 자신감이 있었고 그렇다고 자만하지도 않았다. 엑스 크루였던 대부분의 인도인 여자 친구들이 모두 그러했다.
우리 배치의 라만을 처음 보았던 날, 나는 마치 인도의 공주가 내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유의 버릇인 고개를 살짝살짝 좌우로 흔들면서 말하는 라만을 바라볼 때면 같은 여자임에도 그 깜찍한 당당함에 넋을 잃었던 것 같다. 그녀가 풀메이크업을 하는 날이면 이미 큰 눈이 어찌나 더 커지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라만뿐만 아니라 발카나 스와티, 프리티 역시.
라만은 우리 배치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였다.
라만만큼이나 모든 강사들의 질문에 잘 대답하는 트레이니도 없었으며 강사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진 사람도 역시 라만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겨우 스물두 살. 사실 트레이닝 중에는 트레이니들 대부분 화장을 하지 않고 다녔는데, 화장을 지웠을 때 드러난 앳된 얼굴에서 라만의 어린 나이를 실감했다. 혹독한 트레이닝 중에서도 언제나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또한 똑똑함은 경력과 나이에 그다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라만을 보며 느꼈다.
교실에 일찍 도착하는 날이면 라만에게 다가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늘 흔쾌히 또 언제든지 질문을 하라고 했다. 자기가 처음 크루로 일했을 때 나처럼 아무것도 몰랐었다며 그 또한 괜찮다고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작은 키의 요정 같은 그녀가 나를 칠판 앞으로 데려가 특유의 우아한 글씨체로 비행 이론을 설명해 줄 때, 상대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며 큰 이해심을 가지고 가르쳐주는 그녀에게 큰 감사함을 느꼈고 그런 그녀는 정말이지 나보다 훨씬 어른 같았다.
글씨체는 그 사람을 닮았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반짝 강의를 해주던 라만.
라만의 공책을 보면 그녀의 글씨에는 늘 양피지가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치의 또 다른 인도인 여자친구였던 스와티와 발카는 역시 엑스 크루이자, 트레이닝 스쿨의 짝꿍이었는데 호텔 역시 같은 곳이어서 그 둘은 더욱 가까워 보였다.
도어 프러시저(Door Procedures) 실습을 하다 어려움을 겪은 날이 있었다. 심폐소생술 및 자동심장충격기 사용이 첫 번째 본격적인 실습 시험이었다면 도어 프러시저 테스트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부분이어서 트레이니로서 무난하게 거쳐가야 하는 실습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업 시간의 설명은 그날따라 너무 빠를 뿐이었다. 제대로 습득이 안 된 상태에서 모두가 다 보는 앞에서 실습 연습을 하자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이해되었던 원리마저 당황한 나머지 까먹었고 말이다.
그렇게 잠깐 쉬는 시간이 되자 주변의 여러 친구들이 다가와 한 마디씩 하면서 알려 주었으나 모두의 목소리가 중첩되어 잘 들리지도 않았다. 상황과 머리가 복잡해 무슨 말인지 알다 가도 모르겠을 때였다.
그때 스와티가 앞에 와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카리스마 있는 깊고 낮은 목소리로 간단명료하게 그리고 차근차근 원리를 가르쳐주었다. 도어를 다룰 때 크루로서 해야 하는 올바른 반응과 행동을 일러주었다. 이와 같은 원리는 일한 경험이 있다면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비행기 문을 만져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스와티와의 짧은 특훈이 끝나고 테스트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자, 이제 너는 다 알고 있어. 네게 필요한 건 자신감뿐이야.”
짧았던 쉬는 시간이 끝나고 바로 이어진 실습 테스트를 잘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구루 스와티 덕분이었다. 아무리 경력이 있어도 내 시험이 코 앞에 있을 때 어려워하는 누군가를 붙잡고 가르쳐주는 것은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인도인 여자 친구들에게 감명 깊었던 것은 이와 같은 사려 깊음 때문이었다.
이후로 첫 시험이 이어졌고, 또 새로운 과목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어 나가던 즈음이었다. 이 시기에 짝꿍 마크는 조금 나사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유난히 바빠 보였다. 복습이나 시험 준비에 온갖 애를 쓰는 나와는 분위기가 달랐고 전처럼 물어보러 간다든가 연습을 하자는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발카에게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또 곧바로 가방을 챙겨 N호텔 발카의 방으로 갔다. 답답한 내 방을 벗어나 조금 걸으며 리프레시를 하는 것도,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게 유익하다는 것을 배운 참이었으므로. 발카의 인도풍 방에 가니 이어서 오늘도 귀여운 얼굴의 라만이 왔고, 스와티 그리고 나중에는 프리티까지 합류했다.
발카의 방 침대 맡 왼쪽에는 사리(인도 전통 옷)를 입고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넣은 액자가 있었다. 사진 속 발카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흔히 접하던 짙은 화장을 한 아름다운 인도 여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부정이 참으로 애틋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인도에서 홍콩까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생겨날 가족의 그리움은 굉장히 깊을 것 같았다. 나는 홍콩에 온 뒤로 아빠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데...
친구들의 호텔 방에 갈 때마다 풍겨지는 방 주인의 캐릭터를 느끼는 것도 큰 재미였다. 발카 방의 아버지와의 사진 액자처럼 그렇게 사람마다 하나씩 특별한 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곧 라만까지 오자, 단체로 비행기 속 가상 비상상황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친구들은 특히나 내가 어려워했던 내용들을 하나씩 가르쳐주었다. 라만은 그것이 몇 번이 되었든 내가 익숙하지 않고 어색한 부분을 반복하면서 알려주었다.
그리고 스와티는 이 날 내게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방법과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기내 인터폰으로 조종실로 통화를 건다고 가정할 때, 어색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지곤 했는데 몇 가지 설명을 들으며 이는 의사소통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몇 시간을 함께 있었다. 저마다 역할을 나눈 듯이 나를 가르쳐주었다. 마치 ‘우리가 너와 함께 해 줄게.’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보았던 내 인도인 여자친구들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주며 기품까지 잃지 않는 공주 같았다. 비록 마지막에 친구들을 자랑스럽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나는 언젠가 꼭 그들과 함께 하늘을 날고 싶다. 좌충우돌 하다못해 안타까움 마저 자아냈을지도 모르는 내가 실패를 밑거름 삼아 자신 있게 변화한 모습으로 그들 옆에 서고 싶다. 그때 그녀들을 어떤 자랑스러움으로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또 언젠가 먼 인도 땅의 토양을 직접 밟고서 그곳의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