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프랑스어 사전에서 플라뇌르 (Flâneur)를 찾아보면,
flâneur : 1.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 거닐기를 좋아하는 (사람) 2. 빈둥거리는 3. 침대의자라고 설명되어 있다.
플라뇌르는 산책자, 배회자,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명사이다.
“도시의 풍요와 모더니티(현대적인 감각이나 성향)를 나타내는 모호한 인물로, 산업화된 현대 사회의 관찰자로서 사회와 거리를 두고 목적지 없이 배회하고, 경험하며, 이해하는 존재”를 일컫는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촬영한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지금은 잠시 시카고미술관을 떠나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특별 전시 중이라고 한다.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은 19세기말 도시 생활을 담은 그림이다.
'플라뇌르'를 설명할 때 빼놓지 않고 연관되는 그림.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볼거리로 여겨지기를 좋아하는 부르주아들이다. 보는 동시에 보이는 도시의 구경꾼들을 가리키는 용어였던 플라뇌르는, 이제 도시를 한가로이 산책하고 배회하면서 관찰하고 경험하며 이해하는 사람으로 더 널리 쓰인다.
내가 플라뇌르의 개념을 처음 들었던 것은, 학부 시절 현대미술 교양 수업에서였다.
그때는 단순히 그런 말이 있구나 했었다. 직접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도시를 거닐고 낯선 사람들을 접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어떠한 영감을 얻는 가운데 '도시를 관찰하고 경험하며 이해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낯선 장소에서 플라뇌르가 되는 것은 이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다. 이 점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캐빈 크루 트레이니는 여행자도 아니었고 완전한 직업인이라고도 할 수 없어서 여행자로서 으레 갖게 되는 부푼 설렘이 덜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앞으로 있을 트레이닝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고 홍콩은 앞으로 살아갈 도시라고 생각했기에 지금 당장 많은 곳을 다 봐야겠다는 욕망도 크게 없었다.
밀린 배치로 인해 다시 인덕션을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이 떠 있던 무렵, 나는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센트럴에 가곤 했다. 내가 2층 버스를 타고 통총을 벗어나 홍콩 섬으로 향하는 목적은 단지 도시의 배회였으니까. 그렇게 홍콩에서도 플라뇌르가 되었던 시간을 소개한다.
통총발 이층 버스가 어느덧 홍콩섬에 도착했을 무렵. 대낮에도 시내의 거리는 차들로 가득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우기의 홍콩. 내가 새삼 빽빽한 빌딩 숲, 홍콩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마음에 드는 작은 카페를 발견했던 날. 이곳의 이름은 The Coffee Journal.
분주한 시내 한복판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아늑하며 맛있는 커피를 파는 곳을 찾고 있었다.
주말이라 작은 카페 안이 손님으로 가득 찼었고 네 개 좌석의 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과 테이블을 셰어 하게 되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은 내 또래의 홍콩 청년이었고 직업은 웹디자이너. 주로 집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홍콩의 젊은 세대였다.
회사에서 만났던 로컬 친구들이 그랬듯 이 홍콩 청년에게도 영어는 제2의 언어였다. 홍콩의 큰 경쟁력은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홍콩 사람들에게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날, 내게 홍콩의 친절함을 베풀고 싶다며 나의 커피 값을 내주었다.
빼곡히 들어선 빌딩 숲. 센트럴 시내는 이렇게나 밀도가 높다. 내겐 굉장히 홍콩스러운 사진.
양조위의 단골식당이라는 카우키. 지금도 양조위가 찾을까?
이곳에서 먹은 짭조름한 카레 국수는 다시 먹고 싶은 맛이었다. 트레이니 동생을 한 번 더 데리고 갔는데, 그 맛을 인정해 주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바라보던 풍경. 중경삼림의 왕페이가 된 기분이었다.
느리게 올라가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보이는 벽들의 데코레이션이 무척 귀여웠다.
엄청난 아파트 밀도.
곳곳에 보이는 나무마저 없다면 숨이 막힐 듯했다.
홍콩은 도시 환경 때문에 유난히 좁고 깊은 구조의 카페가 많았다.
웨스턴 마켓
비가 지겹게 내렸다.
허름한 건물들과 공사 중인 건물들이 섞여 있는 홍콩 시내. 미로 같은 계단을 오르면 또 새로운 분위기의 구역으로 다다른다.
홍콩의 유명한 할리우드 거리.
시내의 좁은 거리에는 관광객과 현지인과 차들과 택시로 언제나 분주했다.
트램을 탔던 날도 있었다.
이날 저녁, 나는 반짝이는 야경의 홍콩을 바라보며 다시 통총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썰물처럼 흘러가는 수많은 사람들.
초조한 기다림과 답답함을 벗어내고자 먼 걸음을 했지만 낯설고도 비슷한 도시에서 느낀 외로움과 피곤함이 어느덧 어깨 위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문득 오르한 파묵의 말이 떠오른다.
“삶의 목적과 행복은 우리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고 싶지 않았던 곳에 있지만 이 모든 고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 고민들로 고심하거나 삶에서 기쁨이나 심오함을 추구할 때 자동차나 집이나 배의 창문을 통해 보았던 모습들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삶은 음악이나 그림이나 이야기처럼 변화무쌍하게 끝이 날 테지만, 우리 눈앞에서 흐르는 도시의 모습은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꿈속에 나오는 추억처럼 우리와 함께 남을 거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내게 홍콩은, 추적거리며 내렸던 비와 함께 거닐었던 시간으로 처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