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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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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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한국에서 같은 날,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은 스무 명이 넘었는데 실제로 그중 딱 한 명과만 함께 실제 트레이닝을 받게 되었다.
회사에 몇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조인하다 보니 이런저런 사정의 변동사항이 생기고 그렇게 트레이닝 배치(팀) 사람들의 명단이 뒤로 밀리며 바뀌게 된 모양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함께 한국을 떠나 온 사람들 보다 일주일이나 늦게 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캐빈 크루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이 특히나 어렵고 힘들다고 알려진 회사였기에 홍콩에 오기 전부터 걱정이 컸는데 이렇게 예정되었던 트레이닝 스케줄 마저 미뤄지니 답답함 마저 들었다.
당시에는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 일주일을 잘 보낼 딱히 뾰족한 수도 없었다. 트레이닝에 떨어지면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홍콩 시내로 놀러 갈 흥도 크게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불편한 불안함에 편히 쉬어지지도 않으니 해야 할 숙제를 남겨두고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날씨마저 거진 흐리고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던 호텔방도 대낮에 홀로 앉아있으면 금방 공허해졌다. 이 공허함은 시간과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는 것과 그야말로 초짜이기에 들었던 무거운 긴장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6월의 첫째 주가 무심히 흘러갔다.
총 5주간의 트레이닝 가운데 먼저 첫 주차 트레이닝을 들어간 사람들은 혹독한 트레이닝에 날이 갈수록 지쳐 보였다. 난 친구도, 동료도 아닌 사람들과 가벼운 안부만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함께 트레이닝에 참여하지 않는 한 지금 어떤 진도로 어떤 공부와 훈련을 하고 있는지 모르며 또 그들의 일과가 너무나 바빠 보이므로 시간을 내서 물어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캐빈 크루라는 직업의 존폐여부를 두고 트레이닝에 통과하기 위해 매일 애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말이다.
그래도 몇 번 홀로 홍콩 시내에 나가기도 했다. 버스 안에 앉아 빗방울이 떨어지는 창밖을 내다보며 또 운치 있는 홍콩 거리를 거닐면서도 앞으로 있을 트레이닝 생각에 몇 번이나 마음이 무거워졌던 기억이 난다.
마침내 나에게도 본격적인 캐빈 크루 트레이닝이 시작날이 다가왔다. 캐빈 크루 트레이닝은 3일간의 인덕션 교육 후에 세이프티 스쿨이라는 악명 높은(?) 장소에서 세이프티 트레이닝을 받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밀린 배치로 인해 가장 처음에 실시되는 인덕션 교육은 사실상 두 번째 참여였다. 인덕션 교육은 캐빈 크루로서의 자세나 소양, 그루밍 등을 아우르는 오리엔테이션 개념이라서 그리 큰 부담은 없었지만 항공업에 처음 발을 디딘 나로서는 그저 모든 게 새로웠다. 그리고 거기서 나와 한 배를 탄 배치 메이트가 되어, 세이프티 트레이닝과 서비스 트레이닝을 함께 받을 친구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나의 배치에는 인도인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는 대여섯 명 정도 소규모 그룹의 태국인 또 몇 명의 홍콩 로컬 그리고 나를 포함한 한국인이 두 명이었다. 이렇게 다국적의 스물두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이전에 프랑스에 산 적이 있다. 그때 일을 하며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이 중에는 아프리카계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특히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 중 한 명은 세네갈 사람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 시간 덕분에 완전히 다른 대륙에서 온 인도 친구들이나 다른 외국인 친구들을 보아도 마치 한국사람을 만난 것처럼 스스럼없이 생각했던 것 같다. 다수를 차지하던 다양한 국적의 배치 메이트 구성은 내가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가까워질 수 있게(밖에 없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