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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아 Nov 24. 2024

오믈렛 소녀

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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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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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물었던 호텔의 조식은 6시 30분에 시작되었다.


뷔페 입구 바로 앞의 카운터에서 회사의 트레이니라는 걸 확인받고, 방 번호를 말하면 곧 넓고 환한 뷔페의 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본격적인 트레이닝 교육이 시작되기 전 10일간 호텔에서의 아침, 점심, 저녁을 제공해 주었다. 처음엔 호텔 식사를 세끼나 먹을 수 있어서 내심 흥분이 되었다. 정돈되고 쾌적한 곳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오랜만에 여행지에 온 듯한 기분을 만들어주었다. 그렇지만 그 장소가 여행지가 아니라는 점이 더 특별하고 좋았던 부분이었다.



내가 특히나 좋아했던 건 바로 아침 식사였는데 호텔 조식이 선사해 주는 특유의 아침을 시작하는 설렘과 마침내 이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맛보기 시작한 첫 기억 때문이었던 것 같다.





넓은 홀의 뷔페였기 때문에 식사시간 동안은 주변의 앞사람, 옆사람이 누군지 잘 보였고, 그렇게 다른 배치, 다른 나라에서 온 트레이니들의 얼굴을 익혔고 무엇보다 뷔페의 같은 자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더 금방 알 수 있었다.



홍콩은 높은 명성을 가진 국제도시인만큼 서양인도 많았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홍콩은 아시아이므로 한국인의 피부색을 가진 홍콩 로컬 사람들이 많아서 영미권이나 유럽에서 느낄 수 있는 이질감이 적었다. 반면에 의외로 동남아시아에서 온 듯해 보이는, 피부색이 나보다 훨씬 어두운 사람들도 시내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서양인들이 다수인 곳에 가면 동양인의 외형이 얼마나 눈에 띄는지 피부로 알 수 있듯이 홍콩에서는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되려 눈에 띄었다. 백인들보다 말이다.




내가 있던 호텔에서 아침 조식을 먹을 때마다 오믈렛이나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주던 아주 어려 보이는 여성도 홍콩 로컬이 아닌 게 분명한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소녀 같았다.



새벽녘 뷔페가 오픈할 때부터 시작해 그날 조식이 마감될 때까지 오믈렛 소녀는 늘 같은 자리에 서서 오믈렛을 만들었다. 하얀색 조리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조리 모자를 쓰고 서 있었다. 늘 그녀의 앞으로 수많은 조식 손님들이 줄을 서서 자기 차례의 오믈렛을 주문하기를 기다렸다. 내 앞에 다른 사람이 주문한 달걀이 요리되는 걸 바라보면서 말이다.



먼저 달걀을 어떻게 요리할지를 말하고, 오믈렛인 경우에는 넣고 싶은 재료를 골랐다. 그렇게 오믈렛 소녀만큼이나 작은 팬은 기름이 마를 새 없이 쉬지 않고 움직여졌다.

그런데 나는 그때마다 이상하게도 어린 오믈렛 소녀가 왠지 딱하고 또 장한 기분이 드는 거였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이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은 바람직하기 이를데 없다. 하지만 이토록 화려함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에서는 플라스틱 벽으로 가려진 뜨거운 팬 앞에 서서 몇 시간이고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오믈렛을 만드는 모습에 그저 안쓰러운 마음이 들 뿐이었다.

직접 주문을 받고, 다 된 요리를 손님의 그릇에 바로 건네 주기에 자기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빤히 보이는데 나이가 자기 또래인 듯해 보이는 트레이니들 혹은 반짝이는 캐빈 크루들을 보는 것이 왠지 마음 상하지 않을까 싶었다.

즉석에서 요리해 주니 단순하게 뷔페 안의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고, 또 먹고 싶어서 오믈렛을 주문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식사였으면 이런 감정이 들지 않았을 텐데 열흘 간의 뷔페 식사여서 더 그랬다.



오믈렛 소녀가 영어를 조금 더 했더라면 이렇게 말없이 서서 일하지는 않았겠지 싶고 나이가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그런 그녀에게 오믈렛을 주문하는 게 어딘가 미안했다.




홍콩은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 있는, 영어가 제2 언어로 통용되는 명실상부한 국제도시이다. 한데 그곳에서는 늘 암묵적으로 구분된 계층이 보였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센트럴 같은 지역의 오피스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은 듯 했고,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을 많이 택하고 있어 보였다. 적어도 내가 있었던 통총에서 보았던 사람들은 주로 공사장의 인부들, 보모, 쇼핑몰의 직원이었다.



내가 다시 한국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문득 열흘간 만날, 그리고 트레이닝 교육 전의 무상 뷔페가 끝난 이후에도 가끔 돈을 내고 먹었던 조식에서 늘 보았던 오믈렛 소녀에게 조금 더 인간적인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이를테면 “덕분에 날마다 이렇게 맛있는 오믈렛을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랄게요.” 같은 말을 말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까지 전부 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나는 항공사의 트레이니가 되었기에 호텔에 머무르며 한 커다란 호텔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하는 지 알게 되었다. 외적인 모습까지 가꿀 수 있는 훨씬 여유로운 여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머물었던 곳에 일하는 직원에게 더 진심을 담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시간이 흘러 오믈렛 소녀가 내 나이 즈음 됐을 무렵에는 그녀가 많이 웃으며 말하고 일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덥게 일했던 시간을 추억으로 회상하며 웃으면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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