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천민'이 될 상인가?

천민 같은 빚쟁이의 삶

by 스로

나는 벼랑 끝을 즐긴다. 여유로운 척을 하다 상황이 급박해지면 움직인다. 내가 말하는 급박함은 약속시간 30분 전 머리를 감는 가벼운 상황이 아니다. 나란 인간은 만약 납치돼 의자에 묶여 있어도 빠져나갈 생각을 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칼이 목 앞으로 들어와야 이제 죽는구나 하고 방법을 찾을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낙관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독하게 개념 없고 게으른 성격이다.


학창 시절 게임을 좋아했다. 하루는 화장실에 책상을 숨기고 PC방으로 도망쳤다. 그 당시 PC방 요금은 1시간에 700원 했고 회원이면 후불로 결제가 가능했다. 주머니에 천원이 있었다. 한 시간만 놀다 가야지 했는데 3시간이 지났다. 상황을 알고도 너무 재밌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다. 4시간이 지나 급박함을 느꼈는지 정지를 해놓고 PC방 옆 슈퍼로 향했다. 전 재산 천 원을 슈퍼에 있는 인형 뽑기 기계에 넣었다. 그냥 인형은 천 원, 시계가 달린 인형을 뽑으면 오천 원으로 바꿔줬기 때문이다. 못 뽑는다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인간은 벼랑 끝에 몰리면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 그 힘으로 세상을 구하지 않고 오천 원짜리 인형을 뽑는 데 성공한다. 나는 이 정도로 개념이 없고 낙천적인 인간이다.


이런 성격은 빚쟁이가 돼서도 내 곁을 지켰다. 대출금 미납 3개월, 지금까지와는 다른 문자가 핸드폰에 남겨졌다. "000님 대출금 입금 지연 및 연락 불능으로 채권팀 이관 및 담당자 변경 예정입니다". "채권관리 담당자 000입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상냥하게 돈을 내라는 문자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본격적인 독촉의 시작이었다. 돈을 빌릴 땐 큰소리 내는 고객이었는데 이젠 쭈구리 체납자에 불과했다. 모든 전화와 문자를 씹다 벼랑 끝까지 왔다. 미납 3개월 만에 처음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 화면에 은행 이름만 봐도 심장이 떨렸는데 통화 대기음을 들으니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사정을 말하니 이번 달도 미납금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출금 전액을 한 번에 갚아야 한단다. 얼마 전 '자살'에서 '살자'로 인생을 바꾼 내게 무척 가혹한 현실이었다.


다행 중 불행인 건지 불행 중 다행인 건지, 그 시기 면접 본 회사 중 마음에 든 곳에서 출근하란 연락이 왔다. '이제 어떻게든 되겠다 다행이다' 생각했다. 출근 첫날, 몇 달 만에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체 무슨 일이냐, 어제 은행 사람들이 다녀갔다" 심장이 또 한 번 주저앉았다. 몇 년 전 앓던 공황이 다시 찾아올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걱정마라 잘 해결되고 있다 안심시키려 했지만 이미 누나와 나를 돕기로 얘기를 끝낸 상황이었다. 미납금 천만 원은 결국 가족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가족의 재산을 팔아 천민의 삶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신을 찾다 안정이 되면 지우듯 내 마음도 변화가 찾아왔다. 회사를 다니고 월급 280만 원만 받으면 살아갈 수 있다 생각했다. 숨 쉬고 밥만 먹으면서 빚을 갚으리! 돈을 모으리! 다짐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매달 200만 원씩 갚아도 80만 원이나 남잖아?' 생각한 내가 바보다. 기름값, 생필품, 밥까지 사 먹으면 20만 원도 안 남는 게 현실이었다. 통신비까지 내면 통장 잔고는 메말랐고 매달 카드로 돌려 막는 신세였다. 진정한 노예였다. 천민에서 벗어난 줄 알았던 인생은 하루살이와 같았다. 몇 년을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이래서 결혼은 하겠어? 집은 사겠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얼마 전까지 컵밥을 먹으며 취직이 간절했던 청년은 온데간데없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술과 함께 현실 도피를 했다. 어차피 몇 년 이렇게 살아야 되는데 즐겁게라도 살자. 생각하며 나를 또 속이는 데 성공했다. 퇴근하고 6시가 되면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새벽까지 게임을 했다. 8시 출근인데 30분 전 일어나서 회사 갈 준비를 했다. 가난한 주제에 몸은 불어 4킬로가 쪘다. 좀비가 된 것도 모자라 돼지같이 살았다. 돈을 갚아야 될 좀비는 죽지도 못하고 돈에 허덕이며 살았다. 과정 없는 사건은 없다. 나처럼 돈을 빌려 인생을 은행에 팔아넘기지 않길 바란다. 여기까지가 빚쟁이의 삶과 그의 하루다. 계속 이렇게 살기로 결심했다면 오늘도 누굴 만나 세상을 씹고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은 바꾸지 않고 세상이 바뀌기만 바라며 말이다.


내가 힘들 때 돈을 빌려준 제일 친한 친구도 얼마 전 주식을 하다 망했다. 주위만 봐도 대한민국에 빚쟁이가 넘쳐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글을 쓴다. 대출을 받아 근거 없이 돈을 벌려는 사람을 일일이 뜯어말릴 수 없으니 우연히라도 보길 바라며 쓴다. 혹시 나와 비슷한 상황인 누군가 글을 보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그럴 뿐이라 여기길 바란다. 당신과 나는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 좀비가 될 수도 있고 이겨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삶을 위한 고된 과정이라 여기자. 이런 생각을 가진 나는 스스로 빛쟁이라 부르기로 했다. 빛쟁이는 꿈과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뤄가는 사람을 말한다. 성공의 빛을 따라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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