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방, 거짓의 방.

빛쟁이가 되기 위한 첫 계단, 꿈을 만들다.

by 스로

"탁탁탁" 키보드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채운다. 모니터에 쉬지 않고 글이 채워진다. 두들기고 멈추기를 반복하다 자판에서 손을 뗐다. 화면을 보니 기쁨, 슬픔, 후회 등 여러 감정이 찾아온다. 34살 겨울, '영어 공부를 하자, 담배를 끊자, 가족여행을 가자'는 뻔한 새해 다짐을 뒤로하고 인생 처음 내가 누군지 생각했다. 며칠을 반복하며 인생을 그리고 '나'란 사람을 돌아봤다. 그렇게 며칠을 분석하고 공부했다. 평생을 학교 공부, 자격증 공부, 회사 업무에 대한 공부만 하다 진짜 '나'를 처음 마주한 시간이었다. 남한테 보여줄 게 아니라 솔직하고 빠짐없이 나를 꺼냈다. 진실의 방에 들어가 평생 동안의 일기를 한 번에 몰아서 썼다.


초등학교 2학년, 수학이라는 과목을 버렸다. 구구단을 거꾸로 외울 때까지만 해도 수학 천재인 줄 알았다. 분수, 도형을 배우면서 머리가 하얗게 되더니 수학이란 과목이 싫어졌다. 곱셈 수준인 나를 뒤로하고 진도는 빠르게 넘어갔다. 그렇게 수학은 찍고 자는 과목이 됐다. 25살 이과 전문대학을 들어갈 생각을 그때는 못했다. 지금도 한번 본 전화번호는 잘 잊지 않는 걸 보면 수학이 아니라 암기만 잘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실컷 놀다 연합고사 3개월 전 실업계를 가면 가족들이 창피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3개월을 미친 듯 공부해서 인문계를 갔다. 대학교 땐 같은 학교 원무과에서 일하는 친누나가 창피한 게 싫어 1등을 다짐했다. 취직을 할 때도 중소기업은 싫어 최소 중견기업에 다녀야겠다 결심한 나다. 새로운 환경에서 나를 소개할 때, 이력서를 쓸 때, 잘 보이기 위해 장점은 강조하고 단점은 가리고 살았다. 인간은 군중심리가 있어 남을 의식하도록 설계돼 있다지만 나는 유독 심한 것 같다. 앞서 말한 흙수저, 전문대 졸업생이란 틀과 열등감이 나를 그렇게 살게 했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걱정만 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작업을 마치고 스스로에게 평판쟁이란 별명을 지어줬다.


또 다른 나는 달랐다. 잘하는 게 별로 없다 생각하며 살았지만 의외로 잘하는 게 많았다.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분위기를 재밌게 만드는 사람이고 운동도 제법 잘한다. 소름 끼치게 잘하는 건 없지만 어떤 자리에서도 어울릴 수 있게 뭐든 보통은 했다. 내 주장만 펼치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상담을 잘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덕분에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글 속에 다 표현하지 못해 이 정도만 쓰지만 나를 돌아본 후로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벌거벗은 그대로의 나를 인정했다. 나를 인정하니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여유가 생겼다. '너 때문에 이거 못했잖아, 상사 때문에 일을 못하겠어'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게 되면서 짜증과 분노가 줄어 들었다. 짜증과 분노로 쏟는 에너지와 시간을 술과 게임 대신 자기 계발에 쓰기 시작했다. 나와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은 엄청난 시너지를 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 주었다.


우리는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받는다. 아니, 철저하게 세뇌당한다. 정부가, 학교가, 부모에게 좋은 대학과 직장이 인생의 종착역인 듯 세뇌받는다. 인간의 뇌는 20대가 되면 성장이 끝난다 했던가? 성장이 끝날 때까지 세뇌당하는 것이다. 성장이 끝난 뇌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 보며 평생을 살게 만든다. 정작 나 자신이 누군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이 자란다. 좋은 교육이 아니라 좋은 세뇌를 받았다. 자신에 대해 모르는 데 어떻게 적성과 미래를 고민할 수 있을까? 전문가를 찾아 조언을 듣고 컨설팅을 받으면 정말 알게 될까? 그 시간 동안에도 자신을 감추진 않을까? 나만 모르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지, 뭘 좋아하는지, 이력서에 쓰는 장단점 말고 진실의 방 속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장점은 뭐고 단점이 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생각만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종이나 컴퓨터에 꺼내 써봐야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건 아니니 솔직하게 써야 한다. 평생 교과 공부만 해봤으니 휴식이라 여기고 자신에 대해 깊게 고민해봤으면 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정말 많이 느끼고 배웠다. 많은 지인들에게 공유했지만 해본 사람은 한 명뿐이다. 사는 대로 생각하다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인생을 돌아본 이유는 꿈과 목표를 가지기 위해서였다. 내가 누군지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살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지도 몰랐기 때문에 빚쟁이가 됐다고 결론지었다. 내 생각은 맞았다. 즉흥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만 있었다. 성격이 급한 걸 알고는 있었지만 조심하지 못했다. 이후로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키보드를 두드리던 나를 생각하며 한번 더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평판을 중요시해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의 눈치를 보며 꿈을 죽이고 살았지만 지금은 꿈을 키우며 산다. 덕분에 아침 일기는 긍정과 감사한 일들로 채워진다. 그저 나의 경험일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도무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면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글로 써보는 하루를 가져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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