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빌런이 탄생했다. 자기 신용을 팔아 가족의 돈까지 갈취한 악랄한 놈이다. 32년을 평범히 살던 청년이 악당이 돼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3개월을 잡히지 않고 남의 집에서 숨어 지냈다. 그놈을 잡기 위해 경찰 대신 은행 직원이 고향집을 찾았고 도주는 끝이 났다.
악당이 되기 전 3년 동안 천만 원을 모았다. 악당이 되고 3개월 만에 빚을 오천 만원이나 모았다. 이유가 생겨 다니던 회사도 그만둔 때다. 중견기업을 다니던 30대 청년에서 백수인 빚쟁이가 됐다. 독촉 문자와 전화가 끊이질 않아 저녁 7시까지 핸드폰을 무음으로 뒀다. 당장 천만 원이 필요했고 매달 200만 원씩 갚아야 했다. 70 넘은 아버지, 50 된 누나한테 이 사실을 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3개월을 남의 집에 숨어 살았다.
빌런 1개월 차,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목숨을 연명했다. 컵밥을 먹기도, 빵 하나로 두 끼를 버티기도 했다. 빌런 3개월 차, 제일 친한 친구한테 돈을 빌려 먹을 것과 술을 샀다. 빚쟁이 주제에 예전처럼 하루만 살고 싶었다. 소주 1병, 맥주 2캔을 마시고 취해 밖으로 나갔다. 뻔한 얘기지만 죽고 싶어졌다. 때를 기다린 듯 악마가 찾아와 옥상에서 손짓했다. 유혹에 넘어가 곧장 엘리베이터를 탔다. 인생이 곧 끝날 걸 아는지 심장이 두근댔다. 옥상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 살아야 할 오만 가지 이유를 찾았다. 70 넘은 아버지를 두고 가는 게 맞는지, 빚은 갚고 죽어야 하지 않는지, 빚을 갚으면 죽을 이유가 없는데 나는 어딜 가고 있는지. 살 이유를 끝없이 생산했다. 옥상 가는 계단을 밟기도 전 죽는 걸 포기했고 방으로 돌아와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죽는 것도 못하는 겁쟁인 게 서러웠다. 겁쟁이 주제에 뭘 믿고 잘될 거라 확신했는지 자책했다. 그날 이후, 내 시선은 옥상 대신 모니터를 향했다. 기꺼이 창고방을 내준 나의 영웅이 출근하면 저녁까지 이력서를 냈다.
취직 전 상황을 냉정하게 정리했다. 당장 갚아야 될 천만 원은 나중에 생각하자. 그것보다 중요한 건 취직이다. 매달 200만 원 정도 갚으니 월급은 최소 280만 원은 돼야 한다. 무조건 기숙사가 있어야 한다. 목표를 정한 뒤 몇 군데 면접을 봤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합격했다. 당장 갚아야 할 돈은 결국 가족의 도움을 받았다. 죄책감이 들 땐 결국 '전화위복이 됐다' 자신을 지킨다. 악당이었던 나는 회사에 적응해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왔다. 월급은 2년 전 보다 70 만원이나 올랐고 여유롭진 않지만 제법 살만 해졌다.
평범한 청년은 6개월 전 이런 결론을 내렸다. 지금처럼 착실히 살면 3년 후 빚은 다 갚는다. 제법 능력을 인정받았고 연봉은 계속 오를 거다. 하기에 따라 임원까지도 될 순 있겠다. 다만 회사 수입으로만 빚을 청산하면 3년이 걸리고 37살이 된다. 그때부터 돈을 모으면 집은 살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월급이 천만 원이 되면 빚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월급이 70만 원이나 올랐지만 여전히 궁핍하다. 이런 인생이 반복될 것 같다. 다르게 생각하자. 기하급수적으로 돈 벌 방법을 찾자. 월급을 받지 말고 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나보다 더한 상황을 이겨낸 사람의 책을 읽고 따라 하자. 성공한 사람은 글을 잘 쓰던데 읽은 내용을 정리할 겸 글도 쓰자. 이왕 글 쓰는 거 작가도 도전해보자. 어차피 망한 인생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자 결심했다. 퇴근 후 게임과 술로 보내던 시간에 책 읽고 실행하면 뭐 하나 이루지 않을까? 이루지 못해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6개월이 지났다. 크게 인생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좋게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정신력이 강해졌고 꿈과 목표가 생겼다. 회사와 관련 없는 꿈과 목표지만 출근이 싫지 않다. 오히려 강의를 듣고 책을 살 수 있도록 월급을 주는 회사에 감사함을 가진다. 내가 이렇게 사는 동안 나를 도와준 제일 친한 친구가 주식으로 망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은 과학이 맞나 보다. 내가 지나온 길을 그 녀석도 똑같이 걷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사건을 인생의 기회로 해석한다. 두 빚쟁이의 인생에 빛이 들어왔으면 한다. 그렇게 믿는다.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그 빛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