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를 따온 원숭이의 현실
틀에서 벗어나도 정신은 나를 괴롭힌다.
절대 이루지 못할 일들을 이뤄냈다. 꿈에 그리던 벤츠를 타고 바다를 눈에 담는다. 루프탑이 있는 집에서 파티를 한다. 넓은 수영장에서 헤엄을 친다. 구름 사이를 자유롭게 날며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띠리링, 띠리링" 새벽 5시 30분. 모든 행복은 창문 사이 들어온 빛을 따라 사라진다. 꿈에서 깨면 하루 더 나이를 먹었을 뿐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최근 좋은 꿈을 많이도 꾼다. 눈뜨자마자 실눈으로 핸드폰을 집어 하늘을 나는 꿈, 수영하는 꿈을 검색한다. 부자가 된다, 원하는 걸 이룬다 좋은 일만 생기는 꿈들. 이런 꿈들은 정말 내가 잘되려나? 하는 뽕에 취하게 한다. 뽕이라는 마약에 취해 좋은 꿈을 꾸나보다. 그 꿈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환상. 34살 빚쟁이가 거창한 목표가 생겨 좋은 꿈을 꾸나 싶다.
인생의 속도는 10대에는 10km, 20대에는 20km, 30대에는 30km로 간다는 말이 있다. 34살이 되니 뼈저리게 공감된다. 삶이 지나가는 속도에 맞춰 꿈과 목표도 낮아진다. 10대에는 20대가 되면 좋은 차를 타고 돈을 펑펑 쓰며 특별하게 살 줄 았다. 20대엔 특별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며 평범한 가정을 꾸리자 다짐했다. 30대가 되니 좋은 직장은 아니지만 만족하자. 행복하게 살자. 열심히 살다 보면 결국 잘살거라 마음을 고쳐 먹었다. 40대엔 어떨지 궁금하다.
포기를 즐기는 내가 인생을 바꿔 보겠다며 남들 자는 시간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10분 명상을 하고 아침 일기를 쓴다. 5분을 뛰고 씻고 나서 책을 읽는다. 34년 중 지난 6개월을 가장 바람직하게 살았다며 스스로 칭찬을 건넨다. 많은 것이 좋게 변하고 있다 위로한다. 주변에서 어떻게 퇴근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지 묻는다. 지금처럼 하면 꼭 잘될 거라는 응원의 메시지도 보내준다. 요즘 그 응원들을 의미 없게 만들고 있다. 2주 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변화가 찾아왔다. 6개월 동안 5시 30분에 일어났는데 최근 2주는 6시 30분이 돼서야 일어났다. 퇴근하고 늘 읽던 책 대신 TV를 본다. '추석 때문에 시차 적응이 안 됐구나' 나를 속여본다.
주위에서 대단하고 멋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잘하고 있는 척 포장질만 했나 보다. 생각이 깊어져 한참을 우울하게 앉아 있다. 우울함을 달랜다는 핑계로 6개월 전 끊었던 게임 속으로 도망친다. 1시간만 하고 글을 쓰자는 다짐은 게임의 재미를 이기진 못하나 보다. 지옥에 살던 원숭이 한 마리가 검은 옷을 입고 찾아와 내 팔을 사정없이 당긴다. "어차피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인생이 바뀌겠어?" 속삭인다. 그 속삭임을 핑계로 3시간을 게임에 몰두한다. 그것도 모자라 유튜브까지 본다. 이게 내 본모습임을 새삼스레 알게 된다.
실컷 놀고 나서 자책한다. '역시 너는 안될 놈이야. 또 멋있는 척하면서 살고 있지?' 채찍질한다. 요즘 이런 생각들이 찾아와 내 정신은 가출이 잦다. 계획한 일도 안되고 글 쓰는 것도 쉽지 않다. 정신을 잡기 위해 다음 날 아침 일기를 쓴다. 해야 할 일을 안 했으니 오늘은 꼭 하자 협상을 해본다. '저녁의 나'는 협상을 무시하고 악수를 건넨 '아침의 나'에게 뒤통수를 갈긴다. 퇴근하고 6시가 되면 피곤함에 정신이 나가 있다. 하루만 더 쉬자 이 컨디션으로 뭘 해? 스스로를 다독여 놓고 친구와 소주 한잔 적셔 본다. 이런 내가 어떻게 6개월 동안 퇴근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잘 버텼다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참 많이도 참았다. 다음날을 외치며 미루고 미루다 보니 매일 10분이라도 읽던 책을 열지 않는 날이 생긴다.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그렇게 2주일이 지났다. 요즘 고민이 많고 늦게 자서 힘든가 보다. 10시에 자서 아침 5시에 일어나자 결심한다. 인간의 몸은 정말 신기하다. 2주 동안 12시에 자는 버릇이 들어 누워도 잠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1시간을 눈만 감은 채 누워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일까? 스트레스 때문일까? 몽유병이 나를 이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새벽 3시까지 글을 쓴다. 그렇게 뭔가 해냈다며 자위한다. 피곤을 없애긴커녕 더하고 만다. 3시간을 자고 겨우 일어나 일기를 쓴다. 다시 열심히 해보자 다짐하지만 퇴근 후 게임을 한다. 생각한 것들을 미루고 포기하며 34살까지 살아왔다. 그래서 삶이 크게 변하지 않았나 보다. 역시 간밤에 꾼 좋은 꿈은 잘될 거라 안심을 주는 환상이 맞나 보다.
이렇게 정신이 약한 내가 최근 주위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글을 쓰게 만들고, 어떤 친구는 사업을 꿈꾸게 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중 누구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생활 습관을 바꿔간다. 이런 내가 과연 꿈을 포기해야 할까? 살다 보면 나 자신이 미울 때가 분명 온다. '왜 이렇게 게으를까?', '뭐하나 잘하는 게 없을까?', '나는 왜 매번 포기할까?' 부정적인 생각이 그림자처럼 지독하게 따라온다. 이럴 땐 부정이란 그림자는 없어지지 않는다 인정해버리자. 어느 날 갑자기 부정이 찾아와 힘들게 한다면 이렇게 생각하자. 원하는 걸 이루기 직전에 부정은 꼭 찾아온다고. 어두울 땐 찾아오지도 않는 부정이란 그림자가, 인생의 빛이 보이려니 조용히 찾아와 날 괴롭히는 거라고. 내게 달라붙은 이 그림자를 쫓아 내야만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3년 전, 엄마를 찾아가려 했다. 열심히 빚어 만든 빚 때문에 눈이 멀어 버렸다. 세상에 보이는 것은 옥상뿐이었다. 그럼에도 잘 이겨냈다. 사실 죽을 용기도 없는 겁쟁이다. 그 겁쟁이는 3년이 지나 꿈을 만들었다. 잘될 수 없을 거란 부정은 내 몸을 옥상으로 끌고 갈 정도로 힘들게 하지 않는다. 그때보단 미친 듯이 좋은 상황이다. 이겨낼 수 있다. 못하는 일, 안 되는 일에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 부정 따위에 먹히지 말자. 눈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힘든 마음, 우울한 마음은 행복해질 때면 당연히 나를 찾아온다 생각하자. 이렇게 정신을 잡았다 생각하는 난 아침 일기에 또 긍정적인 글을 쓰겠지. 그러고는 저녁이 되면 실컷 놀고 다음날 채찍을 들겠지. 이렇게나 게으르고 포기가 많은 나 같은 사람도 꿈을 꾸며 산다. 34살 마누라, 여자 친구가 없어도 산다. 통장에 잔고 대신 빚만 넘쳐도 숨만 잘 쉰다. 다짐하고, 포기하길 반복하며 결국 잘될 거라 위로하며 산다. 이렇게 사는 나를 봐서라도 그냥 살아줬으면 한다.
너무 힘든 날이면 방안에 불을 끄고 옆으로 눕는다. 왼쪽 손을 오른쪽 어깨에 빌려주며 토닥인다. 그래도 살아줘서 고맙다고. 그때 죽지 않고 살아줘서 감사하다고. 또 이겨내 보자고. 그렇게 며칠을 하다 보면 최면에 걸려 또 살게 되더라. 부정과 힘든 마음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다. 힘든 순간이 오면 괜찮아질 때까지 내 어깨를 토닥이자. 부정이란 지옥의 원숭이가 내 팔을 잡아당겨도 긍정이란 바나나를 따오자. 그렇게 다짐하자.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헬조선에서 따온 바나나 껍질을 벗기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