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바나나를 먹는 법

틀에서 벗어나야 할 때

by 스로

대한민국의 다른 이름 헬조선. 우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이름이다. 헬조선이란 지옥을 의미하는 ‘헬(hell)’과 ‘조선’을 결합하여 만든 단어로 열심히 노력해도 살기 힘든 한국 사회를 뜻한다. 네이버 어학사전에 등록될 만큼 유행이 됐고 코로나처럼 전염성 또한 강하다.


우리는 헬조선을 외치며 자신을 지키고 있다. '내가 불행한 이유는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화한다. 힘든 건 맞지만 정말 지옥 같을까? 과연 전쟁을 겪은 내 부모님의 시대보다 지옥일까? 최루탄을 맞아가며 학교를 다니고 있나? IMF 때보다 직장 찾기가 어려운가? 우크라이나처럼 포탄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나라에 살고 있진 않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죽는 나라도 아니다. 헬조선은 우리가 낳아 기르는 괴물일 뿐이다.


우리는 같은 해에 태어난 친구들과 좋든 싫든 경쟁하며 살아간다. 같은 길을 달리며 1등을 가린다. 다른 길로 빠져 1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누군가 나보다 앞서 달리고 뒤에선 쫓아온다. 그렇게 목적지도 모른 체 남들과 같이 달린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알아갈 여유가 없다.


사회, 학교, 부모가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을 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른 길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길이 두려운 이유는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헬조선을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성공이라 배웠으니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다. 남을 이겨야 하고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한다. 누구의 탓도 아닌 관습과 틀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 삶이 행복하다면 괜찮다. 불행하다 느낀다면 관습과 틀이 나를 막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친구들과 수능이라는 같은 길을 달리지 않았다. 수능날 아침 피곤하다는 이유로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말은 안 했지만 부모님은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늦둥이에 6대 독자가 아니었다면 그날 호적에서 영영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수능을 보지 않았고 전문대를 나왔지만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관습과 틀에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 덕에 적어도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지 않아도 불행하지 않은 이유다. 어차피 대기업을 다녀도 숨이 막혀 도망쳤을 것 같다.


전쟁을 겪은 내 부모님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굶으면 안 되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한다" 늘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걱정과 가르침을 뒤로하고 안정적인 대학 대신 실용음악과를 갔다. 어머니는 내 앞에선 "그거 해서 밥 못 먹고 산다" 하시고 미용실에 가서는 아들이 가수가 될 거라 자랑하셨다. 미용실 아줌마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시큰했던 기억이 난다.


실용음악과 다니면서 싱어송라이터를 꿈꿨다. 솔직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가수를 꿈꿨다. 반에서 노래를 제일 못한다는 틀에 박혀 싱어송라이터로 꿈을 바꿨다. 도전과 열정을 쏟기보다 열등감을 인정하고 포기와 손을 잡았다. 노력보다 포기가 쉽지 않은가? 어차피 안된다는 틀에 나를 가뒀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노력은 해보지도 않고 인생에 처음 가진 꿈을 버렸다. 그때 노력했다면 내 노래가 세상에 전해졌을까? 가끔 후회된다.


그 후로 자신감이 없어졌고 학교를 도망쳐 아르바이트만 했다. 꿈을 향해 달려갈 시간을 고작 시급 6,000원에 팔아넘겼다. 꿈을 좇기보다 서울 생활의 달콤함을 쫓았다. 환갑이 넘은 부모님의 노동에 대가를 고스란히 학교에 기부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때 학교를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며 미안해하신다. 아버지와 술을 마시며 이 얘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6개월 전만 해도 헬조선에 살고 있어 빚쟁이가 됐다 세상을 비난했다. 금수저가 아닌 내 삶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껏 해봤자 회사 임원이 내가 갈 수 있는 최고 위치라 확신했다. 그 누구도 내게 빚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라 강요하지 않았다. 전부 내가 한 의사결정의 결과다. 우리는 사는 대로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위치는 내가 선택한 결과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세상과 환경은 절대 틀 속에 나를 가두지 않는다. 수없이 손을 뻗으며 기회를 준다. 틀 속에 가두는 범인은 자신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빚쟁이다. 빚쟁이 따위가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업을 생각하고 작가를 꿈꾼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와닿지 않겠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다. 생각하는 걸 행동으로 옮기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 적어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사업과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5개월 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썼다. 작가라는 꿈에 닿기 위해 2번에 걸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대학교 때처럼 해보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 대신 도전했다. 그 결과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단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사업가와 작가라는 꿈은 모두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는 게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헬조선 안에서 도전하는 과정이 행복으로 나를 인도할 거다. 20살에 나처럼 포기해서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해보고 실패하는 것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포기하는 것이 몇 배는 후회된다. 누구나 창피해 말하지 못하는 꿈이나 목표 하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다른 길이라고 눈치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헬조선", "너는 안돼"라고 말하는 관습과 틀에서 도망치길 바란다. 헬조선, 안돼를 외치는 사람은 꿈이 없거나 꿈을 이뤄본 적 없는 사람이 분명하다. 꿈이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동물원에 원숭이 무리가 있다. 나무에 바나나를 매달아 놓자 원숭이들은 나무에 오른다. 그때 한 원숭이가 바나나 근처에 갔을 때 물대포를 쏴서 원숭이들을 나무에서 떨어 뜨린다. 이 상황을 반복하면 원숭이들은 나무에 오르지 않는다. 더 이상 원숭이들이 나무에 오르지 않으면 새로운 원숭이를 집어넣는다. 그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려 하니 주위에 모든 원숭이가 필사적으로 막는다. 그 원숭이는 이유도 모른 체 바나나를 먹지 못한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헬조선을 외치는 지옥 안 원숭이들의 팔을 꺾어야 한다. 그들이 만든 지옥에서 보란 듯 바나나를 따와야 한다.


관습과 틀에서 벗어나자. 헬조선은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의 괴물일 뿐이다. 당신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기회가 많다. 헬조선을 외치며 환경을 탓하고 있다면 틀에서 벗어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행운을 쫓기보다 기회를 찾는 삶을 사는 게 더 멋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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