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바꿀 수 없는 단 한 가지. ㅌㅅ

탄생 말고는 모든 걸 바꿀 수 있다.

by 스로

한 여자가 침대에 누워 온몸에 힘을 주고 있다. 손톱과 발톱 끝까지 힘을 주고 사지를 비틀며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출산은 모든 부모에게 특별하지만 폐경을 앞둔 그녀에게는 더욱 소중했다. 무려 6대 독자였고 인생 마지막 출산 시도였다. 지금 시대에 6대 독자가 뭐냐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녀와 남편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탄생이었다. 반면 다른 사람이 볼 때 특별하진 않을 것 같다. 그저 쉰 둥이로 태어났다. 6대 독자로 태어났고 엄마가 50살이 많을 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다. 인생에 유일하게 선택할 수 없던 한 가지다. 부자는 아니지만 특별한 존재로 태어났다. 부모님과 달리 나는 그 특별함이 창피했다. 도심 속 기와집, 할머니로 보이는 엄마와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마주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등교할 때면 기와집 쪽문을 살짝 열고 발소리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터벅터벅 소리가 없어지면 잽싸게 쪽문을 열고 등교했다. 다른 애들이 차를 타고 집에 올 때, 흰머리를 헬멧으로 가린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하교했다. 재벌 2세는 아니지만 특별하다 느껴졌다.


우리 집에서 태어난 게 싫었다. 일이 안 풀리면 때마다 불러 책임을 넘겼다. 성적이 안 나올 땐 좋은 과외를 못해서, 특별한 재능이 없는 건 부자가 아니라서. 세상 편한 방어술을 가지고 살았다. 엄마와 눈만 마주치면 싸웠다. 초등학교 때는 왜 생일파티를 안 해주냐 싸웠고, 중학교 때는 가족여행 한번 못 가냐 싸웠다. 고등학교 때는 메이커 옷을 사달라고 싸우기도 했다. 회상하는 지금 너무 부끄럽다. 당장 엄마한테 사과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사과를 못하는 이유는 글을 보고 있다면 충분히 알거라 생각한다. 부모님에게 잘해라. 전화 자주 해라. 탄생을 선택할 수 없듯 엄마의 죽음도 선택할 수 없더라.


수많은 불효를 저질렀지만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불효는 단순하다. 초등학생 때 매달 소풍을 갔다. 엄마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김밥을 쌌다. 도시락을 열면 애들이 모일 정도로 맛있었다. 몇 개 집어 먹고는 남은 김밥을 가방에 넣었다. 애들과 가져온 과자를 까먹고 실컷 놀다 집에 오는 길. 남은 김밥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김밥을 남겨 가면 엄마가 서운할 걸 알긴 했나 보다. 아직도 쓰레기통에 버리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생각이 날 때면 가슴이 조이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가 떠오른다.


이랬던 내가 어릴 적 집과 부모님을 창피해하던 걸 생각하면 얼굴에 니킥을 꽂고 싶다. 가끔 술을 마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치곤 한다. 우리 집에서의 탄생. 내 인생 유일하게 선택할 수 없던 한 가지다. 나머지는 선택할 수 있었다. 기와집 쪽문을 당당히 열고 나갈 수 있었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창피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과자를 먹기 전에 김밥부터 먹을 수 있었다.


세상과 환경에게 넘기는 책임은 시간이 지나 큰 후회가 되는 것. 시간은 돌아오지 않다는 것. 원망해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34살이 돼서야 알게 됐다. 지금이라도 깨달은 것에 감사하다. 엄마를 원망이 아닌 후회와 반성, 추억으로 그릴 수 있어 다행이다. 늦둥이란 특별함을 준 부모님께 감사하다.


탄생과 부모는 백만장자도 바꿀 수 없다. 나머지 환경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성별도 바꾸는 세상이다. 흙수저라 세상을 비난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상황이 좋지 않다면 잘난 사람을 보지 말자. 힘들 땐 나보다 안 좋은 사람을 보고 '이런 사람도 산다' 생각하자. 내가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쁜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면 비슷한 상황을 이겨낸 사람의 길을 따라가자. 당신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세상을 비판만 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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