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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검 Sep 02. 2021

슬기로운 검사생활

제1장  지난 8년을 기록하다

두 사람(4)


누나, 민이 죽었어. 동생 살인자 되겠다. 전화 좀 받아.


<검사>

    피고인이 이 사건 당일 15시 23분에 피고인의 누나에게 전송한 문자메시지입니다. 그 시각 피해자는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만 사망한 상태는 아니었고, 의사도 사망가능성을 언급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자신의 누나에게 이런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피해자의 죽음으로 애통하거나 슬프다는 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처벌을 두려워 하는 내용으로 말이죠.


    만약 피고인이 사망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즉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와 같은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자메시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한 사실이 밝혀지면 형사책임을 물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의 표출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변호인>

    검사님의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살인범이 되겠다'는 문자메시지는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그 현장에 두 사람밖에 없었으니 억울한 누명을 쓸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때문에 보낸 것일 뿐입니다. 누구나 한 곳에 있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죽으면 다른 한 명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사님께서도 그런 의심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셨고, 결국  피고인을 기소한 것 아니십니까?   




<검사>

    피고인에 대한 폴리그래프 검사, 소위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입니다. 검사관의 질문에 대해서 피고인은 모두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전부 거짓반응이 나왔습니다. 물론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해선 여러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증거들에 이번 검사 결과까지 더하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된다고 봄이 상당합니다.

검사관) 그날 본인이 그 여자를 때려 다치게 했습니까?
피고인) 아니오.  [거짓반응]
검사관) 그 여자를 때려 사망하게 한 사람이 본인입니까?
피고인) 아니오.  [거짓반응]
검사관) 본인이 그날 그 여자 머리를 다치게 한 사실이 있습니까?
피고인) 아니오. [거짓반응]
검사관) 그 여자를 때려 사망하게 한 사람이 본인입니까.


<변호인>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려면, 즉 증거로 사용할 수 있으려면, 첫째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일정한 심리상태 변동이 일어날 것, 둘째 심리상태 변동은 일정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킬 것, 셋째 생리적 반응에 의하여 피검사자의 말이 진실 여부를 정확히 판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조건이 성립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거짓말탐지기 기술은 이러한 전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대해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없다는 태도입니다. 변호인은 이 검사 결과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영화 '배심원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참여재판에 한하여 배심원이 활약한다. [출처 : 네어버 영화]


양 측 추가로 제출할 증거가 있습니까? 없으면 검사님부터 최종의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

    피고인은 잔혹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음에도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정에서 제출한 여러 증거들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연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생명에 대한 침해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중대한 침해이고, 피해자의 유족이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시어 피고인에게 징역 ○○년을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변호인>

    이 법정에 제출된 증거는 모두 정황증거 내지 간접증거에 불과하고,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직접증거는 없습니다.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변호인은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말씀드렸는바 과연 검사의 증명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는지 의문이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주시고, 설령 견해를 달리 하시더라도 피고인이 초범인 점, 피고인은 119신고를 하여 피해자를 병원으로 후송하는 등 성실히 구호조치를 취한 점, 피고인도 폐암 초기 증상으로 치료받고 있고, 사랑한 연인을 떠나보내어 슬픔에 잠겨 있는 점 등을 고려하시어 최대한 선처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피고인>

    죄송합니다. 형사적인 책임은 모르겠으나 도의적으로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종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선고는 2주 뒤 이 법정에서 하겠습니다.


<계속>




    * 이번 사건은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있었습니다. 증인신문까지 포함해 몇 번에 걸쳐 진행됐던 공판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나의 공판처럼 정리했습니다. 검사와 변호인의 주장, 독자 여러분께서 배심원이라면 누구의 손을 들어주실까요? 댓글로 말씀해 주셔도 재밌을 듯 합니다! 그럼 저는 차분히 다음 글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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