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성은 어디서 정해지는 걸까? 혹은, 우리가 실용적으로 본성이란 것을 알아서 쓸모 있을 일이 뭐가 있을까?
먼저, 사람에게 우리가 비쳐지는 모습에 우리의 본성이 들어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 이 사람은 이런 사람 이라는 판단이 '나'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들 듯이, 다른 사람들도 나를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관계의 초반에는 나를 좀 숨긴다지만, 관계가 후반으로 갈 수록 자신을 숨기기가 어려워진다. 숨기기 어려워진 나의 본성은 튀어나오게 마련이고, 이 본성은 결국 그 관계의 질을 결정짓는다.
사람이 본성을 어떻게 숨길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본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면, 그걸로 관계의 질이 정해진다면, 본성을 바꿀 수는 없을까?그래서 본성이 뭔지를 고민해보았다.
결국 내가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인데, 왜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거지? 본성이 뭐길래? 본성이 뭔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본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본성이 언제 드러나는지이다.
바로, 내가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 본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인간 특유의 촉으로 모두 그것을 감지한다. 마치 번식기간이 된 동물이 호르몬을 뿌리듯이,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자기도 모르는 새에 드러내어 사회적인 판단을 받게 된다. 번식이 어려울 때도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은 본능적으로 쾌와 불쾌를 불러온다. 그 자체에는 급이 없어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본성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에 하고 싶은 말은, 본성은 숨길 수 없다는 것인데, 이 본성이 어떤 순간에 드러나는지를 살펴보자.
주변 사람들이 자주 반복하는 행동 (이야기를 많이 한다던가, 자신을 과시하는 행동을 한다던가)을 통해서도 본성을 볼 수 있다.
지인이 자잘하고 세세하게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 이해받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주고, 그 중에서도 내 생각을 인정받기를 바라는 욕구일 수 있다. 자신을 과시하듯이 행동하며 여러 사회적 안전망들을 마련해둔다면, 이는 자신의 존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세속적 성공이라는 뜻이 되겠다.
여러가지가 모여서 한 사람을 만들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본성이 드러나는 시점은 나만 모른다는 것이다.
자, 그래서 본성이 뭘까?
위에서 힌트를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내가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들은 내 내면상태를 반영한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과도하게 드러날 때 눈에 튀는 본성이 되기 십상이다.
내면이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은 내면에 있는 사랑이 자연스레 드러나고, 내면에 긴장감이 큰 사람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해도 다른 느낌(더 불편한 느낌)이 상대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결국 인간관계가 나는 애쓰고 최선을 다하는 데도 잘 안 풀린다면, 나의 내면에 있는 가장 중요한 감정, 가장 큰 감정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면 좋을 것이다.
상대는 다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우세한 감정이 부정적인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나도 불편한) 감정이라면? 사실 그냥 살아도 되지만, 고치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내용에 답이 나와있듯이, 내 내면의 감정을 잘 돌보아주어야 한다. 감정을 돌보는 법은, 후에 또 써보고 싶은데 갑자기 써본다면 사실 가장 좋은 건 그대로 마음대로 해보는 편이 낫다.
보통 감정은 쌓이고 억제당하다보니 더 커지는 경우가 많지, 다 드러내서 해소하고도 남아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 가장 큰 게 평가당할 때의 긴장감이면, 그래서 발표 자리를 매번 망친다면?
잘하려고 더 보완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게 진짜 내 실력을 올리고 싶은 편안한 마음이 아니라, 긴장 가득 차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애씀이라면... 차라리 그냥 망쳐라. 대신 제대로 망치고,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방망이질하는 그 상황을 제대로 만끽하라. 얼마든지 망쳐라. 큰 일 안 나고, 내 존재가 바닥까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그냥 의미 없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바닥이란 것은 없고, 내가 겪는 그 부정적이고 괴로운 그 수치심과 고통만이 바로 바닥이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천국과 지옥은 바로 내 마음 속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부끄럽고 수치심이 올라온다면 그대로 느끼고, 그냥 그 상황에서 나(에고)는 없애고, 감정이 휘몰아치도록 내버려두어라.
내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 통제할 수 없는 느낌이 든다면, 그래서 그만두고 다시 감정을 억제하고 싶어진다면 에고가 위협을 느낀다는 뜻이다. 걱정 말고 할 수 있는만큼 확실히 휩쓸려라. 그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면, 세상이 좀 달라보일 것이다. 어쩌면, 옛날에 너무 슬퍼서 펑펑 몇시간이고 울고 난 후 느껴지던 해방감, 그리고 안락함을 느낄 수도 있다. 혹은, 처음으로 그런 느낌을 느껴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괜찮지만, 하나 명심할 것은 내가 방치한 감정들은 언제까지고 방치할 수는 없으며, 방치해온 그리고 억눌러온 횟수만큼 많이 쌓여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두번으로 안 되면, 하루에 한 번이든, 일 년에 한두번이든 하다보면 조금씩 풀려나갈 것이다.
고생해왔지 않은가. 나와 너 모두 다 힘든 삶을 어떻게든 버텨내느라고 고생해왔을텐데. 감정이 바라는 해방을 시켜줄 명분도 의미도 충분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바로 그 감정을 느껴주자.
눈물이 나도 되고, 울음이 터져도 되고, 고성을 지르며 부숴버리고 싶으면 A4를 박박 찢거나 베개를 마음대로 패버리자. 나랑 타인을 다치게만 하지 않는다면 뭐든지. 해보면 된다. 다치지만 않도록, 조심하니 내 마음의 많은 부분은 해방되었다. 당신도 바로 그런 느낌을 느낀다면, 힘들고 지치고 고된 여정이지만 카타르시스를 딱 그 힘들었던 만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믿자. 힘든만큼 느낄 수 있는 사랑은 더 커져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지금도 충분히 지킴받고 있을 거고, 나만 모를 뿐이다. 어떤 사람도 예외는 없다.
이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