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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이 Jun 15. 2022

육아 그리고 금주





노는 걸 좋아했던 20대



술 마시는 분위기가 좋아

알코올이 들어간 알딸딸함이 좋아

어느 술자리도 빠지지 않고 


한잔 두 잔 석 잔 한병 두병을 먹어도

굳세어라 했던 나




그랬던 제가 20대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금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의지가 아닌 타인(아이)의 의지로(?)

시작된 금주








그렇게 큰아이가 10살이 되기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먹을 수 없었고

수유를 했기 때문에 먹을 수 없었고

아이를 재워야 했기 때문에 먹을 수 없었고

아이들이 잠든 밤 피곤한 몸으로 술 먹는 시간은 사치였기에 먹을 수 없었고 

육아서를 읽어야 했기에 먹을 수 없었고

시간을 쪼개서 사는 24시간 육아맘이기에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크고 커갔습니다. 




아이들이 클수록 몸은 덜 피곤해졌는데

마음이 피곤할 때가 있네요. 




조금의 너른 시간들이 생겼고 

마트의 맥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한 캔씩 두 캔씩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일 끝나고  들어와 밥을 먹는 신랑 앞에 앉아

맥주 캔을 땁니다. 




맥주는 캔으로 먹어야 제맛인 사람들이 있고

잔에 먹어야 제 맛인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집에서도 


굳이 유리잔에 꼭 따라 마십니다.


맛이 다르지요.ㅎㅎ 






부엌 찬장 제일 위층에 10년째 자리 잡은 유리잔이 이제야 쓰입니다.


대학생 때 화장품 사며 사은품으로 받은 잔인데 안 버리길 잘했습니다.








어떤 때는 닭발도 먹고

어떤 때는 오징어도 먹고

어떤 때는 쥐포도 먹고

어떤 때는 그냥 찌개 국물에 먹고 

애들이 남긴 과자에 먹기도 하고





하루 건너 한번

이틀 건너 한번

일주일 건너 한 번씩




알딸딸하고 나른한 몸으로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먹는다고 어떤 문제가 해결이 되진 않습니다.



20대와는 다른 몸이라

아침엔 속이 좀 불편하지요.




아이들이 커가고

예전 저를 찾은 냥 이런 시간이 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24시간은 

저에게 맥주 한 캔 따서 먹을 시간조차 주지 못했습니다.






24시간 제 몸 다 내어주며 아이들과 보듬어 살았던 10년 




시간을 낼 수 없을 때 그 시간이 소중한 줄 압니다.




어떤 것도 돌아볼 수 없이

아이들에게만 내주었던 제 시간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테고

저는 이런 너른 시간이 더 많이 생길 테지요.





인생을 돌아보면 짧지만 하루를 보면 긴 

그 하루하루를 채우다 보니 

이렇게 왔습니다.




이 시간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게요.




과거를 후회하며 한탄하며 이 시간 주정 부리지 않으려

하루하루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다 주어 함께했습니다.




머리숱도 많이 빠지고

가슴도 늘어지고

뱃살도 가득하고

피부도 푸석해진



저는 이제 맥주 2캔에도 취해버릴 만큼 주량도 약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알게 되었지요. 너무 큰 것을 배웠습니다. 



맥주 한 캔을 먹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니

헛되이 쓰면 안 된다는 것.



술의 힘으로 하는 나의 말들에는 후회라는 말이 없다는 것.






그동안 잘 참았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저에게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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