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태몽
이 글은 여러 번의 유산을 겪고, 지금의 아들을 임신한 후 겪은 경험을 중심으로 윤달의 특성과 그 힘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한 신비로운 이야기이다.
기이했던 다태아 임신과 유산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임신했다. 두 줄이 나온 임신테스트기를 화장대 안에 소중하게 보관했다. 그러던 2008년 가을의 어느 날, 꿈에서 한 남자아이를 만났다. 그는 내 침대 아래에 누워 있었다. 5살 정도로 보이는 그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었다. 아이는 매우 확신에 찬 눈빛과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엄마, 5월에 만나요.”
마치 미래에서 온 것처럼 말하는 아이로 인해, 혼란스러움과 놀라움,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반가움을 느꼈다. 아이와 인사를 나누다 잠에서 깨어났다.
배를 만지며 꿈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임신한 아이는 남자인가?’
‘이번에 임신한 아이도 잘못되는 건가?’
꿈에 나타난 아이는 남자아이였다. 아이가 만나자고 한 5월이면 임신 8개월 차로 10달을 채우지 못한다. 그동안 온갖 종류의 유산을 경험했던 나는 아이의 말이 현실이 되어 유산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다. 유산에 대한 불안이 컸지만, 뱃속에서 자라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기다림이 더 깊어지는 나날이었다.
‘태어나기만 해라. 미숙아면 어떻고, 장애가 있으면 어떡하랴? 나를 엄마라고 부를 내 아이인데’
남편이 일본 산부인과 의사가 쓴 태아에 관한 책을 선물해 주었다. 그 의사의 경험에 의하면 태아가 엄마의 목소리나 외부 소리, 심지어 엄마의 감정까지도 인지하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태어나서 뱃속에 있었을 때의 일을 기억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나는 배에 손을 부드럽게 올려놓고 따뜻한 목소리로 태아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아가, 잘 있지? 오늘은 어땠어? 엄마는 네가 찾아와서 너무 기뻐. 아빠와 함께 태명도 정했어. 너의 이름은 이제 ‘무럭’이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렴. 엄마는 너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마치 태아가 내 말을 알아듣는 듯, 태명이 불릴 때마다 배 안에서 작은 간질거림이 느껴졌다. 이는 마치 아이가 엄마에게 전하는 사랑의 인사처럼 여겨졌다.
무럭이를 가졌을 때, 입덧으로 고생하지 않았다. 대신 식성이 달라졌다. 원래 된장국이나 청국장을 싫어했는데 이런 것들이 좋아졌고, 고구마보다는 감자를 선호했는데 고구마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먹지 않던 나물도 잘 먹기 시작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암에 걸렸을 때, 용인까지 가서 무속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외할머니가 그 무속인의 입을 벌려하신 말씀이 있다.
“네 엄마가 아플 때 간호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너의 탯줄을 잠시 잡아두었단다. 네 엄마가 나으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어.”
그때 덧붙이신 말씀이 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신들까지 너에게 시기 질투를 느낀단다. 그들은 완벽한 너에게 단 하나 없는 것이, 바로 아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네가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든 그 아이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네 자궁을 흔든단다. 다음에 아이를 갖게 되거든 안정이 될 때까지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시기 질투!!! 내가 얼마나 힘든 삶을 버티고 있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나한테 시기 질투를...’ 이 말이 너무 황당하고 가슴 아파서 엉엉 울었다. “너 힘든 거 알아.”라는 말을 듣고는 더 크게 한참을 울었었다.
그래서 이번 임신 소식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남편의 지인이 남편에게 “부인, 임신한 거 아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아니라고 하는 남편 말에 그는 “지금 자네, 남편들이 입덧할 때 보이는 증상이야. 분명 부인 임신했을 테니까 데리고 병원에 가봐.”라고 말했다며 놀라워했다.
내가 임신하고부터는 남편이 순대 타령을 했다. 남편은 나에게 “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나는 순대가 왜 이렇게 당기지? 순대 볶음 먹으러 가자!”라고 말하곤 했다. 연애 시절 나는 야채 순대 볶음을 좋아했고 남편과 자주 먹었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고백하기를 자신은 원래 순대를 싫어하는데, 내가 좋아해서 억지로 먹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순대를 먹지 않았다. 그런 남편이 밖에서 만나는 이들에게도 계속 순대 타령을 했다고 한다.
임신 16주 차, 남편이 의사에게 물었다.
“아들인가요? 딸인가요?”
의사는 내 사연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특히 시댁에서 아들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큰소리쳐도 되겠어요.”
의사가 특정 부위에 동그라미를 친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건넸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남편의 입가에 기쁜 미소가 가득했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시어머니의 목소리에도 기대와 기쁨이 가득했다. 남편이 전화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남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번져 있었다. 나는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조용히 앉아, 가만히 손끝으로 배를 만지며 눈을 감았다. 나의 마음속엔 태아의 성별이 남자라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엄마가 된다는 부담감, 그리고 이 기쁨이 진짜로 모두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교차했다.
무럭이가 태어날 때까지,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에 대해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임신 기간 중에 위험한 시기도 있었지만, 아들은 꿈에서 자신이 말한 대로 2009년 5월에 나를 만나러 왔다. 아들이 태어난 2009년은 윤년(閏年)이었다. 윤년에는 1년이 열세 달이 되는데, 2009년에는 윤 5월이 공달로 더 있었다. 무럭이는 윤 5월, 양력으로는 7월에 무사히 달수를 채우고 나를 만나러 왔다.
나는 무럭이가 하늘이 나를 지키기 위해, 즉 삶에 지쳐 생의 의지를 잃은 나를 살리기 위해, 급하게 이 땅에 보낸 나의 호위무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의 호위무사인 무럭이는 신의 시기 질투를 피하기 위해 그렇게 윤달에 찾아왔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나는 윤달의 신비로운 힘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윤달은 덤으로 생긴 공달이므로 귀신도 노는 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재액(災厄)이 없어 결혼식이나 건축, 그리고 수의 만들기나 묘 이장 등, 평소에 하기 힘들었던 일들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해도 된다고 한다.
2017년 윤 6월에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신의 간섭이 없는 한 달 동안, 내가 경험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일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자고. 윤달 생일을 가진 아들을 위한 복을 짓고자 한 행동이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내 생각과 달리 냉담했다. ‘내가 직접 경험한 사실만을 말하는 건데 뭐가 문제인 걸까?’ 고민하고 공부하며 답을 찾는 사이에 한 달만 쓰려고 했던 이야기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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