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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멀거나 아주 가까이

시선이 머무는 곳

by 나야

며칠새 부쩍 입맛이 없었다. 그 좋아하던 밥이 입안에서 따로 놀았다. 연일 40도를 육박하는 폭염 탓이라고 둘러대면서 식탁에서 숟가락을 내려놓곤 했다.


헌데 입맛은 사는 맛과도 연관이 깊었다. 식욕이 떨어지면서 넘치던 의욕도 맥없이 곤두박질쳤다. 밤새 충전을 마쳤는데도 배터리에 빨간 불이 들어온 휴대폰처럼, 엔진이 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식욕 저하는 브런치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재일이 임박했지만 글이 한 줄도 써지지 않았다. 깜빡이는 커서와 눈싸움만 하다 시간을 흘려보냈다. 시계 초침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한 주만 쉬어갈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27년 전 이맘때였다.




당시 대학 졸업반이던 나는 이삿짐을 싸들고 서울로 향했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속으로 정해둔 곳은 있었다. 동기들은 대부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쪽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글공부를 하고 싶었다.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작가 양성기관에 등록하고, 부랴부랴 자취방을 구했다.


단출한 짐가방을 메고 서울 어느 골목에 도착하니 늦은 밤이었다. 사방에서 네온사인이 번쩍 거렸다. 역시 화려한 도시라고 생각하면서 이삿짐을 풀었다. 다음 날 아침 눈떠보니 골목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낮과 밤이 다른 도시였다, 서울은.


대신 오가는 사람들의 발이 보였다. 자취방이 반지하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살던 지역에는 반지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1층도, 지하도 아닌 중간에 방을 팠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서울 사람들은 다 이러고 사는지, 암만 봐도 신기한 도시였다.




"노선표 잘 챙겼지?"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도 모르게 수첩을 움켜쥐었다. 마지막 장에 지하철 노선표가 붙어있었다. 뒤늦게 서울살이를 시작한 딸내미를 챙겨주러 온 엄마도, 나도 지하철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흡사 전장에 출정하는 병사들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지하세계로 진입했다. 혹시라도 열차를 잘못 탈까 봐 긴장됐고, 우왕좌왕하다 시골에서 왔다는 걸 들키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지하철 역에 계단이 무척 많다는 것과 서울 사람들은 한가로이 걷지 않는다는 것. 우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총알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다들 엄청나게 바빠 보였다.


기웃거리며 노선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우리는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탑승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엄마의 가방이 지하철 문에 끼어버린 것이다. 세상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와 달리 주위 사람들은 평온하게 앞만 보고 있었다. 역시 인정머리 없는 도시라니까.


만원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가방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엄마가 가방을 잡아당기고, 나는 엄마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3초 뒤. 힘을 주며 낑낑대던 모녀는 지하철 바닥에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다.


갑자기 문이 열린 것이다. 달리던 열차의 문이 다시 열리는 기적을 목도하다니. (이래서 다른 승객들이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구나!) 우리는 뜨거운 냄비를 깔고 앉은 것처럼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단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새삼 깨달았다. 너무 창피하면 아픈 줄도 모른다는 것을. 그때부터 손잡이를 잡고 서서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가 아프도록 웃은 건 자취방에 도착한 이후였다.




글쓰기 수업엔 여성 수강생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부분이 20대 초반이었다. 낯가림시기가 지나자 서로 조금씩 안면을 트고 지냈다. 화장실을 간다든지, 자판기 커피를 마실 때 두세 명이 붙어 다니는 건 고등학교 때나 다를 바 없었다.



수업을 마치면 몇몇이 어울려 점심을 사 먹기도 했다. 하루는 대여섯 명이 백반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러 갔다. 오늘처럼 무더운 날이었다.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하나, 둘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나는 화장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혼자 멀뚱히 앉아있기도 어색해서 화장품을 꺼냈다. 파운데이션을 두드리다 보았다. 앞에 앉은 이들의 손에 들린 화장품은 샤넬 아니면 디올, 하나같이 해외 명품 브랜드였다. 우리 동네에서 자고로 화장품은 '태평양 라네즈'를 최고로 쳤다. 그날 이후 나는 밖에서 화장을 고치지 않았다.


"오늘은 나야 자취방에 가볼까?"


어느 날 수업을 마쳤을 때, 한 수강생이 말했다. 대부분 서울 출신이라 자취생이 드물었고, 근처에서 내 방이 가장 가깝기도 했다. 나는 우르르 대오를 이끌고 자취방으로 갔다. 대여섯 명이 먹을 라면을 봉지 가득 사들고, 반지하 방문을 열었을 때, 조그만 창 밖으로 오가는 이들의 발이 보였을 때, 그들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오로지 손바닥만 한 냄비 하나로 라면 다섯 봉지를 어떻게 끓일까, 하는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땀을 삐질거리며 라면을 끓였던 기억이 난다.




글쓰기 수업은 신세계였다. 책이나 TV에서만 보던 '작가'라는 존재를 눈앞에서 대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놀라웠다. 꿈만 같았다. 오늘은 또 어떤 작가님을 만나게 될까? 매일 수업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러던 중, 강의실 문이 열리고 그분이 등장했다. 풍성하게 풀어헤친 머리칼이 범상치 않았던 그분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개그콘서트'의 작가였다. 그 시절 개콘은 실험적인 무대, 신선한 발상으로 방송가 최고 히트작으로 꼽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모든 걸 직접 구현하신 분이 눈앞에서 업계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들이 외계어처럼 들렸다. 열심히 받아 적었던 것 같은데, 정작 기억에 남는 건 다른 말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가기 직전, 그는 글쓰기의 환상을 버리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실 돈 벌려고 일을 시작했어요. 부모님 사업이 망한 데다 한 분이 암투병 중이고 빚쟁이가 찾아와서 집에 딱지가 붙었어요. 저라도 벌지 않으면 안 되니까 고등학생 때부터 일을 시작한 거예요."


캄캄한 삶의 벼랑 끝에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질적이고 기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27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무릎이 푹푹 꺾일 때마다 그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그는 글쓰기의 어떤 기교보다 명확한 삶의 진리를 남겨주었다. 그것은 함부로 물러서거나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었다.




한동안 울적했던 이유를 스스로 짚어보았다. 마음에 강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물을 건너지도, 돌아서지도 못한 나는,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만 던지고 있었다. 내색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물이 흘러넘쳐 일상의 의욕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이 너무 더웠다. 내가 지금 숨이 막힌 게 더위 탓인 거지? 아닌가? 더위 탓이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에어컨 바람이 샐까봐 창문을 꽁꽁 닫고 있다가 걱정이 밀려왔다. 밖에 있는 식물들은 어쩌나. 즉시 베란다로 나가 샤워기를 틀었다. 솨아~ 미지근한 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목말랐던 저들에겐 오아시스나 다름없을 터.


어린 화분은 샤워기 물살에도 흙이 패일 수 있으니, 물살을 더 가늘게 틀었다. 제법 굵어진 나무에는 비가 오듯 위에서부터 줄기와 뿌리까지, 골고루 닿을 수 있게 흠뻑 뿌려주었다. 식물들이 생기를 되찾은 듯했다.


시들시들하던 화분에서 꽃대가 올라왔다


반가운 얼굴도 만났다. 지난봄 분갈이 했던 화분에서 작은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줄기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축 쳐져있던 화분이었다. 지지대를 세워보기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반가워서 한컷 더


과연 살 수 있을지, 애를 태우게 하던 줄기가 어느덧 튼실하게 자리 잡아서 꽃을 피워냈다니, 기특하고 대견했다. 이번에도 약이 되는 건 역시 시간이었다.


"너도 단단해져 봐!"


잘 여문 옥수수처럼 이를 꼭 물고 올라온 꽃대가 외치는 것 같았다. 그래, 기어이 버텨냈구나. 살아줘서 고맙다.


모든 생명은 경이롭다. 지나고 보니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하고 부딪히면서 참아내고 경험한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에 이르렀다. 덕분에 나는 깨우치고 스스로를 더 깊이 만날 수 있었다. 이것이 생명이 주는 기적이자, 희망이 아닐까.



향기 한 모금 전합니다


저녁 무렵엔 남편이 커피 향을 안고 왔다.


"사무실에서 원두 내리고 남은 건데 향이 좋더라."


원두가루가 든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은은한 커피 향이 공간을 채웠다. 화장실에 두고 나오는데 종이컵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혹은 매일 같이 숨 쉬는 공간에서도 고개 돌리면 온 세상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단지 내가 몰랐을 뿐.


오늘 당신의 시선이 닿는 곳에도 지지 않는 마음이 함께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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