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떨어지는 동거

(강스포주의)

 로맨스 판타지의 핵심은 초월적 존재가 부여한 미션이다. 이 것은 드라마의 방향성에 대해 말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이 미션을 잘 제시하고 방향성대로 잘 이끌면 좋은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가 된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이런 기준에서 살펴보면 방향성 자체는 잘 제시했다. 이 드라마에서 초월적 존재인 산신(고경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신우여(장기용)에게 인간성을 목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드라마는 남녀주인공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이 드라마가 제시하고 싶은 인간성이 무엇인지 보여주면 된다.

 이 드라마의 중심사건은 정해져있다. 바로 동거다. 로맨스 장르에서 동거란 주인공이 숨겨놓은 비밀-가정사나 개인적인 결핍 등-을 타인에게 처음으로 공개하고 공유하게 되는 사건이다. 그러기 위해선 집주인은 용의주도하거나 비밀이 많은 인물이어야 하고 동거인은 공감능력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로맨스 장르가 늘 그렇듯 서로가 공유했던 첫 비밀을 계기로 알콩달콩한 연애를 하면 된다. 이게 로맨스 장르 내 동거라는 장치의 역할이고 기대 포인트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이런 기대감을 어느 정도 채워주긴 한다. 이담(혜리)과 신우여가 동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다. 두 사람은 신우여가 구미호라는 정체를 시작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이담이 역사에 관심이 많은 역사학도라는 설정이 빛을 발한다. 이담은 자신의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세상에서 살아온 신우여를 이해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담의 이런 수용적인 태도는 신우여의 마음을 흔드는 역할을 한다. 동거의 공식에 충실한 것이다.

 이제 인간성에 대해 제시해야 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이 드라마는 삐끗하기 시작한다. 산신이 처음에 부여된 시련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련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시련의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하지 않은 방향으로 신우여와 이담의 관계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 위기 속에서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 산신이 재등장한다. 산신은 이담에게 신우여가 인간이 되기 위해선 '인간적인 면모'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남은 일은 이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 목표가 직접적으로 처음 언급된 것이 13화라는 것이다.

 이 쯤되면 여러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3화 안에 인간성을 획득할 수 있나? 그러면 앞의 서사들은 인간성의 어떤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지? 이 드라마는 인간성의 획득을 위해 어떤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했지? 등의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천천히 다시 보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여성관이다. <간 떨어진 동거>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목표는 제대로 된 여성관이다.

인간성이 언급되기 전까지를 잘 살펴보자. 드라마 초반 흐름을 이끄는 계선우(배인혁)는 이담을 두고 자신이 꼬실 수 있냐 없냐로 내기를 한다. 주인공인 신우여는 한술 더 뜬다. 구미호가 인간의 정기를 취하기 위해선 스킨쉽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담과 사귀는 와중에도 동료 교수를 통해 정기를 취하는 행동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 구미호이자 현 인간인 양혜선이라는 팜므파탈을 통해 여성을 도구적으로 대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노출한다. 이쯤되면 꽤 노골적인 메세지였다. 하지만 드라마들에서 너무 많이 사용된, 클리셰 같은 장면들이라 잘 안보였던 것이다.

 여기서 이 드라마의 간극이 발생한다. 남성은 여성들을 도구적으로 봐선 안된다는 메세지를 반복적으로 노출한다. 하지만 이게 인간성과 무슨 상관인가. 특히 산신이 직접적으로 인간과 어울리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라고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둘은 연결 짓기가 더 어렵다. 더군다나 신우여는 사실상 미션인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거부하고 피한다. 그렇다보니 미션은 의미가 없어지고 드라마 내내 반복했던 여성관과 관련된 메세지만 남아있게 된다. 드라마의 방향성이 애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산신의 등장 이후로 드라마가 붕 뜨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신의 가르침들은 불합리하고 강압적이다. 그렇다보니 목표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목표를 바로 잡아줬을 땐 드라마 내내 보여준 것과는 다른 목표여서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신우여는 산신이 제시한 목표에 이르지 못한채 사고로 죽는다. 그래놓고선 "살면서 많은 감정을 느꼈고 누군가가 살아돌아오길 바라니 너는 인간이 될만하다!"라며 신우여를 되살려준다. 이 전개는 정말 납득하기 힘들다. 이럴거면 제시된 목표가 "진정한 사랑"이었어야 했다. 주제가 진정한 사랑이었다면 이담의 눈물과 소원으로 마지막에 되살려주는 전개가 (그나마) 개연성이 있다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중간에 길을 잃으면서 개연성도 잃었다. 이야기가 정처없이 부유하다보니 몰입감도 떨어지고 재미도 떨어진다. 마지막엔 신우여라는 캐릭터를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 억지웃음을 만들어내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캐릭터 붕괴 라는 말 말고 이 것을 더 잘 표현하긴 어렵다. 죽였다가 살려놓고 캐릭터까지 붕괴시켜가면서 자기파괴를 하는 모습이 꽤 볼만했다. 작가가 작품을 이렇게도 망칠수 있구나 싶어서 따로 기록해두고 싶을 정도였다.

 정리하자. <간 떨어지는 동거>는 뜯어볼수록 망작이다. 장기용과 혜리의 비주얼을 감상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틀어놓고 딴짓하기엔 좋지만 몰입감을 갖고 보기엔 너무나 부족한 작품이다. 더 덧붙일 말이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