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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평론가 Jan 17. 2022

부부에 대한 낯선 진단 - 아는 와이프

"유연한 사고, 남탓하지 않기"(실제로 지킴)


 한국의 드라마에서 부부를 다루는 방식은 한정적이었다. 남편들은 늘 바람을 피고 버림 받은 아내들은 새 가정을 꾸린다. 그 과정에서 남편을 응징하느냐 아니면 되돌아오느냐 정도의 차이였다. 하지만 타임리프를 통해 관계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고백부부>이 성공한 이후 달라졌다. 최소한의 믿음이 갖춰진 상태에서 서로 지쳐버린 부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드라마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말이다. 물론 불륜을 다루는 막장 드라마들은 여전히 잘되지만 말이다.


 아무튼 부부관계를 돌이켜보는 드라마들이 늘어났다. 이 드라마들은 대개 전개가 비슷하다. 30대 중후반의 주인공 부부들은 서로가 너무 지긋지긋하다. 남자는 직장 일이 너무 많아서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여자는 본인도 직장생활을 하는데 육아까지도 전담한다. 그렇다보니 여자는 직장 일만 하고 집안일엔 무심한 남편이 밉고 남자는 일하는 것도 힘든데 집에서 눈치까지 봐야하니 아내가 야속하다. 이런 불만과 상황들이 쌓여서 폭발할 때 쯤 갑자기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서 서로의 관계를 돌이켜보게 된다.


<아는 와이프>는 큰 맥락에서 이런 흐름을 따라가기는 한다. 회사일에 바쁜 남편, 육아와 맞벌이에 지친 와이프라는 구도는 같다. 하지만 시간을 한번이 아니라 두세번 되돌린다는 것이 다르다. 처음 시도는 우연히 되돌렸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두번째는 달랐다. 차주혁(지성)은 서우진(한지민)과의 관계가 너무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서우진과의 결혼을 없던 일로 되돌리게 된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 자신을 좋아했고 부잣집 딸이던 이혜원(강한나)와 결혼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게 된다.


 <아는 와이프>가 다른 부부물과 다른 점이 여기서 나온다. 와이프의 시선과 관점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의 초반부를 이끄는 것은 독단적인 선택을 하는 차주혁(지성)이다. 초반 대부분의 캐릭터 묘사와 서사의 포커스가 차주혁에게 맞춰져 있다. 와이프인 서우진(한지민)의 컷들은 차주혁과의 관계를 보여주거나 집에서 일어날 갈등을 설명하기 위한 간단한 씬들이다. 이런 치우친 분배는 차주혁이 어떤 캐릭터인지 또 어떤 방식으로 상황을 모면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아는 와이프>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차주혁은 마냥 행복할 것 같았던 혜원과의 결혼생활에서 불행을 느끼기 시작한다. 혜원은 허영도 있고 시댁과의 불편한 관계가 싫기 때문에 주혁과 시댁을 분리시키려고 노력한다. 주혁은 이런 상황들이 너무 불합리하게 느낀다. 또 회사에서 은행직원이 된 우진을 다시 마주한다. 하지만 우진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다. 혜원과의 관계는 악화되고 우진과의 관계가 점점 애매해지며 이도 저도 못하게 된다. 이러면서 처가가 벌인 모종의 사건으로 혜원과 이혼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파탄난다. 주혁은 시간을 되돌렸음에도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망친 자신을 자책하면서 다시 시간을 돌리고자 하지만 방법이 없다.


 이 드라마는 이 시점에 이르러서 드디어 여주에게 선택권을 준다. 차주혁이 다시 같은 결론에 이르러서 과거를 바꿔야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말이다. 왜냐면 이제는 서우진에게도 자신의 힘으로 쌓아올린 삶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무엇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이뤄낸 삶이 생겼다. 그리고 서우진이 그 삶에서 차주혁을 (다시)선택했기 때문에 차주혁은 일방적으로 시간을 돌릴 수 없다. 이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두 사람 모두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결국 <아는 와이프>는 "결혼은 니 선택인데 왜 남탓함?"을 남자와 여자의 시선으로 번갈아 보여주는 드라마다. 차주혁은 우진을 욕하며 선택을 바꿨지만 우유부단하고 회피적인 성격 탓에 다시 파국을 맞이했다. 서우진은 사랑에 눈 멀어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포기하고서 행복한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그 때 너 때문에 내 삶이 망가졌다'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세웠을 때 같은 사람을 만났음에도 행복한 결혼에 이르렀다. 결국엔 지금의 불행은 남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드라마는 이런 점에서 특별하다. 사랑이 어쩌고 저쩌고 내 입장만 생각했네 어쩌고 저쩌고 하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둘 다 잘못했는데 왜 남탓함?'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다른 부부물들을 보면서 내심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여성들의 입장은 유독 동정적이고 감정적으로 포장되지만 남성들의 입장은 웃기고 찌질하고 별 볼일 없는 식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일상만이 유독 불쌍하고 남성들의 일상은 별로 불쌍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균형을 잘 맞춘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보는 여성들의 입장이 불편할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이 지겹다고 시간을 되돌려서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는 상상? 불편을 넘어 끔찍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또 낯설수도 있다. 어떤 부부물도 여성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불편함을 인내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결국엔 그 불편한 선택은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조금은 언피씨하지만) 조강지처 미만 잡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특별히 남자 편을 드는 것도 아니고 여성의 편을 드는 것도 아니다. 유연하게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남탓하지 말고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드라마다. 특별히 더 불편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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