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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평론가 Sep 12. 2022

D.P 리뷰

 드라마를 보면서 놀라는 경우가 별로 없다. 놀라는 경우는 딱 세 가지다. 첫번째 남주가 생각보다 너무 잘생겼을 때, 두번째 여주가 생각보다 너무 이쁠 때. 이럴 땐 바로 일시정지를 누르고 남주여주의 외모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과거 작품 사진들 찾아본다. 남은 하나는 드라마가 너무 형편없을 때다. 이땐 일시정지를 하고 제일 황당한 장면을 떠올렸다가 되돌려서 다시 보고 '우와~' 같이 영혼없는 리액션을 하면서 본다. 그 외에는 드라마를 보면서 놀라는 경우가 잘 없다.


 근데 D.P는 특이하게 고경표의 연기를 보고 놀라서 일시정지를 눌렀다. '뭐지... 얘 미필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서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미필이 맞았다. 헉. 아무튼 고경표는 처음 등장 시퀀스가 너무 쇼킹했다. 군대선임들 특유의 가불기, 그러니까 후임에게 뭔가를 시켜놓고 막상 하면 '오버하지마~'로 선임으로서의 권위를 확인하는 행동이 너무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군대를 다룬 컨텐츠들 중에 가장 날 것의 '군대선임'을 보여준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평소처럼 드라마 얘기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경표가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를 안봤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첫 시퀀스 질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황장수의 포악함도 꼴보기 싫었다. 대개 미디어가 표현하는 군대는 너무 쓰레기같거나 너무 미화된다. 이 드라마의 극초반에 보여주는 황장수의 포악함은 명백한 전자였다(말년이 굳이 왜...?). 이렇게 누군가를 너무 나쁘게만 표현하는 컨텐츠는 유치하고 뻔해진다. 그래서 굳이 더 볼 필요를 못느꼈다. 고경표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고경표가 등장하기 전과 후로 나눈다. 고경표 등장 전의 군대에 대한 표현들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D.P>는 고경표가 등장하기 전까지 안준호(정해인)의 부대가 어떤 곳인지를 보여준다. 군대 내에서 규율을 지키도록 하는 헌병대에서 자행되는 군폭과 그걸 방관하는 간부들을 통해 이 공간이 굉장히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설명에 가까운 시퀀스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경표가 나타나면서 <D.P>는 실제 군대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군탈체포 임무를 받고 군대에서 빠져나가는 것에 만족하는 고경표의 모습은 꽤 그럴듯했다. 그리고 임무를 나몰라라하며 놀다가 군탈병에게 사건이 터지자 놀았던 사실을 덮으려 하는 것과 사건 자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간부들의 모습은 그럴듯함을 넘어서 꽤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이 드라마는 작위적인 배경과 현실적인 언행을 아주 인상적으로 뒤섞어놓는다.


 이 과정에서 고경표는 자연스럽게 탈락하게 된다. 이 것은 아주 합당하면서도 합목적적이다. 이 드라마는 군대의 부조리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조직을 이질적으로 느끼는 사람의 시선이 필요하다. 고경표는 이런 측면에서 평가하면 너무나도 군대에 잘 적응했고 부합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군대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낯설게 느낄 수 없다. 그러니까 고경표의 탈락은 일종의 선전포고다. 작가는 '이 드라마는 군대를 좋게 표현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말한 것이다.


 그리고 한호열(구교환)이 등장한다. 한호열의 등장 시퀀스 역시 의미심장하다. 한호열은 군대에 아주 잘 적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부대의, 서로 계급을 따질 필요없는 '아저씨'들과도 잘 지낼줄도, 군대의 생리 안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져볼줄도 안다. 그렇다면 고경표와는 무엇이 다른가 싶을 것이다. 작가는 이것을 위해 자대로 복귀해서 불합리(황장수)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한호열이 왜 이 드라마의 동행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납득시킨다.


 그렇게 군대에 이제 막 온 사람, 군대에 적응했지만 불합리에는 저항하는 사람이 모여서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기 시작한다. 처음 임무는 꽤 무난하다. 코골이 때문에 괴롭힘 당해서 탈영한 탈영병이다. 군대에서는 흔하고 무난한 스토리의 사건이다. 하지만 그 탈영병이 도망쳐 다닌 곳이 지하철 종점이라는 것이 이 드라마가 꽤 범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누워서 잘 수 없는 전철이라도 그에겐 부대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두번쨰 에피소드는 탈영병보다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다. 안준호는 실패한 임무, 그러니까 탈영병이 자살한 사건에 꽤 큰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탈영병을 잡으러 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마음을 많이 쓰고 온정적인 태도로 나온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자신의 뒷통수를 친, 탈영병의 여자친구에게서 '남을 함부로 불쌍하게 여기지 말라'는 충고를 들으며 끝이 난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았던 에피소드였다. 이 에피소드가 좋았던 것은 '병역'을 군대 안으로 좁히지 않고 사회로 확장시킨 에피소드기 때문이다. 사회에서의 약자가 병역으로 편입되었을때 그 책임은 누가 지는지 또 남겨진 이들은 누가 돕는지를 다룬다. 이 에피소드의 탈영병은 철거촌에서 혼자 지내는 치매 걸린 자신의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탈영해서 할머니를 보호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최선'을 찾아냈다. 준호와 호열은 이 사정을 알게 되고 처음 자발적으로 임무를 포기하고 탈영병에게 돈을 마련하게 되면 자수하라며 끝을 낸다.


 이 에피소드에서 D.P는 이런 잘 보이지 않는 비극을 폭로하되 해결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병역의 '의무'에만 집착하고 의무를 지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국가의 모습을 얼핏 보여주기만 한다. 왜냐면 이 것은 군역을 지고 있는 20대 초반 남성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보이듯 이들의 시선에서는 자력구제가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는 '나의 아저씨'의 메인플롯과도 꽤 겹쳐보이기도 한다. 물론 탈영병에게는 '나의 아저씨'는 커녕 '나의 간부'도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이른다. 이 즈음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떠올릴 수 있다. 왜 주인공들은 자신이 소속된 부대 밖의 불합리에는 적극적으로 대항하거나 피해자를 구제하려고 하면서 같은 부대의 병사가 당하는 불합리에는 무감각한걸까? 누군가의 사정을 알고 자발적으로 임무를 포기할 정도로 인정이 많은 이들이 말이다. 결국 드라마가 시작되고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선 출발점에서 이 아이러니는 뒤늦게 답을 찾으려고 한다.


 이 질문을 손에 쥔 조석봉은 아주 적극적이고 과격한 방법으로 답을 찾아간다. 황장수를 죽이고 싶다는 상상, 혹은 그림을 통한 욕구해소에서 끝내지 않는다는 말이다(안준호가 펜을 사다주지 않았던 것은 꽤 의미 있는 떡밥이었던 셈이다). 황장수를 죽이기 위해 찾아간 조석봉은 목적달성에 실패한다. 하지만 황장수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한다. 이 것은 일종의 확인이다. 상대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이 아니고 날 우습게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확인 말이다. 그리고 그 확인으로 일종의 확신을 얻은 듯한 모습은 꽤 소름끼치게 그려진다.


 이 실패로 조석봉은 준호열 듀오에게 체포당한다. 그리고 이송되는 과정에서 조석봉은 꽤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너네는 황장수가 잘못할 땐 다 방관했으면서 이젠 왜 나만 잘못했다고 함?' 이 질문을 통해 드라마가 중간중간 보여준 가해자들은 별 처벌 받지 않던 역설의 핵심을 꿰뚫는다. 이 핵심적인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조석봉의 분노가 폭발하며 차 안에서 난동을 벌인다. 이 난동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면서 차 사고가 난다. 이 때문에 조석봉은 탈출하고 황장수를 납치하는 것에도 성공한다.


 <D.P.>의 정점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조석봉은 황장수를 부대의 위수지역에 있는 방공터널로 데려온다. 군대에서 시작한 원한이 군대에서 끝나게 된 것이다. 이 원한의 시작이 폭력이었기 때문에 되갚음 역시 폭력이 된다. 이런 이유로 조석봉은 황장수가 휘두른 폭력의 상속자가 된다. 황장수가 자신에게 그랬듯 자신의 후임에게 폭력을 휘두르려고 했던 모습이 여기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폭력을 상속한 사람과 상속받은 사람 사이의 분쟁이 된다. 결국 이 분쟁은 처음 상속이 시작됐던 곳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복수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 안준호와 한호열을 마주한 조석봉은 바뀐 자신을 마주한다. 자신은 드라마 초반에 안준호에게 '우린 폭력을 휘두르지 말자'고 말했던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폭력에 물들어 바뀌었기 때문에 이젠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살한다. 이 드라마가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해서 보여줬던, 탈영을 해도 바뀌지 않고 또 바꿀 수 없었던 것들이 모여서 조석봉의 죽음으로 끝맺게 된 것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조석봉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폭력 혹은 폭력의 문화는 개인이 좌지우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서 이 폭력의 문화가 조직 안에서 개인에게 체득되고 상속되어 계속해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을 병사들만의 문제라고 하지 않는다. 조직 혹은 조직문화 앞에 무력한 개인을 비추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병사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묵인하는 간부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군대의 실상을 알면서도 모른척하거나 모르고 있는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성취가 인상적이다. 군대를 안가본 남성과 여성들에게 군대의 숨겨진 이야기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군대 얘기하면 자신이 당한 얘기만 하고 휘두른 얘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봤다시피 군대라는 공간은 간부의 묵인 하에 그 문화가 계속 이어지는 곳이다. 당했지만 휘두르지 않는다는 아름다운 얘기는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그런 사람이 없다는 얘기는 아님). <D.P> 그런 면에서 군대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히 '군대 안에서는 괴롭히는 문화가 있어요'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번째 에피소드나 마지막 에피소드처럼 이야기의 범위를 사회로 넓히면서 군대의 이야기가 군대'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누가 죽었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집단이 사회의 관심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또 그 안에서도 사회의 관심이 없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제대로 사회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의무도 중요하지만 (좀 때 지난 캐치프레이즈일지라도) '사람이 먼저' 아니겠나.


 재미있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인위적인 캐릭터와 이야기 구성이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인위적임을 용서? 탕감? 감면? 받을 수 있는 재미와 몰입감이 있었다고 본다. 배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좋았고 드라마를 이끄는 메세지를 보여주는 방식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가 처음 나왔을 때 왜 그렇게 불탔는지 이해가 간다. 군대 갔으면 간대로 안갔으면 안간대로 꼭 봐야할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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