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평론가 Sep 12. 2022

이터널 선샤인 : 이젠 사랑이 아닌

이게 퇴행이 아니면 뭐임!

※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를 다 보신 분들은 더 잘 이해할수 있을지도...?


 작품에 대한 감상이 잘 바뀌지 않는 타입이다. 그렇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것이 죄악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니다. 다만 그 작품을 볼만큼 보고 생각할만큼 생각했으니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바뀌지 않는 것이 당연한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의 세계관을 넓혀줄 경험이나 아이디어가 있다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터널 선샤인'은 경험과 아이디어를 통해 감상이 자연스럽게 바뀐 영화 중에 하나다.

 

 '이터널 선샤인'을 처음봤던건 19살 때다. 이 당시에 봤던 이 영화는 아주 낭만적인 영화였다. 기억을 지워도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운명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서로가 너무 끔찍해서 기억을 지웠고 상실감에 시달리다 끝내 원래 짝을 찾아간다는 식으로 영화를 이해했다. 사실 내용만 놓고보면 그렇게 틀린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서 다시 본 이 영화는 아예 달랐다.


 어른이 되서 본 이 영화는 그냥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화였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이 성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적으로 퇴행이 된다. 그리고 '이터널 선샤인'은 인위적으로 성장의 토대가 될 경험을 없앴을때 발생하는 퇴행에 대한 영화다. 퇴행했기 때문에 가지고 싶지도 않은 추억과 기억들을 새롭게 다시 쓰게 됐고 그로 인해 다시 또 고통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건 운명이 아니다. 그냥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꽤 고통스럽기도 하다. 다시 한번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당장의 고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회피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어느 사람과의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워 기억을 지운다고 하자. 기억을 지우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날 기회가 없어지나? 아니다. 기억 혹은 경험을 지운다는 것은 오히려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 있는 가능성만을 남길 뿐이다. 기억을 지우지 않는게 오히려 같은 경험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은 단 한번의 경험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하지 못한다. 다만 사람은 경험을 통해 좀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그게 설령 아주 작은 확률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티 윈슬렛)은 기억을 지우면서 이런 작은 가능성조차도 없애버린다. 서로 만나면서 느꼈던 것들, 이번 연애를 통해 다음 연애 단계에서 고려해야겠다고 배웠던 것들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이건 망각도 아니고 명백한 퇴행이다.


 영화 내에서 서브 커플로 등장하는 하워드(톰 윌킨슨)-메리(커스틴 던스트)이 이런 주제를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하워드는 유부남이었고 메리는 유부남을 꼬셨고 끝내 불륜을 저질렀다. 이것을 하워드의 아내에게 들키면서 메리는 기억을 지우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순간에 메리가 하워드를 다시 유혹하는 장면이다. 실수를 지우는 사람과 실수를 기억에서 지웠기 때문에 다시 반복하는 사람이 교차한다. 영화는 이렇게 같은 굴레를 쓴 다른 두 커플을 보여주며 '운명적 만남'이라는 낭만을 밀어낸다.


 이렇게 어찌보면 우화적인 장면들이 지나고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진실을 마주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없던 일로 치고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 모르는 사람이 되어서 지나갈 것인가. 망설이는 클레멘타인 앞에서 조엘은 '괜찮아(Okay)'라는 말을 건넨다. 이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 지나고 엔딩크레딧이 오를 때쯤 관객들은 생각이 복잡할 것이다. 이들은 이전에 실패했던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한번 망칠까? 아니면 고쳐나갈 수 있을까?


 19살의 나는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피상적으로 둘이 다시 만났다는 사실만을 상기하며 낭만적이라고 느꼈을 뿐이다. 나는 이제 이 질문에 나만의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이들은 또다시 망칠 것이다. 이전의 도전에서 배운 것이 없다못해 도전한 사실조차 잊은 사람이 다시 도전한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나에게 '이터널 선샤인'은 퇴행에 대한 영화다. 이 말을 하고나니 이제 이 영화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선 기분이 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