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했습니다.
아내의 결혼을 축하해야 하나? 아니면 슬퍼해야 하나?
축하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꽃? 선물? 편지?
선뜻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내 축하를 받고 싶어 할까? 근본적인 질문에 맞닿았습니다.
1997년 10월 3일 아내는 결혼을 했습니다. 20대 중반의 아내는 어느덧 반 백이 되었습니다. 수줍음 가득했던 주근깨 소녀는 엄마, 아내의 이름으로 강해졌습니다.
아내가 묻습니다.
"시간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지난 23년이라는 시간이 느껴져? 오늘 하루와 다른 시간이었을까?"
23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두 생명이 아내를 통해서 이 땅에 왔습니다. 때로 마음을 합하여 뭔가를 이루려 노력했습니다. 의견 차이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일들은 여전히 포기라는 이름으로 가슴 켜켜이 쌓아두고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일이 더 많아서 참 다행입니다.
결혼기념일을 특별히 기념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벤트도 하지 않습니다. 아내에게는 생일 못지않게 슬픈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갑자기 아내가 '내일은 뭐할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기념으로 방 밖에 나가지 않고 온종일 같이 있는 것은 어때?라고 말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아냐, 아예 하루 종일 이불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어때?"
잠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아내.
잠든 그 순간은 자신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는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그건 너무 야하지 않나? 19금이네.."
이불속에서 방귀나 뿡뿡 끼는 남편인데, 남들은 야하다고 생각할 거라며 낄낄거리며 웃었습니다.
결국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하루 보내기는 아침 10시도 되기 전에 끝나버렸습니다.
아내에게 '축 결혼' 봉투를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사용할지도 모르는 것을 보냈다고 웃으며 투덜거렸습니다.
23년 전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 쓰고 다소곳하게 옅은 미소 짓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23년이라는 시간이 오늘 하루와 무엇이 다를까? 달라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럭저럭 잘 살아온 시절에 크게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 뭘 어떻게 잘해야겠다 굳이 지키지 못할 결심을 하지도 않으렵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렵니다.
고맙습니다.
이 말을 누군가에겐 해야 할 듯합니다.
덧붙이는 말..
겨우 입을 떼서 건넨 말..
"사랑해!"
그러자 돌아온 말은
"그러던가"
그리고
"그래 오늘은 마음껏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