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RKER Sep 24. 2024

3부 여름 이야기 '뜨거웠던 나의 젊은 시간 들'

서른을 앞두고 51개월을 마무리하며 Part1

2001년 전역과 복학 그리고 휴학 ⇒ 20대 초반

2003년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의 첫 직장 생활 ⇒ 20대 중반

2004년 내 삶의 전환점이 된 직장 생활 ⇒ 20대 후반




나의 스무 살 시절을 돌아보며 정리해 보니 이렇게 딱 세줄 그리고 밀려드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나보다 좀 더 멋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 기록들. 나와는 다른 좀 더 풍성하고 다양한 삶의 기록들이 아닐까? 나도 그렇게 적고 싶은데 무엇이든 좀 더 적어보려고 하지만 마땅히 적을 내용이 떠오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 본다면 참 볼품없이 살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그 흔한 국내 여행이라도 어느 곳 하나 제대로 다녀온 곳이 없다. 그렇다고 자격증이라는 이름의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고 사람과 만나는 것을 좋아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소위 인맥이라 부리는 것을 만들지도 못했다. 이렇게 보고 있노라니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싶은데 혹 유흥이라는 이름의 향락에 빠져라도 보았다면 이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후련했을까?




그저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고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직장을 옮겼으며 그렇게 별을 보며 일터로 향했고 별을 보고 퇴근하기를 수년. 지금까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단출하기 그지없는 나의 그 시절 그렇게 나의 이십 대는 저물어 갔다.




내가 얻은 것 ⇒ 몇천의 금액과 직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경험 그리고 스트레스

내가 잃은 것 ⇒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와 대학 졸업증서 그리고 젊음이라는 시간




다수의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을지 혹 같지 않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통장의 잔액 0원. 신학생 시절 교회에 있으며 사례비라는 이름으로 이십만 원을 받았었는데 어떤 마음에서였는지 나를 위해 그 돈을 사용할 수는 없었고 교회 행사로 사용했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주제도 모른 채 누가 누구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아주 단순하게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했어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것을 내 삶의 수익으로 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빈털터리였던 나에게 약간의 금액이 생겼으니, 이것을 젊은 시절 나름의 성취라고 하며 조금은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안 될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 정녕코 내 삶 속에서는 내가 노력해서 번 돈이라도 그것 하나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는 것인가? 이 돈과 관련하여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도 이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이야기되지 않을까 싶다.     




일단 또 다른 사연은 한쪽으로 묻어 둔 채 다음으로 가보자. 경제적 이득이 아닌 다른 것으로 얻은 것이 있을까? 단언컨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힘듦과 어려움, 난처함과 답답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뿐. 아마도 우리네 살아간다는 것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좋은 것보다 그렇지 않은 기억에 대한 잔상이 더욱 선명한 것. 그래서일까?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하나하나 기억이 나는 데 그러고 보니 참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났었던 것 같다. 그것이 직장이라는 제한되고 특수한 환경이어서 그렇지 그 모든 껍질을 벗겨내고 본다면 너와 나 그 누구도 다를 게 없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모인 모두가 똑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었다. 




이것이 무슨 대단한 발견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관계와 사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동안 듣고 보았던 수많은 강연과 책들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때마다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몰려오는 고민과 수많은 문제. 이것이 그 어디에서도 속 시원하게 찾을 수 없었던 바로 그 정답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네 살아가는 것이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그저 저마다의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그렇다면 모든 관계 속에서 미워할 것도 힘들어할 것도 없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는 노동의 소중함. 아니 그런 고상한 말보다는 돈을 벌기가 너무도 어렵고 그것이 정말로 무척이나 더럽고 치사한 일이며 교활하고 간사한 성향 즉 권모술수(權謀術數)가 뛰어난 사람이 인정받고 앞서 나가지 곰처럼 우직해서는 별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혹자는 그것은 너 그리고 우리가 그 조직의 기대치에 충족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反問)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했던 곳에서는 그것 못지않게 사람에 대해 편을 가르는 것이 있었고 이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육각형 인간 즉 인성, 학벌, 외모, 집안 등 6개 부분에서 완벽한 사람이 트렌드(trend)가 된 적이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이는 아무런 문제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했었고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한 노동(돈)이니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었다. 솔직히 나보다 우리 어머니에게서 더욱더.

이전 15화 3부 여름이야기 '뜨거웠던 나의 젊은 시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