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앞두고 51개월을 마무리 하며 part 2
그렇게 얻은 것들이 있었다면 잃은 것 역시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머리카락~!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직장 생활을 하며 스트레스가 심했던가 보다 왜 가랑비에 옷은 젖는다고 하지 않는가? 자고 일어나면 베개 주변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그리고 아침에 머리를 감을 때면 한 움큼씩 빠지곤 했는데 이것이 탈모였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항상 머리를 정리하러 갈 때는 꼭 더벅머리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 숱도 함께 했었는데 내가 탈모라니! 그러면서 왜 나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 만약 그 즉시 사직서를 내고 탈출했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두상이 그리고 이를 대하는 문화에 있어 서양인처럼 작고 어떤 스타일을 하던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별 상관이 없었겠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의 이미지를 형성 함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다움을 잊어가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결국 내 손에 닿지 않은 졸업증서 하지만 가만히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휴학 후 6~7년이 지난 그 순간 이미 나에게 있어 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의미와 목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복학하지 않은 것은 온전한 나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이 마음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 쉬~ 움~
이것이 진실인데 앞을 보지 않은 채 그 원인을 그리고 그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리기에 급급했던 나였으니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그 존재만으로 빛났던 나의 이십 대 시절. 그때는 몰랐었다. 나를 향한 시선과 순간 던지던 한마디 한마디의 의미를 말이다. 그것들에는 다 의미가 있었고 그것들에 좀 더 마음을 두고 생각했다면 좀 더 의미가 있고 예쁜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한 이 년 전쯤인가 환생이라는 이야기를 주제로 다양한 영상들이 제작되었는데 그 중 재벌 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기억난다. 미래를 알고 있는 인생 2막의 어린이. 나에게 다시 그런 환경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리고 나는 그 선택에 만족했을까? 이에 대해 혹자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분명 두근거리는 꿈같은 것이지만 힘들었던 그 시절 그 힘듦이 너무 크기에 돌아가기가 싫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 온 그 길을 다시 걸어갈 수 있을까?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위해서 말인가!
나의 스무 살은 얻은 것도 있었지만 동시에 잃어버리는 것도 있었던 시간. 얻는 것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대로 잃어버리는 것만 있다면 얼마나 슬플까?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감사와 불평이 그리고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는 것인데 지금의 나는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것 역시 나의 몫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