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일반 기업 3년, 장애인 복지 3년 6개월, 노인복지 8개월 그리고 다시 찾은 장애인 복지 12년을 보내고 13년 차를 맞이하는 지금. 20여 년의 직장 생활 속 부딪치고 넘어지고 깨지며 생각된 것들에 관해 몇 가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으로 혹자는 다음의 이야기하는 내용들에 대해 지역 내 서점 인간관계 관련 서적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만약에 그렇다면 저는 무척이나 기쁘지 않을까 합니다. 그만큼 나의 삶이 치열했다는 것의 방증일 테니까요.
사회복지의 길로 접어든 후 거의 모든 시간을 – 근무 형태로 인한 이유 – 장애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일상을 공유해 왔습니다. 어제는 교사의 관점에서 그들을 가르쳐야 했고 오늘은 보호자로서 그 처지를 대변해야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세다가 변하며 새로운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 모델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지금의 나는 장애인 분들의 하루, 일 년, 인생 곧 그들의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플래너의 역할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장애인 앞에 설 때면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너의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데 누구의 삶을 그린다는 말이지” 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주제와도 같은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용이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학연, 지연, 혈연 그리고 흡연까지 없었던 나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정직과 성실이었습니다. 좀 더 열심히. 좀 더 부지런하게 다른 사람이 한 걸음이라면 아는 두 걸음 세 걸음. 이런 나에게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는 삶의 지침과도 같았고 천천히 느리지만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하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은 보이는 곳에서 태가 나게 해야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면 보이지 않게 일을 하면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아니 알지 못함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어느 순간 당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은 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닌 상급자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한 직장 그리고 한 분야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나름의 원칙과 지식, 정보가 쌓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직급이 오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처음에는 그 정보를 이용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눈에는 그 정보와 지식이 불편해질 것이며 결국에는 그 시야에서 치우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신입 상급자라면 더 할 것이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히려 일은 중간 정도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급자와 함께 다니며 얼굴마담을 해줄 수 있는 사람! 옆에서 조잘거리며 비위를 맞출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100점일 것입니다. 여기서 혹여 오해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업무 역량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랍니다. 최소한의 어느 정도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무슨 말이.
적당한 가무를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릴 적에 어머니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네가 나를 닮았으면 노래를 잘할 텐데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는. 두 분이 노래하는 것을 들어본 적 없으니, 그것의 정확한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겠으나 변하지 않은 사실 하나는 내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음정, 박자 이건 머. 어쨌든 신입직원 소개 시 그리고 회식 후 노래방 – 지금은 회식의 개념이 많이 달라졌으니 이 역시 옛날이야기 과거의 그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에서 좋은 목소리에 노래를 잘한다면 첫인상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할 수 있겠습니다. 혹자는 이야기할 것입니다. 목소리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맞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본다면 굳이 노래하지 않더라도 상황에 맞는 흥 돋우기 같은 눈치 여기에 술까지 잘 마신다면 이건 머 게임 끝.
친탁을 해서인지 술도 그다지 아~ 술 못해, 노래 못해, 담배 못해 인생 재미도 없을뿐더러 힘들다~ 힘들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을 쥐가 듣더라.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그중에는 거친 표현을 정말 찰지게 하며 그리 밉지 않게 말하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능력이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에서는 어떨까요. 그 조직이 크던, 작던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대한 각자의 가치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직장 동료나 선배 혹은 후배에게 요구받기도 하는데 하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그것이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이미 그것은 모두가 알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재미있는 것 한 가지는 그 대화의 장소가 회사 뒤편 으슥한 공간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두가 모이는 아침의 회의 시간일 수 있으며 아니면 모두가 함께 모여 식사하는 배고픈 점심시간 혹은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술 한잔하자며 잔을 기울이는 저녁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시간에 있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데 무슨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를 적용하였고 눈과 귀를 막 자였습니다. 보았어도 못 본 척, 들었어도 못 들은 척 그래서였을까요? 사람들과 엮이는 일은 점차 줄었지만 우습게도 결국에는 나 혼자! 그런데 여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입방아를 찧던 사람들은 하나, 둘 결국에는 다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버틸 수 있다면. 어쩌면 바로 이것이 “가늘고 길게 살아올 수 있었던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동료를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처음 사회복지를 했을 때의 일입니다. 나보다 선임으로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였는데 어찌나 툴툴대던지요. 아무것도 모르고 입사했는데 당연히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는 없었고 이미 그것을 알았을 때는 나도 툴툴.
입사 7년 차가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일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기보다는 나름의 중심을 잡고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 말은 다른 사람의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나라고 왜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절호의 기회도 있었고 면접도 봤습니다. 그런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눌러앉기를 한 번 두 번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결국에는 모두 떠났습니다.
인생. 살아감에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후회와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결국 일이란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