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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ER Dec 03. 2024

3부-2 여름이야기 '가늘고 긴 것을 바랐던 시간 들'

최선을 다하는 삶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part1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취득한 사회복지사(2급)라는 이름의 자격증. 자격증에 대한 인식에 있어 지금 세대와 그 당시 나의 세대 간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때에도 다양한 자격증이 있었을 것이고 많은 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는 것일 텐데 그에 비한다면 나는 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별 관심도 없었으니 그랬던 내가 서른 하고도 2~3년이 지나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 의한 취득. 그렇게 본다면 열심히 지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나의 삶에 대해 정성과 성의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지내왔다고 생각하지만 뒤돌아보니 그렇게 잘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심한 자기 비하일까?



이 자격증 하나로 처음 일을 시작했던 곳은 중증의 지적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는 생활(거주) 시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함께 면접을 본 동기가 있었는데 그 역시 증권회사에서 일을 했고 이곳이 처음이라고 했었다. 나와 같은 조건인데 웬걸 그는 사회복지사라는 직함의 사무실로 그리고 나는 생활 재활 교사라는 직함의 거주실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가 다른 포지션으로 시작하였고 서로의 결말은 달랐으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에 해야 할 듯하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소제목에서 힌트를 생각해 본다면 동기의 이야기가 바로 나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어째서일까? 과연 동기가 어떠했기에~




하루, 하루 지나며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로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 직원과 생활하는 장애인 분들까지 하면 대략 210명 정도. 정말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내가 있게 된 곳은 10대부터 40대 초반의 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학생들을 지도했던 이력 때문이었을까? 그중에서도 연령층이 가장 낮은 10대~20대의 분들을 담당하게 되었다.


지금은 흔하지 않은 대형시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있으니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그리고 그곳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사는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내가 오기 전 두 명의 사회복지사가 왔었고 어쩐 일인지 하루 24시간을 버티지 못한 채 중간에 줄행랑을 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 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고 예전 “내가 했던 일들에 비하면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겠어.”라는 마음으로 그곳에 계신 분들을 마주한 순간 - 끝없이 자신 이마를 때리는 사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사람, 복지사의 눈을 피해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 오로지 기본적인 욕구에만 충실한 사람, 물론 몇몇은 차분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감정조절이 어려워 순간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사실 - 글쎄 당시의 이 느낌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때 만났던 많은 장애인 분. 이 시간들로 인해서 - 그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며 어떻게 생활하는지 장애에 대해 보다 폭 넓은 앎을 갖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 담당으로 계신 분들은 모두가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다른 거주실보다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른 시간 일어나서 곧바로 등교 준비 – 씻기고, 식사하고(물론 식사 준비는 여사님들이), 다시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가방 챙기는 것 – 이후 학교 버스가 오는 곳까지 차에 태워 데려다주는 것으로 하루 업무가 시작되었다. 이후에는 보통의 가정집과 똑같은 실내 청소, 세탁물, 옷장 정리 그리고 틈틈이 내려오는 업무들 – 시설 주변의 잡초 제거, 꽃 심기 등등 – 오후에는 아침에 학교 갔던 분들의 하원 지원 - 보호자의 역할에 따른 학교 선생님들과의 소통 - 및 목욕, 식사 그리고 일지 작성.


아마 이때의 경험이 현재 육아를 함에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아내가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후 시간이 너무 많이 비어 있지 않은가? 이렇게만 일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세상일 그것이 그리 쉬울까? 처음 이야기했던 나머지 학교에 가지 않는 30~40대 연령의 장애인 분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 및 일상 지원. 이분들은 내 담당이 아님에도 내가 돌봐드려야 하는 상황.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일하는 곳은 모두 4명의 근무자가 1인당 7명의 장애인을 – 당시에는 그랬다. 지금은 3.5명 인가? - 그것도 4명이 동시에 근무하는 것이 아닌, 2명씩 48시간 맞교대의 시스템.     


지금은 다양한 근무 형태가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고 아무래도 한 사람이 볼 수 있는 수가 많다 보니 차마 잘했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그냥 열심히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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