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RKER Jun 25. 2024

1부 겨울 이야기 '당신은...'

내 삶의 나침반 part 2

그렇게 사회*경제적으로 혼란한 시대였지만 쉬지 않고 일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우리 가족은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풍족함과는 거리가 있었는데 이는 어머님의 강력한 의지의 결과물로서 우리 형제의 간식을 위한 라면땅 1박스와 밀가루 한 포대를 구매할 뿐 모든 돈을 은행에 두고 필요할 때만 찾아서 생활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루하루가 쉽지 않았던 그 시절 함께 살았던 이웃과는 확연히 다른 생각과 삶을 사셨는데, 그래서일까?' 지금 나의 경제관념과 씀씀이는 이러한 당신의 모습 속에서 형성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시절 많은 사람이 그러했듯이 어머니께서도 공장에 나가 일을 하며 가게에 보탬이 되고자 하셨던 듯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버지께서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돈을 버는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아이가 돈을 달라고 하면 잘 챙겨주어야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다.`라고 하시며 가정에 충실하길 바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당시 시대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는데, 6.25를 겪으며 부모의 손길 없이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셨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알 수 없는 당신만의 특별했던 삶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식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무척이나 각별하셨다는 것과 그 큰 보살핌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아버지셨지만 이를 관리하는 분은 어머니였으며 특유의 꼼꼼함과 알뜰함으로 인하여 집안의 형편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어머니의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외적으로는 저 집은 '김칫국물 하나 허투루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는 이웃들의 이야기와 내적으로는 내가 입었던 모든 옷은 4살 터울의 형님이 입었던 옷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모두가 그러했으며 형님의 것은 모든 게 좋아 보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하자 조금 더 넓은 집으로 확장을 꿈꾸셨으며 그렇게 한 계단씩 앞으로 나아가던 중 어머니의 근검절약 정신이 빛을 발하게 되었는데 바로 불패 신화 불리었던 부동산이 꿈틀대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참 좋은 일인데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좋지 않았으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나는 한글을 모른 채 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물론 학습 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은 사전 교육이 없어도 잘했을 수 있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지나지 않아 선생님으로부터 보호자 상담 연락이 왔던 것 같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자고 일어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니 이에 신경을 쓰다 보니 미처 학습에 신경을 쓰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하게 되었고 학교 역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인가 하얀 도복에 색색이 허리띠를 매고 다니는 녀석들을 보면 무척이나 부러웠음에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나.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고 국민학교라는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입학을 한 천둥벌거숭이였던 나.

어머니 품에 안겨서 출근하는 아버지를 보고 손을 흔들며 어머니 등에 매달린 채 동네에 나가면 다른 녀석들의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침을 흘리지만 사달라고 떼를 쓰지는 못하는 착한(?) 아이였던 나.

이전 02화 1부 겨울 이야기 '당신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