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 사는 동네에는 오래된 집 한 채가 있습니다. 주택가에 자리 잡은 그 집은 오르막길에 지어져 아래쪽에서는 1층이 위쪽에서는 반지하처럼 보이는 2층 집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 한참 되어 외벽의 페인트는 벗겨진 지 오래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습니다.
여느 날처럼 그 집 앞을 지나가던 어느 여름날, 앙상했던 나뭇가지가 무성해져 초록으로 뒤덮인 나무를 발견하고는 감동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봄이 오면 싹이 돋고 여름이 오면 이파리가 진초록으로 뒤덮이는 계절의 변화는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무심히 지나치곤 했는데 그날은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겨울 녘 앙상하고 딱딱한나뭇가지에서 새봄 여린 잎이 나오는 게 신기했는데 여린 잎이 연둣빛으로, 연두색 잎이 초록빛으로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저렇게 푸르러졌구나, 생각하니 자연이 가져오는 변화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계절의 변화도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도 자주 눈길을 주고 관찰하다 보니 당연한 게 아니고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관심 갖고 눈길 주는 사이 이파리의 성장을 통해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날로 새롭게 느껴집니다.
어제의 볕과 오늘의 볕이 다르듯 오늘의 바람과 내일의 바람이 달라서 하루하루가 새롭게 변모합니다. 그 미묘한 변화, 하루도 같지 않고 하루하루가 달라져서 일상이 새롭게 변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와 그림으로 담고 싶었습니다.
햇빛과 바람, 비와 눈이 키워준 아름드리 초록빛 나무들이 오래되어 낡은 집을 감싸고 있습니다. 지금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곰팡이가 피어 볼품없어졌지만 한때는 이 집에서 부모는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뛰어놀았을 겁니다. 성장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각각의 가정을 꾸리고 젊었던 부모는 나이가 들었거나 아마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한 가정의 서사를 가지고 있는 집도 이제는 낡아서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제 역할을 다 한 집은 별로 서운한 기색이 없습니다. 그저 이웃해 있는 커다란 나무와 함께 뜨거운 여름의 초록빛 풍경을 만들어갈 뿐입니다.
나무는 낡고 방치된 집의 모양새보다는 그 집에서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고 성장하고 늙어간 그 추억을 함께 공유하는 듯합니다.
나무의 품에서 비로소 집은 편안해 보입니다. 그렇게 저는 여름나무와 오래된 집을 그림에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