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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Jul 29. 2022

뒷마당에서 일어나는 일들

호박과 고양이와 우리

지난 봄에 종묘상에서 호박 모종 2개를 샀다. 애호박 조선호박 단호박 등 호박 모종도 종류가 여러 가지라고 주인이 말했다. 나는 혹시 호박 재배에 성공한다면 찌개에 넣어 먹을 생각을 하며 조선호박으로 달라고 했다. 모종 두 개 가격이 천 원이었으니 실험 삼아 심어 보아도 크게 손해 날 일이 없었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은 설렘도 있지만 우려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여리고 자그마한 잎을 달고 있는 애기 식물이 과연 잘 자라서 커다란 호박잎이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남편과 함께 호박 모종을 뒷마당에 심었다. 처음 일주일 간은 매일같이 호박 모종에 물을 주었다. 일터 뒷마당에 심은 거라서 일찍 출근하는 남편이 물 주는 일을 맡았다. 나 역시 내가 데리고 온 애들이 죽지 않고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들여다보았다. 다행히도 애들은 이사 온 땅에 자리를 잘 잡는 것 같았다.


봄이 지나고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덩굴 식물인 호박은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며 쑥쑥 자랐고 장마가 오면서 비를 흠뻑 머금은 호박은 어느새 페퍼민트가 심어진 구역까지 줄기를 뻗어가고 있다. 호박은 자리를 잘 잡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역을 온 마당으로 넓혀간다. 비가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줄기와 이파리는 사방팔방으로 뻗어있다. 호박 두 개를 심었을 뿐인데 좁지 않은 마당이 호박 덩굴로 뒤덮여 있다. 빠르게 번성하는 호박의 생명력은 보기에 무서울 정도로 드세고 강건했다.

어느새 꽃이 지는 자리에 줄기를 따라서 자그마하게 열매가 맺혀 있다. 앙증맞을 정도로 작고 귀여운 호박 열매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호박잎이 워낙 크게 자라서 잎을 헤치고 꽃이 있는 자리에 열매가 열렸나 들여다봐야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처음으로 호박 하나를 수확했다. 한 손으로 들었을 때 무게감이 꽤 나가는 싱싱한 호박이었다.


내 손으로 수확한 첫 호박이 주는 묘한 성취감과 신비로움.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이렇게 싱싱하고 어여쁜 열매를 주다니, 고맙고 기특했다. 작은 모종이 마당에 뿌리를 내리며 땅의 기운을 흡수하고 보슬거리던 봄비와 뜨거운 태양볕과 주룩주룩 내리던 장맛비를 영양분 삼아 열매라는 우주를 창조해 내었다. 그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호박일 뿐이지만 내 터전에서 내가 심은 호박이 둥글게 싱그러운 연초록빛으로 열매 맺음은 기쁘면서 신비로운 일이었다.

마당 한쪽에는 작년에 심은 국화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몇 년 전에 심은 페퍼민트와 로즈메리 화분 두 개가 있다. 성질 급한 몇몇 국화는 한여름인데도 노란꽃을 새초롬하니 피우고 있다. 페퍼민트는 향이 상쾌해 잎을 따 말려서 허브차로 마시기도 한다.


화분에 심었던 로즈메리는 추운 겨울에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더니 땅에 뿌리를 내려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내가 심은 이 애들이 잘 자라는지 살펴보느라 뒷마당을 들여다보는 일은 요즘 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페퍼민트

어느 날인가, 고양이 한 마리가 뒷마당에서 페퍼민트 잎을 따고 있는 나를 쳐다본다. 고양이의 눈빛은 온순하지도 무심하지도 않다. 자기 영역에 침범한 누군가를 물리치려는 눈빛이다. 자기가 주인인 이곳에 허락 없이 침입한 불청객과 대적하는 눈빛이다. 냉정하고 매섭다. ‘왜 내 영역에 들어왔어.’ 엄하게 질책하고 적대적으로 나무란다.


고양이의 그런 눈빛에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다. 우리 땅에서 내가 내 일을 하는데 쟤 왜 저러나, 싶어서 괘씸하기도 했다. 적대적인 태도로 나를 쳐다보는 것은 그게 누구이던 간에 기분 나쁜 일이다. 그래서 은근히 화도 났다. 자기 땅이라고 생각하는 그 눈빛에 소유권 다툼이라도 해야 하나,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소유'라는 단어를 들여다 보았다.


고양이 입장에서 이 마당은 햇빛 쪼이며 놀고 쉬고 산책하고 배설하는 영역이므로 자기가 주인인 것이 맞다. 고양이는 고양이 세계의 영역 다툼에서 이 땅을 차지했을 것이므로 고양이 것이 맞다. 나 역시 17년 전에 전 주인에게 이 땅을 사서 등기부 등본에 이름을 올렸으니 우리 땅인 것도 맞다.


그러면서 나는 마당이 고양이 소유도 우리 소유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20년 전에 이 땅은  우리 것이 아닌 누군가의 것이었고 미래의 어느 날엔가 역시 우리 것이 아니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고양이도 언젠가 또 다른 고양이에게 영역 다툼에서 패하면 이 곳을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앞뒤로 놓고 멀찌감치서 바라봤을 때 이 땅의 주인은 우리도 고양이도 아니었다. 지금은 이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영원한 소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머물면서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소유하는 것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게서 잠시 빌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뒷마당은 고양이의 것이기도 하고 우리 것이기도 하고 무섭게 성장하며 찬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는 한해살이 호박의 것이기도 하다.


호박은 우리에게 열매를 주고 우리는 고양이에게 쉼의 공간을 주고 고양이는 우리 주변에 쥐를 사라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 뒷마당은 호박과 고양이와 우리가 공존 공생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이다.


뒷마당에서 따 온 호박이 나의 노동력과 합심을 해 점심 식탁에서 새우와 양파, 깻잎과 당근이 섞인 새우야채전으로 변신을 했다. 저녁 식탁에서는 들기름으로 볶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호박볶음으로 거듭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주었다.


어제 따 온 세 개의 호박 중 하나는 이웃과 나눠 먹었다. 뒷마당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고 서로 호의와 선의를 나눈다. 그래서 호박은 성장하고 고양이는 자유롭고 우리는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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