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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Sep 03. 2022

서울의 풍경들

익숙하거나 새롭거나

오래간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이번에 서울에 온 것은 며칠 있으면 다시 떠나는 동생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런던에서 태어난 조카에게 서울은 낯설지만 가고 싶은 도시이고 타국살이가 20여 년 가까운 남동생에게도 젊은 시절 잠시 머물렀던 서울은 한국에 오면 꼭 들르고 싶은 도시다. 서울을 구경하고 싶은 런더너 둘과 한때 서울에 살았던 나와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여동생, 넷이서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산책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하늘은 흐려 간간이 비를 흩뿌렸는데 해가 나지 않아서 오히려 선선한 가운데 걷기에 적당했다.

우리는 새로 조성된 광화문 광장을 걸었다.  남동생은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어 달란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에 오래 살아서 남동생에게 우리말과 한글은 감회가 깊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우리말과 글이 소중하게 생각되어 세종대왕과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나 보다. 동상 속에서 세종 대왕은 인자하고 자애로웠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서 우리는 교보문고에 들렀다. 평일 한낮의 대형 서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김훈 선생의 신작 소설 <하얼빈>이 1위 자리에 올라와 있다. 선생의 소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인상 깊게 읽었던 나는 여전한 선생의 저력과 필력에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보탠다.

광교에서 바라본 청계천

어느새 흐렸던 하늘이 맑게 개여 파란빛을 띠고 있다. 광교를 건너며 여동생은 조카를 여기저기 세워 놓고 사진을 찍어 주느라 여념이 없다. 파란 하늘과 청계천을 흐르는 맑은 물이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심의 풍경을 한가롭게 풀어놓는다.


서울시가 마련한 공용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그들이 두 발로 굴리는 자전거 바퀴가 빠르고 삭막하게 움직이는 도시 분위기에 잠여유를 준다. 을지로에  놓여 있는 벤치 몇 개가 도심의 쉼터 역할을 해 주듯이 말이다.

광화문 거리를 걷고 종로와 청계천과 을지로까지 서울 시내를  천천히 둘러보았는데 이번 서울 나들이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뭐니 뭐니 해도 경복궁이었다. 광화문에서 일자로 이어져 있는 흥례문과 근정문과 근정전의 아름다움, 넓게 펼쳐진 궁궐 마당의 시원함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오랜 만에 만나는 경복궁은 시원스러운 위엄과 우리의 전통미가 풍기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의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외국인들도 꽤 많이 보였다. 여자들이 입고 다니는 치마와 저고리는 편리하게 개량이 되었지만 한복의 특색은 그대로 살려 내어 은은하면서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특히 남자 한복 중에 왕의 복식인 곤룡포를 입고 왕이 쓰던 익선관을 쓰고 다니는 외국인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옛 궁에서 왕의 복식을 입고 다니는 관광객을 보고 있으니 궁이 훨씬 궁답게 느껴져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외국인들이 우리 고유의 옷인 한복을 입고 우리의 고궁을 거닐며 사진을 찍는 모습은 그들에게는 좋은 추억거리로 남을 거고 바라보고 있는 나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더구나 화사한 한복이 무채색의 고궁에 다채로운 색들의 향연을 펼치니 보기에도 좋았다.

근정전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사절을 접견했던 근정전은 품위있게 멋졌다. 단청의 색은 화사했고 정전은 너무 위압적이지 않으면서 나라의 품격과 임금의 고매한 덕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높고 아름다웠다.


근정전에서 바라보는 앞마당은 권위를 흩뜨리지 않을 만큼 넓고 시원했다.

교태전의 담장과 굴뚝

왕이 일상을 보냈던 강녕전과 왕비가 거주했던 교태전은 기품이 느껴졌다. 교태전의 뒷담장은 자연에서 따온 아름다운 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뒷마당에 꾸며진 아미산 굴뚝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 중후하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균형 잡힌 규모의 궁궐 담장과 굴뚝이었다.

경회루

연못을 품고 있는 경회루 또한 경복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한 경회루는 멋지고 연못에 비친 경회루와 실제 경회루가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은 우리 것 고유의 아름다운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연못에 비친 경회루를 보고 있으니 지난 봄 바르셀로나 여행 중 보았던 연못에 비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떠올랐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하늘로 솟아오르며 신에게 다가가려는 인간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면, 우리의 경회루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함께 품어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듯 느껴졌다.


경회루 옆에는 기념품을 파는 카페가 있다. 잠시 쉬기 위해 카페에 들러 기념품을 구경했다. 한국의 전통을 담은 마그네틱, 머그컵, 커피잔, 에코백과 같은 생활용품과 문구류 등이 진열되어 있는데 상품의 질이 좋고 디자인은 훌륭하고 가격은 합리적이었다.


새롭게 전통을 해석한 물건들을 너무 잘 만들어 놓아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며칠 있으면 런던으로 떠날 조카들과 올케를 위한 선물을 고르고 경복궁 나들이 기념으로 동생들과 나를 위해 친환경 종이로 만든 마그네틱을 하나씩 사서 나눠 가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시간 속에서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고궁은 한 번쯤 숨을 고르며 쉬어가는 여유를 주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카페 야외 들마루에 앉아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람결에 부드럽게 하늘거리는 경회루 앞 버드나무에 눈길을 주고 기품있게 서 있는 소나무도 바라보았다. 너르게 펼쳐진 경복궁 뜨락을 유유자적 걷고 전각들을 살펴보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고궁에서의 시간은 평화롭고 한가로이 흘러갔다. 오늘 고궁의 시간이 그렇듯이 미래의 시간도 그럴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고궁의 시간은 참으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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