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링을 하려고 세계 명화가 프린트되어 있는 책을 넘겨 보다가 앙리 마티스의 <춤>을 발견했다. 빨강과 파랑과 녹색으로 칠해진 원색의 하모니가 강렬하게 와닿았다. 그리고 원초적인 모습으로 춤에 빠져들어 있는 사람들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수채화로 그림을 채색하면서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보았던 <춤>이 기억났다. 십수 년 전에 엄마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짜서 딸아이와 둘이서 뉴욕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사진을 찾아보니 딸아이가 마티스의 <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그런데 컬러테라피북에 프린트되어 있는 <춤>과 뭔가 좀 다르다. 그래서 자료를 검색해 보았다.
마티스가 그린 <춤>은 러시아의 부호 세르게이 시추킨의 주문으로 그려졌는데 두 개가 있었다. 내가 본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는 <춤>은 1909년에 그려졌고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있는 <춤>은 1910년에 그려졌다. 두 개의 <춤>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앙리 마티스의 <춤2>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우선, 첫 번째 <춤>과 두 번째 <춤>은 구도가 같다. 파란빛의 하늘과 초록빛 대지,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커다란 캔버스를 꽉 채운다.
또한 첫 번째에 비해 두 번째 <춤>은 훨씬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고개를 더 많이 숙이고 다리의 각도는 넓어 춤에 더 집중하고 더 신명 나게 움직이는 인상을 받는다. 두 번째 그림은 첫 번째에 비해 색감도 훨씬 강렬하다. 파랑과 초록 바탕에 빨간색으로 칠해진 인물들이 더 강하고 열정적으로 보인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마티스는 사실적인 표현이나 원근법으로부터 자유롭게 인물의 움직임과 색감으로 인상적인 그림을 남겼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원무를 그리며 춤을 춘다. 함께 춤을 추면서 각자가 자신의 춤에 몰두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하나의 손이 다른 손을 놓쳐 떨어진 손을 잡으려 팔을 뻗어 동작을 크게 하는 포즈는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준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나는 역동성과 생동감, 강렬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느낀다.
앙리 마티스의 <춤>, 하늘과 땅 수채화 채색
나는 수채화 물감으로 하늘을 먼저 칠해본다. 마티스가 파랑으로 칠한 하늘에서 맑은 날의 하늘과 흐린 날의 하늘, 천둥 치는 하늘과 햇빛 반짝이는 하늘, 눈발 날리는 하늘과 노을 지는 하늘을 상상한다. 밝은 빛으로 반짝이는 낮과 어둠이 깔린 밤을 본다. 무수히 많은 별들과 달과 태양을 기억한다. 무겁고 가벼운 하늘, 무섭고 친절한 하늘, 내가 아는 모든 하늘을 담아 코발트와 네이비를 섞어 하늘을 칠한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우리는 하늘을 날아올라 먼 우주까지 가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늘은 우리 위에서 찬란하게 반짝이길 적당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춤추는 사람들이 발 딛고 서 있는 땅은 하늘과 바람과 더불어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는 어머니 대지이다. 온 산과 들에 푸르름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은혜를 베푼다. 자연의 베풂과 인간의 노동력이 결합되어 곡식이 되고 일용할 양식이 되어 우리는 그 힘으로 살아가고 문명을 이루고 기술을 진보시켰다.
대지는 너그러움 뿐만 아니라 황무지와 사막의 척박함, 동토의 혹독함까지 수없이 다양한 얼굴을 가졌다. 그럼에도 대지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토대이다. 어쩌면 마티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생명의 빛깔, 평화의 빛깔인 초록으로 대지의 무한한 생명력을 표현했다.
앙리 마티스 <춤> , 수채화 컬러링
다섯 명의 사람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다. 인체는 단순하게 몇 개의 굵은 선으로 묘사되었고 그들의 움직임은 크고 활달하다. 각자가 자신의 춤에 몰두해서 춤추는 이외의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춤에 집중해 있다. 그들 각자의 몰두는 자신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와 타가, 개인과 집단이 한마음이 되어 손에 손을 잡고 마음과 마음을 모으고 있다.
그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 명예의 유무, 재산과 능력과 나이의 많고 적음을 내려놓고 이해관계조차 내려놓고 그들은 모여서 춤을 추고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쩌면 훌훌 벗어던지고 오직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만 가지고 흥겨운 리듬에 맞춰 혹은 진지한 음악에 감싸여 춤을 추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휘감고 있는 외적인 옷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태어날 때처럼 알몸으로 투명한 영혼으로 만났다. 모든 걸 내려놓은 영혼들은 태초의 마음, 원형질의 마음으로 춤을 출 수 있다. 그래서 춤은 생활하는 삶의 몸짓이고 생명의 에너지가 빚어내는 조화와 평화의 몸짓이 된다.
혼자보다 둘이, 둘보다 여럿이 함께 하는 몸짓은 정신과 인간성의 고양으로 확대된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한 교감을 나누고 있다. 따뜻한 교감을 나누는 마음과 에너지가 충만한 마음은 빨강으로 표현한다.
하늘과 대지의 기운을 담아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함께 추는 춤은 그래서 조화롭고 열정적이고 아름답다. 마티스의 <춤>을 채색하면서 나는 하늘과 바람과 땅의 리듬에 맞추어 사는 인간의 자유롭고 활동적이며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