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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Jan 04. 2024

풍경화 수업

<테이트 수채화 수업>을 그리며

수채화로 색을 칠하는 어반스케치를 하다 보니 더 실감 나게 그려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 욕망은 유튜브를 통해 나무 그리는 법부터 바다 그리는 법까지 영상을 보면서 따라 그리게 하고 수채화에 관한 책들을 빌려와 그려 보게 만든다.

느티나무와 감나무, 참나무와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그려보고 수채화 책을 보면서 쉬운 풍경화부터 좀 복잡한 풍경화까지 그려본다.


이번에는 도서관에서  갔다가 <테이트 수채화 수업>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데이비드 챈들러라는 영국의 화가이자 미술교사가 펴낸 책인데 영국국립현대미술관 테이트 소장품에서 엄선한 30점의 작품을 예시로 수채화 그리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16년 전, 런던에 한 달 동안 머물면서  딸아이와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에 간 적이 있다. 코린트 양식의 화려하고 우아한 기둥이 인상적인 테이트 브리튼 건물과 밀레니엄 다리를 건너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지은 테이트 모던 건물이 지금도 떠오른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본 윌리엄 터너만의 기법이 담긴 풍경화도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두 미술관이 인상적이었던 은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때문이었는데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있어서 그때 초등 5학년이었던 딸아이는 전시된 그림들을 따라 그려볼 수 있었다.


런던뿐만 아니라 유럽의 미술관들에서는 이젤을 세워놓고 명화들 앞에서 바로 보고 따라 그리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때 나는 그들이 조금은 부러웠나 보다. 그때 못해 본 것들을 저자의 안내대로 테이트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화가들의 작품 속 특징을 살펴보며 집에서라도 그려보고 싶었다.

<테이트 수채화 수업>에는 폴 세잔과 윌리엄 터너를 비롯한 30여 명 화가들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수채화의 기법이나 색채감, 구성력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었다. 을 훑어보니 흥미운 그림들이 여러 점이다.


저자는 토마스 거틴이 1800년에 그린 "첼시의 하얀 집'풍경화를 지금까지 가장 인정받는 수채화 풍경으로 손꼽는다고 말한다. 하얀 집이 강변에 비치는 모습은 수채화에서 무엇을 칠했는지보다 무엇을 칠하지 않았는지에 방점을 둔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대로 하얀 집은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여백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작은 언덕은 번트시에나와 옐로 오커, 강과 어둠이 깔린 주변 풍경은 프러시안 블루와 울트라 마린 물감을 적절히 섞어 물의 농도를 달리해 '첼시의 하얀 집'을 그려본다.


존 셀 코트먼의 '더럼'이라는 작품은 1805년에서 1810년 사이에 영국 북부를 방문하며 그린 작품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온통 무채색으로 가득 한 이 그림은 무채색의 다양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색의 삼원색인 빨강, 노랑, 파랑을 섞으면 검은색이 나온다는 원리를 이 그림을 그리면서 체험했다. 세 가지 색의 양을 조금씩 달리 하고 물의 농도 역시 다르게 만들면 엷은 회색부터 검정에 가까운 회색까지 수많은 스펙트럼의 회색이 만들어진다.


물의 양을 조절하고 빨강과 노랑, 파랑 물감의 양을 조절하며 다양한 무채색을 만들어 보는 것이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1904년에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베니스의 리바 델리 스키아보니'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고 여행하면서 사전트는 곤돌라의 뱃머리에서 보이는 베네치아의 풍경을 빠르게 그렸다고 한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빨리 그림을 그려야 하니 여러가지 색을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울트라 마린이 강렬하게 다가왔고 뱃머리에 앉아 있는 화가의 시점을 감상자의 눈이 따라가는 재미가 있어 그려 보았다. 사전트가 사용한 색이 파랑과 갈색이므로 나도 울트라마린과 번트시에나를 써서 그림을 그렸다. 여러 색을 쓰지 않고 단 두 가지 색의 혼합과 농도 조절만으로 그림이 된다는 것은 단순함이 주는 산뜻한 매력이었다.


화가 존 발리는 '구성: 성과 멀리 있는 언덕이 있는 드넓은 풍경'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 나는 이 풍경화가 맘에 든다. 멀리 있는 산과 강물, 성과 잡목들, 앞쪽에 나무 두 그루와 언덕이 있는 풍경...  고요하고 평화로운 어쩌면 쓸쓸할 것만 같은 풍경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름이 살짝 끼어있는 드넓은 하늘, 이 풍경화는 이 드넓은 하늘로 인해 적막하지만 평화로운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 듯하다.

존 발리의 풍경화에서도 저자의 설명대로 다양한 색을 쓰지 않고 갈색과 파랑, 녹색만 써서 그려 보았다.


저자가 고른 창조적인 화가들의 수채 풍경화를 보고 그리면서  난 아주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사실을 배웠다.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색만 가지고도 좋은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도구가 훌륭하고 다양해야 좋은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된다. 중요한 은 가지고 있는 것을 얼마나 잘 다룰 줄 아느냐에 다.


가장 기본적인 색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물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면 붓질이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것은 또 많은 실험과 작업을 통해 색을 알고 물을 알게 된 뒤에얻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인은 단순한 도구를 가지고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림 속에서 자연이 만들어 낸 풍경은 아름답다. 시간의 축적으로 형성된 산과 강, 시간의 흐름으로 변하는 나무와 하늘을 관찰자들이 혜안을 가지고 표현할 줄 알아서일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풍경인 성과 건축물, 다리와 배 등이 자연의 풍경과 만나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움은 더 빛이 난다.


새해 아침 수채화를 그리며 우리를 둘러싼 삶이라는 풍경 속에서 미를 발견하고 나누면 좋겠다는 새해 소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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