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유수 - 옹점이 이야기

이문구 <관촌수필> (문학과지성사)

by 밝은 숲

옹점이는 화자의 외가 행랑아범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친정에 갔다가 안저지 겸 허드레 심부름을 시키려 데려와 기른 아이였다. 할아버지는 처음 만난 옹점이의 나이와 이름을 물었다.


“그래 너는 몇 살이나 되었다더냐?“

“지 에미가 그러는디 제년이 작년까장은 제우 여섯 살이었대유. 그런디 시방은 잘 몰르겄슈.”

“늬가 늬 나이를 모른다 허느냐?”

“예, 워떤 이는 하나 늘어서 일곱 살이라구 허던디 또 누구는 하나 먹었응께 다섯 살이라구 허거던유.“ (p19)


“그래 늬 이릠은 무엇이라 부르더냐?”

“먼젓것인디유.”

“먼젓것이라…… 아직 이릠이 웂더란 말이렷다.”

“…… ”

“늬 에미가 너를 즘촌(질그릇 굽는 마을) 옹기 틈목에서 풀었다더구나…… 오날버텀 이릠을 옹젬이라 허거라. 옹젬이가 무던허겄구나.” (p20)


할아버지는 즉석에서 옹점이의 이름을 지어줬고 먼젓것이었던 옹점이는 그때부터 옹점이라 불리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옹점이에게 안팎 범절과 행실을 가르쳤고 어머니는 부엌 일과 바느질을 가르쳤는데 옹점이는 눈썰미가 있고 손속이 좋아서 금방 깨우치고 배웠다.


화자와는 10년의 나이 차가 나지만 어린 화자의 기억 속에서 옹점이는 언제나 동갑내기처럼 놀아주었고 토라져서 자기 신세를 볶을 적에도 한결같이 감싸주는 보호자 역할을 했다. 동네에 떠들어온 비렁뱅이와 동냥중, 나병환자들에게 먹을 것을 푸짐하게 나눠줄 만큼 옹점이는 손이 크고 동정심이 많고 마음씨가 고왔다.


하지만 옹점이에게는 다른 면도 있었는데 아버지의 사랑방 손님들-조직원이나 연락원이던-을 연행하기 위해 야밤에 곤히 잠자고 있는 방에 들어와 불을 켜고 벽장을 뒤지는 사복 형사들을 대하는 옹점이의 태도에서 여진다.


“너는 뭣이여? 누구여? 바른 대루 대여.”

“이 댁 부뚜막지기유. 왜유?”

“이년이 누구를 째려봐, 잔말 말구 나와.”

순경 손에 적삼섶을 잡힌 채 안마당으로 끌려나온 옹점이는 순경에게 몸수색을 당하고는 독이 시퍼렇게 오른 눈으로 순경을 째려보았다.

“증말루 이 집 애여? 그짓말허면 워디 가는 중 알지? 신세 조지지 말구 순순히 대답혀.“

“자던 사람 대이구 말 시키먼 하품 나와유.”

“그야 고단헐 테지. 손님 밥을 일곱 번이나 지었으니께.”

“넘으 집 안살림을 워치기 그리 잘 아슈. 그 개갈 안 나는 소리 웬만큼 허슈.”

“야, 굴뚝에서 일곱 번 연기 난 것을 본 사람이 있어.”

“워떤 옘병허다 용 못 쓰구 뎌질 것이 그류? 밥 짓구 국 끓이구 찌개 허면 하루 시끼니께 연기가 아홉 번 나지 워째서 해필 일곱 번이여. 끈나풀을 삼어두 워째서 그런 들 익은 것으루 삼었으까. 그런 눈깔을 빼서 개 줄 늠 같으니.”

“…… ”

“워떤 용천(나병)허다 올러감사헐 것이 그런 그짓말을 협듀? 찢어서 젓 담글 늠. 그런 것은 안 잡어가유?” (p88~90)


옹점이의 입은 걸고 시원시원했는데 사복형사를 상대로 기죽지 않고 할 말 다 하면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만큼 옹점이는 의뭉스러웠고 용기 있고 대범했다.


그 당시 관촌마을은 신작로를 건너면 갯벌이 지척이었다. 그래서 마을 아낙네들은 제방에 나와 갯물에 김칫거리를 씻었는데 바닷물로 씻어 자연히 절여지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조 때 옹점이가 열무를 씻으러 나서면 어린 화자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인 갯벌로 향했다.


제방에 다다르기 전에 장항선 철로가 놓여 있는데 기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면 모두가 가던 길을 멈추고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 기차에는 생김새도 낯선 미군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뭔가를 던져주며 가져가라는 시늉을 했다. 미군들이 던져 준 것은 초콜릿, 비스킷, 껌, 빵, 캐러멜과 같은 것들인데 놀라운 것은 한두 번씩 베어 먹은 것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빵에는 가래침을 뱉어 놓은 것들도 있었다. 그걸 본 옹점이는 사나운 입을 열었다.


"어매...... 그런 빌어를 먹다 급살맞어 뎌질 것들 봐......"

"그것들이 조선 사람은 죄다 그지라구 여북이나 숭보면서 비웃었겄네. 개헌티두 그렇게는 안 던져주겄더라. 너는 누가 주더라두 받어먹지 말으야여."

"대관절 조선 사람이 뭘루 뵜글래 처먹던 것을 던져줬으까나......" (P107)


해방 후 남한에 미군정이 들어선 뒤로 대천 바다 근처에 미군 부대가 만들어지면서 그들의 휴양지로 대천해수욕장이 만들어진 것인데 미군들은 장항선 완행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조선 사람이 보이면 일부러 먹던 것을 던져주고 히죽거리며 웃곤 했던 것이다. 미군들이 빵이나 초콜릿, 비스킷에다 침을 발라서 던져 준다는 소문이 파다해져서야 철로가에는 하나라도 차지하거나 빼앗아 먹으려고 악다구니 쓰던 사람들이 없어졌다. 옹점이는 처음부터 그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에 분개했고 자존심을 지킬 줄 알 만큼 주체 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어린 화자의 친구이자 보호자였던 옹점이가 시집을 갔다. 인정 많고 일 잘하고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부르던 그녀가 떠나자 어머니는 손발을 잃었다 할 정도로 넋을 놓았고 어린 화자는 논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렸다.


옹점이가 결혼하고 나서 6.25 전쟁이 터졌는데 옹점이 남편이 군대에 나가고부터 옹점이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제금나서 살던 집은 시누이에게 빼앗기고 옹점이는 고된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유골로 돌아왔다. 옹점이는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돌아갔고 그 당시 어린 화자는 어머니를 잃었다.


화자가 열두어 살 즈음, 옹점이가 약장수를 따라다니며 노래를 부른다는 소문을 듣는다. 광천장에서 홍성장에서 청양장에서 옹점이를 봤다는 소문이 파다할 때, 어린 화자는 대천장에서 옹점이를 만난다. 약장수 패거리 틈에 끼어 옹점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이웃의 말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그쪽으로 달려간다.


머리는 파마를 하고 맘보바지에 히루를 신은 이가 옹점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새 기타 소리에 맞춰 옹점이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어린 화자는 자신도 모르게 장터를 뛰쳐나온다. 반갑다고 아는 체도 못하고 가슴을 뒤흔드는 노랫소리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신을 가눌 수가 없어서 그릇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뒤돌아 뛰어간다.


그렇게 이별한 옹점이가 화자에게는 가슴에 서린 회포와 그리움이 되었다. 화자의 어린 시절 언제나 자신의 편이 돼 주었던 맘씨 좋은 옹점이, 항상 자신을 챙겨주던 옹점이… 그런 옹점이가 낯선 모양새를 하고 장터에서 약장수를 따라다니며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본 어린 화자는 놀랍고 충격이었을 것이다. 안의 마지막 어른이었던 어머니마저 잃은 화자에게 옹점이는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 중에 가장 반가운 가족 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는 체도 못 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으니......


어린 시절 옹점이가 가르쳐 준 노래는 추억이 되고 옹점이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부르던 노가락을 듣게 될 때 화자 추억 속에서 옹점이 소환되는데 '행운유수' 이야기를 읽는 독자의 마음 속에도 옹점이는 가슴 먹먹한 그리움과 회한으로 남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