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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바스 이실장 Apr 26. 2024

베짱이는 살아있다!(9)

9화 - 386 개미의 탄생과 비단주머니

베짱이는 개미여왕의 거부권 발동으로 개미조직의 주 6일 근무를 실시할 수가 없었다. 개미들은 다시 매일매일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 베짱이는 개미여왕의 반대로 자신이 추진한 주 6일 근무를 할 수 없음에 충격은 컸다. 베짱이는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무기력한 적은 없었다. 천재 메뚜기 베짱이가 말이다. 항상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자신감이 있었고, 뭐든 할 수 있었던 베짱이다. 이런 벽에 부딪혀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베짱이는 무기력감에 빠져 모든 일이 귀찮아졌다.


내가 누구를 위해 고민하고,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인가? 개미조직에서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담배 한 개 피우며 낙담하는 베짱이

나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한 개 피우고 있는데, 일 잘하는 중년의 개미 여러 마리가 나를 찾아왔다. 나중에 이 개미들을 386 개미라고 부르게 된다.


https://brunch.co.kr/@7130171e650d4e0/61


아! 여기서 베짱이인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 만약 내 여친 예쁜 나비 나불나불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큰일 난다. 나불나불이는 냄새에 아주 예민하다. 매일 맛있는 꽃향기를 맡으며 달콤한 꿀만 빨다 보니, 좋지 않은 담배 냄새는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한다. 지난번에 생각 없이 내가 담배를 한 개 피우고 나불나불이를 바로 만나게 되었다. 나를 만나자마자 나불나불이는 나에게 담배를 피웠냐고 묻길래, 


"아니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이건 개돌이가 피웠는데 난 그 옆에 있었을 뿐이야. 개돌이가 담배를 피우면서 장난으로 나한테 후욱~ 불었는데, 그게 내 날개에 베었나 봐! 담배냄새가 참 독하기도 하지. 한번 베인 냄새는 잘 빠지지가 않아. 꼴초 개돌이 녀석!"

"그래? 나는 담배 피우는 벌레랑은 절대 만나지 않을 거야. 절대 담배 피우지 마! 그리고 개돌이랑 놀지 마. 담배 피우는 벌레는 나쁜 벌레야. 나랑 계속 사귈 거면 조심해!" 라고 말하며 토라졌다. 

나불나불이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나는 아주 낮은 자세를 취하며, 꽃도 따다 주고, 꿀도 따다 주었다. 다행히 나불나불이의 마음은 풀어졌다. '여자들이란 참~ 왜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게 많은 거야! 결혼해서 같이 살게 되면 더 심해질까?'

베짱이에게 성질내는 나불나불이

그때는 다행히 넘어가긴 했다. 담배를 모르는 개돌이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개돌이를 담배 피운 범인으로 몰면서 나는 겨우 나불나불이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었다. 이후로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몰래몰래 담배를 피우곤 했다. 나는 천재 메뚜기이다 보니 내가 생각해야 것도 많았고 머릿속도 복잡하다. 그럴 담배를 한 개 피워주면 기분도 좋아지고 머릿속도 정리가 되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기도 한다. 힘들게 일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에 피우는 한 개의 담배는 달콤한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웠다. 하지만 냄새에 민감한 나불나불이와 연애하고 결혼하려면 담배를 끊어 버리거나, 적어도 담배 피우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 몇 번 금연 시도는 했었다. 하지만 3일을 못 참고 피우게 된다. 담배는 중독성이 아주 강해서 쉽게 흡연의 굴에서 나오기 힘들다. 아니 내 의지가 강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 내 계획은 우선 나불나불이에게 걸리지 않고 몰래 피우는 것이다. 언제까지? 결혼해서 아기를 낳을 때까지. 설마 아기가 있는데, 내가 담배 좀 피운다고 이혼하고 훨훨 나비처럼 날아가지는 않겠지. 그때까지만 조심하자! 담배도 마음대로 피우지도 못하고 으이그~ 세상 살기 참 힘들다. 


인간들도 담배를 피우면서도 '건강에 나쁘고, 냄새나는 이 나쁜 담배' 끊어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하지만 끊지 못하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담뱃값도 비싸고 수명도 줄어들고, 폐암 발병률도 몇 배 올라가는데 담배를 끊지 못할까? 그것은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핑계를 댄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한 개 피운 거야. 이것만 피우고 안피울꺼야!"

"우리 부장님이 자꾸 피자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담배를 끊으면 다른 사람과 소통을 못해!"

나무 뒤에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베짱이

이유는 많다. 나불나불이 처럼 담배에 민감하고 성질 잘 내는 와이프랑 같이 살기라도 한다면 몰래 숨어서 피울 수밖에 없다. 담배를 피우고 그 냄새를 지우기 위해 향수를 뿌리고, 독한 가글을 한다. 손도 깨끗하게 싹싹 닦고 세정제로 소독한 후 크림도 바른다. 담배는 차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집으로 올라간다. 그러다가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 온다면서 냄새가 안나는 전자담배를 피우고 들어간다.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나올 때마다 두 개씩은 피우고 들어간다. 안방에서 담배를 피우며 재떨이를 대령하라던 가장의 권위는 사라진 지 50년도 넘었다. 이제는 금연구역도 늘어나 담배를 피울 공간을 찾기도 힘들고, 비흡연자는 흡연자를 마약이나 하는 못된 범죄자 보듯 한다. 그러면서 나라의 전매청(담배인삼공사;KT&G)에서는 담배에 붙인 세금을 꾸준히 잘도 걷어간다. 참 아이러니 할 수 없다.




386마리의 개미들이 모였다. 중장년층의 개미들이다. 이 개미들은 집회를 열고 파업을 시작했다. "주 6일 근무를 시행하라!"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개미집 바깥의 넓은 공터에 모였다. 많은 개미들이 이 신기한 광경을 쳐다본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개미여왕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걱정되기도 했다. 386마리의 개미들은 평화시위를 했다. 이것이 바로 개미민주화운동의 시초가 된다. 그리고 이 386마리의 용감한 개미들을 '386 개미'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종족자결주의다. 자신의 종족의 운명은 자신들이 개척한다는 것이다. 종이 다른 벌레가 도와줄 수가 없고 도와줘서도 안된다.

'주 6일 근무 시행'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386 개미들

인간들도 20세기에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한 것은 시민들의 힘이었다. 그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는 타 세력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힘을 모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족자결주의다. 자기 민족의 운명은 자신들이 결정해야 하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창한 것이다. 물론 의도는 다른 데에 있었지만, 민족자결주의를 통해 많은 나라의 독립세력들이 시민들과 함께 힘을 모아 외치게 되었고, 독립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더 나아가 개개인의 자기 자신의 운명 또한 자신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 선생님, 친구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일부 도움을 받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자기 자신의 어려움은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해결하기 두렵고, 귀찮아서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맞기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 그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며 종속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부모는 아이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려고 한다. 물론 아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문제라면 도움을 줄수도 있겠지만, 아이들끼리의 문제라면 아이들이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부모가 매번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주다 보면, 조그마한 문제까지도 아이는 부모에게 미뤄버린다. 그렇게 의존적으로 자라는 아이의 문제는 부모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아이들끼리의 문제는 아이가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가 힌트 정도는 줄 수 있지만 말이다.



386 개미의 시위에 동참하는 중년의 개미들이 늘어갔다. 개미여왕은 집회를 해산하라며 개미경비대에 명령을 내렸고, 두 집단은 개미굴 앞 넓은 공터에서 대치했다. 유혈사태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두 집단은 격앙되어 있었다. 나는 386 개미에게 흥분을 가라앉혀 달라고 하고, 개미 경비대장에게는 폭력적 진압을 잠시만 미루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개미여왕에게 달려갔다.

시위 진압을 위해 정열해 있는 개미경비대

나는 즉시 개미여왕에게 알현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개미여왕은 소통을 모르는 것 같다. 소통을 모르는 집단의 수장은 위험하다. 독단적 결정을 하거나 간신배에 둘러싸여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386 개미 대표 몇 마리와 함께 개미여왕이 있는 알방 앞에서 기다렸다. 기다린 끝에 개돌이가 알방 안에서 나왔고, 개미여왕이 나를 만나줄 것을 자신이 겨우 설득하여 허락했다고 한다. 


'개돌이가 개미여왕을 설득했다고? 천재 메뚜기인 내가 생각하기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나는 개미여왕에게 설득했다. 


"지금 주 6일 근무를 원하는 개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비대와 대치하고 있는 개미단체에 유혈사태가 발생하면 더 많은 개미들이 들고일어날 것입니다.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면 일반 개미들이 지금의 개미여왕님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여왕개미를 차기 개미여왕으로 옹립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개미여론을 파악하고 많은 일개미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개미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는 없으니 주 6일 근무를 할 것인지 쉬는 날 없이 일할 것인지 모든 개미들의 직접 투표로 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지금의 위기는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식량이나 나르는 미천한 일개미들이 모두 투표를 하게 되면 내가 불리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개미여왕님이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비책이 담겨있는 비단주머니 세 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그 비단주머니를 내놓고 가거라."

베짱이의 비단주머니 세 개

나는 비단주머니 세 개를 개미여왕에게 바쳤다. 그중 비단주머니 하나를 열어 비책을 본 개미여왕은 잠깐 고민하더니 386 개미의 집회가 해산한다면 바로 개미경비대를 철수시키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개미들의 투표를 하기 위해 다시 만나 협의하기로 했다. 


내가 준 첫 번째 비단주머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개미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주신 개미여왕님을 베짱이 저는 지지합니다. 개미여왕님의 지시에 반하여 지금 집회를 하고 있는 개미들은 중장년층 개미의 일부입니다. 개미여왕님께 충성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늙은 개미들이 중장년층 개미보다 많습니다. 그들을 잘 달래어 투표를 한다면 여왕님께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비단주머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쌓아놓은 식량을 일반 개미들에게 풀면서 개미여왕을 지지해 달라고 하십시오. 식량과 돈으로 해결 안 되는 문제는 없습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비단주머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개돌이를 활용하십시오. 개돌이는 머리가 아주 좋은 개미이며 여왕님께 충성하는 개미입니다. 개돌이를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개돌이에게 개미여왕님의 정책방향과 지침을 내리십시오. 개돌이가 정치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잘생기고 말 잘하는 개돌이는 반드시 투표를 여왕님의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9화 끝! 다음화에 계속~


이너바스 이실장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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