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째, 마지막까지 버텨야만 해
개인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분 좋게 조식을 먹으러 나섰다.
적절한 염도의,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훈제 연어 맛.
그래, 이 맛이었어.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아속역 근처 '만짜이 마사지'로 향했다.
직접 방문해 결제할 수도 있지만,
‘몽키트래블’ 어플로 예약하면 프로모션 적용으로 더 저렴했다.
(환율 감안해도!)
나는 현장에서 어플로 결제했는데,
한국인 사장님께서 직접 전화까지 해주시며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90분의 마사지를 마치고 나오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잠시 그치길 기다렸고,
비가 잠시 잦아든 틈을 타,
현금이 없던 나는 ATM을 찾아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ATM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 찰나— 쏴아아, 또다시 폭우.
우산도 없고, 도망갈 틈도 없이 그대로 들이 맞았다.
급히 그랩을 불렀지만, 예상 대기 시간은 25분.
이 빗속을 뚫고 오토바이 택시를 타는 용자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럴 용기는 없었다.
비 때문인지 GPS는 자꾸 엉뚱한 방향을 가리켰고,
앱에는 도착했다고 뜨는데 정작 차는 안 보였다.
똑같은 골목을 몇 번이고 돌며, '설마 이쪽?' 싶은 곳을 따라 뛰어도 보고,
맞은편 건물 앞에서 비 맞으며 서성이기도 했다.
얼굴에 흐르는 게 빗물인지 땀인지 헷갈릴 즈음,
기사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거기 아니고 반대편이요!”
겨우 차를 찾았을 땐, 온몸이 이미 다 젖어 있었다.
25분 넘게 도로 위에서 방황한 끝이었다.
택시에 몸을 싣자마자 흘러나온 건 Jason Mraz의 I Won’t Give Up.
빗물과 피로, 그리고 이 도시의 소음까지도 잠시 잊게 만드는 노래였다.
호텔 도착.
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방콕에서 만난 동생들과의 마지막 약속.
스테이크를 먹고, 재즈 바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급하게 준비를 하는데—
몸이 이상하다.
얼굴이 화끈화끈, 열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어쩌나.
약속은 약속이니까.
'안드레' 레스토랑 도착.
어색함도 잠시,
맛있는 음식 앞에 눈 돌아가고,
좋았던 장소 서로 공유하고.
스테이크, 양갈비, 참치 타다키, 와인까지.
접시는 늘어가고, 대화도 어느새 깊어졌다.
혼자였으면 지나쳤을 메뉴들을 함께 나누며,
입도 마음도 알차게 채워지는 느낌.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동생들이 특이하게 생긴 코코넛 껍데기 커피를 마시는 걸 보며,
우리는 한참 웃었다.
재즈바로 이동하려 택시를 부르는데,
동생 2가 자신 있게 문을 열고 앞자리에 타려 했다.
근데— 어라? 거긴 운전석 아니야?
방콕은 운전석이 오른쪽이잖아!
갑자기 웬 한국인이 운전석 문을 열어버리니,
운전자는 멍, 동생 2도 멍.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빵 터졌고,
차 안 공기는 순식간에 웃음과 민망함으로 가득 찼다.
정말 얼마나 웃었는지를 모른다.
“아, 여긴 오른쪽이 운전석이지…”
그렇게 하나의 명장면을 추가하며
도착한 'Buddha & Pals' 재즈바.
금요일, 토요일엔 1인당 1200바트 이상 주문해야 하지만,
칵테일 두세 잔이면 충분히 넘기는 금액.
분위기와 라이브 퀄리티를 생각하면, 이건 거의 특권이다.
무대 오른쪽 테이블에 앉았다.
세션 맞추는 피아노, 색소폰, 트럼펫, 드럼, 그리고 보컬 언니.
전문가다운 카리스마.
분위기에 압도당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칵테일 한 모금, 두 모금.
공연을 즐기며 완전히 녹아들었다.
하지만 2부가 끝날 무렵부터 몸이 으슬으슬.
장은 꼬르륵꼬르륵.
에어컨 탓인가 싶었지만, 이상하게 쎄한 기운.
그래도 둔감한 나는 3부 초반까지 버텼다.
공연이 끝나고, 비는 그쳤다.
오토바이 택시에 올라 미지근한 바람을 맞는데—
이상하다.
피부에 닿는 바람이 날카롭다.
큰일 났다는 직감.
이렇게까지 무딜 수가 있을까?
숙소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녹였고,
그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 밤의 한기가 단순한 냉방병이 아니었단 걸,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