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제가 바로 그 철부지예요.

괜찮아요. 계속 성장할 겁니다.

by 홍고롱


초등학교 시절, 나는 애늙은이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엄마, 아빠는 대부분 집에 없었고,
나는 친척 집이나 친구 집에 맡겨지는 일이 많았다.

외동딸이었지만 혼자 자란 느낌이 들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중학교까지 조용하던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서며 엄마의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고1병이라 해야 할까? 아니지, 지금까지 그러고 있으니,

그냥 평생 청개구리라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다.

시골에서 자란 만큼, 내 대학의 조건은 단 하나.

학교 앞이 번화가여야 한다는 것.


운 좋게도 꿈을 이뤘고,

대학 1학년 때는 9시 수업에 출석한 기억이 거의 없다.

학식도 학교 다니는 내내 10번 정도? 먹은 것 같다.

'더 즐겁고 재밌게 즐겨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다.

그때는 친구들도 나를 막지 못했다. 왜 저러는 걸까 싶은 친구.


그러다 교양 수업으로 프랑스어를 들었고,

소피 마르소를 닮은 교수님의 우아한 발음에 반해 불어불문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주위에 '프랑스, 프랑스'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결국, 2013년 2월 프랑스 리옹으로 향했다.

사촌 언니는 미국도 아니고 왜 하필 프랑스냐며,

영어라도 해야 취업할 수 있지 않겠냐고 고개를 저었지만

나는 그냥 귀를 막고 앞으로 나아갔다.


1년 정도의 시간들. 가자마자 왜 왔나 하는 절망이 앞섰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살만해지자, 이 삶을 또 어떻게 놓냐며 슬퍼했다.


한국에 돌아오면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저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 성향상, 책상에 붙어 공부해 합격할 스타일도 아니었고,

기업의 수직적인 문화에 도태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대기업이나 공무원은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그나마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일할 수 있는 회사나,
내 방식만 잘 만들면 오래 도움이 되는 교육 쪽 일을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사람을 좋아했기에 서비스업도 그리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결국엔 나를 옥죄는 느낌이었다.

"평생 이 일만 하며 살 수 있을까?"

"놉, 절대요! 네버"

나는 그렇게 하나로 규정짓기에는 너무도 난해한 사람이었다.


결혼은 또 어떤가.

30대 중반이 되니 이미 ‘노산’이란 말을 듣는다.

생물학적으로 맞는 이야기겠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없이 조급해지고, 작아졌다.


이모는 내게 말도 안 하고 결혼정보회사 상담을 다녀오고,
엄마는 나가서 사람 좀 만나보라며 닦달하더니,
어디 소개라도 받으면 또 이상한 사람일까 봐 전전긍긍.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이미 결혼했고,
육아에 한창이거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주위에선 결혼 안 하냐는 끊임없는 질문.

어느샌가 ‘이제 누구라도 붙잡고 가야 하나’는

압박감과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그런데 또 소개팅을 나가면, 둘이서 눈치 싸움이 한창이다.
‘나는 나를 얼마나 지킬 수 있을까’
‘상대는 나를 어디까지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그 사이, 나는 또 갈 길을 잃었다.



그래서 나는 희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큰 마음먹고 '퇴사'버튼을 눌렀다.

물론 결혼을 생각한다면, 퇴사는 치명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나 혼자서도 잘 사는 것부터 터득하는 게 가장 빠르게 삶을 안정시키는 방법이었다.


지금 안정적이냐고?

아니, 전혀 아니다.


엄마는 이번에도 그만둔 딸이 자영업이라도 해봐야 하냐며, 별안간 평택행을 제안하고,

이모는 왜 일을 꾸준히 다니질 못하냐며 잔소리를 한다.

누구에게도 자랑스럽지 못한 '나'라는 존재가 여기 있다.



그래서 지금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전혀 아니다.


20대의 나를 떠올려 보면 뭔가를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바보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사실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일 수 있지만,

이제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리고 내 삶은 내가 정돈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같은 백수라도

아침엔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한 운동(조깅, 바레, 등산)

건강하게 세끼 챙겨 먹기.

주식 투자 공부( 체계적이진 않지만)

월, 수 금 연재를 위한 글쓰기.

독서모임 책 읽기(조르바는,, 참으로 쉬이 읽히지 않는다.)

집 정리와 우리 고양이들 돌보기.

그리고 사람 만나기.


이 모든 것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이번 주엔 콜드플레이 공연도 가야 하고

다담 주면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싣을 예정이다.




사람들이 판단하는 잣대로 나를 평가한다면,

나는 정말 답이 없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을 그들이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프랑스에서의 느려터진 인터넷 덕분에 여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철부지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혼자 불태웠던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녹아들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조급해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정말 너무 좋다.

눈 뜨면 할 일이 천지이지만, 이렇게 시간을 쪼개어 살아본 적이 없다.



도전하고 부딪히고,
몸으로 터득하며 사는 삶.

나는 그걸, 죽을 때까지 놓치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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