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불안을 껴안은 나의 얼굴
10대 패기가 넘쳐났던 나는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외교관을 꿈꾸면 될 줄 알았고,
평생 늙지 않을 거라 믿었으며,
짧고 굵게 살고 싶다는 말을 멋진 철학처럼 늘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스쳤다.
과학자들은 평생을 바쳐 이론 하나에 몰두하는데,
만약 그 전제부터 틀렸다면 그들의 삶은 무슨 의미일까?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자 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해 그는 인생을 바친 거냐며.
그 이후로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두려웠다.
내가 가는 길이 틀린 길이라면 어떡하지?
이루지 못할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도전을 멈추지는 않았다.
'용두사미가 되면 어떠하리, 일단 시작하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의 마음가짐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이방인 (étranger)'이다.
여행을 가면 특히 그 감정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는 새로운 환경에 처해진다.
말 그대로 '리셋'이다.
이 감정의 최대 장점은, 내가 어디에서 어떤 말과 행동으로 평판을 받아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낯선 환경으로 점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에서 이미지가 안 좋으면, 동아리로 가면 되고, 그것도 안되면 직장으로 가면 되고,
부산에서 안되면 서울로 가면 되고, 것도 안되면 해외로 나가버리지 뭐.'
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세상 살기 얼마나 힘든데 이런 태도로 살아가나 싶지만,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데에만 치중한다면 세상이 그렇게까지 나를 내버려 두겠냐는 안일한 마음이랄까.)
세상 얼마나 좋은 합리화인지. 도피처를 셀 수가 없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는 내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말'로 잘 표현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나는 예상보다 더 조급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나마 글이라면, 계속해서 나를 가다듬어 내가 진짜로 추구하는 바를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글을 읽다가, 하나씩 하나씩 나의 이야기를 써보기 시작했다.
그는 재즈바를 하다 돌연 소설가로 입문해 상을 받았다고 하니,
‘그런 경험을 하면 글이 술술 써질까? 그래, 나도 그렇게 되자.’
(마음속엔 이미 성공스토리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그런데 웬걸 삶에 치중하다 보니, 글 쓸 시간이 어딨는지.
매일 피곤했고,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세끼 밥 해 먹을 시간도 없어 배달 음식으로 때우고,
일에 치이고, 시간에 떠밀리며
글은 자꾸만 뒷전이 됐다.
글쓰기에 집중할 줄 알았던 나는, 나를 너무 믿었다.
나태한 상태로
'역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였구나'라며 합리화를 했다.
그 사이 시간은 황망히도 흘렀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도 않은데,
왜 5년이라는 세월은 벌써 지나간 건지.
그걸 깨닫게 된 것도
퇴사하고 두 달쯤 지나서였다.
누군가는 그 시간 동안 차곡차곡 글을 써 왔고,
표현했고,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었을 텐데.
나는 참으로 바보였다.
글을 좋아하면 그냥 쓰면 되는 거였는데.
무언가 ‘있어 보이게’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더 잘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는 듯
나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
평생을 연구한 과학자가, 결국 그의 이론이 틀렸다고 해도.
그가 그 시간을 사랑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나를 살게 했는데,
나는 그 사실을 외면한 채
그저 흘려보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더 나은 나를 만난다.
지나간 시간을 되짚고,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갈 힘을 얻는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기쁘겠지만,
그걸 떠나서
답은 언제나 단순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를 써내려 간다.
가끔은 과거의 내가 부끄럽더라도,
그런 나도 안고 사랑한다 이야기해 주며
같이 걸어가야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불안아 나는 너도 좋아해(feat. 인사이드 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