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이관대
감기에 걸렸습니다. 사실 감기 기운은 꽤 오래전부터 느꼈습니다. ‘설마..’ 싶었는데 어젯밤, 잠을 설치면서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감기입니다. 요즘 한국에 감기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주변에 감기 걸린 친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요. 근데 왜 저는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왜 감기 기운을 처음 느꼈을 때 괜히 아닐 거라고 여겼을까요. 마스크도 잘 쓰고, 시시로 몸도 따뜻이 하고, 손도 더 깨끗이 씻을 걸 그랬습니다. 마음이 으슬으슬하네요.
얼마 전 한해를 톺아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부터의 일기를 찬찬히 훑어보았죠. “펄럭”, “펄럭”. 눈물로 울어버린 종이가 많더군요. 잉크도 따라 번져 운 하루가 많았고요. 이쯤에서 여러분께도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꿈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랑’(流浪)이라는 말이 제게 참 잘 어울린다고 말했던 것처럼 저는 학생 때부터 그저 정처 없이 흘러가며 자랐습니다. 대학교도 대학원도 공부를 하고 싶어 진학했지 그렇다 할 업을 위해 진학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빈손이 더 자유로운 거 아시나요? 저는 가진 게 없는 만큼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나라도 돌아다니고 학교도 돌아다니고 사람도 돌아다니고 책도 돌아다니고 말도 돌아다니고 감정도 돌아다니고 세월도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꿈이 없어 구체적인 꿈 빼고 모든 곳을 정처 없이 돌아다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언젠가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 있을 적인가요.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을 보여주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정처 없이 살아왔다고 여겼는데, 돌아보니 모두 특정한 하나로 맞물렸던 삶이었다는 게 그리도 특별했습니다. 그 뒤론 쌓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살아온 날이 만들어낸 꿈이니까 특별히 무엇을 않고 살아갈 뿐임에도 꿈이 점차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죠. 뭐 보이는 꿈을 어떻게 실현해야 할 진 여전히 모르겠지만, 저도 모르게 꿈 쪽으로 움직이는 삶을 경험했으니 앞으로도 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없던 꿈이 생기고, 의도치 않던 꿈이 보이고, 이미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특별함을 느끼기엔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입니다. 서서히 종이가 울고 잉크가 번지는 하루하루의 날들이 말입니다. 꿈이 보이고, 꿈을 정하고, 꿈을 향해 가자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긴 겨울이 시작됐습니다. 닿고 싶은 곳이 생기니 조급해졌습니다. 닿지 않은 지금이 불안해졌습니다. 닿고 싶은 곳이 너무 아득해 괴로워졌습니다. 과정이라는 것을 단연 염두에 두어도 겨울은 생각보다 길고, 어둠은 짙고, 추위는 셌습니다. 마음 잡고 걸으면 진전이 있을 줄 알았는데, 꿈이 생겼다는 건 이룰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일 줄 알았는데, 살아온 날이 만들어낸 꿈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좀 특별할 줄 알았는데, 모두 아니었습니다. 물론 꿈꾸다 좌절하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듣습니다. 시도하다 무너지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현실에 끌려 하늘을 보지 못하는 이야기, 구조에 굴복하게 되는 이야기, 자동차에 꿈을 파는 이야기, 하나하나 타협하게 되는 이야기 등 모두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감기에 걸렸다는 이야기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듣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을까요. 왜 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왜 저는 특별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유독 검은 하늘이 따뜻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고요한 겨울밤, 돌연 제 발끝에 붙은 그림자가 부드러우면서도 거칠게 속삭였습니다. “내가 뭐관대..”
네. 왜 저는 제가 뭐라고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요. 제가 뭐라고 저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요. 제가 뭐라고 남들이 겪는 고통을 저는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을까요. 제가 뭐라고 저는 아픔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요. 제가 뭐라고 저는 이 지난한 과정에 놓이지 않으리라 생각했을까요. 제가 뭐라고 제 삶엔 긴 겨울이 없으리라 생각했을까요. 제가 뭐라고 저는 감기에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을까요. 제가 뭐라고 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제가 뭐라고요. 제가 뭐라고요. 대체, 대체, 대체 제가 뭐라고요.
“저는 괜히 힘쓰지 않아요. 저 하나 목소리 낸다고 바뀔 거 같지도 않은데요.” 친구의 말이 맞습니다. 저 역시 힘써 돌을 던졌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던 경험이 이미 수없이 많습니다. 정말 실속 없이 힘을 썼었죠. 잃은 게 무수히 많았고요. 그래서 친구의 말에 그저 웃었습니다. 끄덕이며 웃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내가 뭐관대..’ ‘내가 뭐관대..’
감기에 좋을 거 같아 주문한 달콤 쌉싸름한 유자생강차가 나왔습니다. 달콤하면서도 쓴 게 꼭 꿈과 저 같았습니다. 언젠가 저명한 교수님이 TV에 나와 인류가 짊어진 문제를 이야기하며 감정이 고양된 억양으로 말을 하더군요. “왜 ‘나 하나쯤이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밀어내세요? ‘나도 함께 해야지’라는 말로 나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들여와야죠!” ......... “내가 뭐관대..” 괜히 이 둘이 머릿속에서 충돌합니다. 제가 꼭 꿈을 이루리라는 법이 있습니까?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 제겐 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습니까? 왜죠? 제가 뭐라고요. 왜 저는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하지만 또 반대로 저라고 꿈을 이루지 못하리라는 법이 있습니까? 저라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또 어디 있습니까? 저라고 특별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대체 어디 있습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겁니다. 당최 어느 것도 알 수 없지만, 그중에 확실한 것은 미래는 고정되어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미래는 죽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려지는 미래는 달라집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살아있다’는 징표입니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해야 하고, 선택은 곧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줍니다. 인간은 되어가는 존재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살아 있는 인간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에 개방된 존재입니다. 죽음은 변화 불가능이지만, 삶은 변화 가능성입니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희망인지 절망인지, 쓴맛인지 단맛인지, 이도 모르고 저도 모르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한 우리를 창조해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변화해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선택해야 하는 존재고, 우리 스스로를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입니다. 지금 모두가 그 운명을 짊어진 살아 있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내가 뭐관대.. 내가 뭐관대..” 2025년을 이틀 남긴 시점,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창조하실 겁니까? 모르겠어서 묻는 질문입니다. 꿈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살아 있음은 희망이 될까요, 절망이 될까요. 유자생강차는 단맛일까요, 쓴맛일까요. “내가 뭐관대.. 내가 뭐관대..” 변할 수 있음, 곧 살아 있음의 가능성을 가진 작은 존재가 큰 세상 앞에 서 있습니다. 저는 달면서도 쓴 유자생강차를 입에 한껏 머금은 채로 묻습니다. “내가 뭐관대.. 내가 뭐관대..” 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저는 저를 어떤 존재로 창조해 나갈까요. 감기에 걸릴 줄 몰랐던 제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적잖이 놀랐고, 놀란만큼 마음이 으슬으슬합니다.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다.”(전5:7)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 그러니 산다는 것이 다 덧없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얽힌 일들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이다.”(전2:11, 17)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전6:12)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약4:14-15)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주님께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시8:4-5)
“주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생각하여 주십니까? 인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하여 주십니까? 사람은 한낱 숨결과 같고, 그의 일생은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습니다.”(시144:3-4)
***大道泛兮 其可左右.(대도범혜 기가좌우)(老子, 道德經 34)(노자, 도덕경 제34장)
“큰 도는 만물을 덮지만, 어느 것 하나 특별히 편애하지 않는다.”
以於天地之間,猶一葦之所漂(이어 천지지간, 유일 위지소표)
“우주(천지)에 비하면 인간은 갈대 한 줄기 떠다니는 것에 불과하다.”
人皆可以爲堯舜.(인개이기가이 위 요순)(孟子, 告子下)(맹자, 고자하)
“사람은 누구나 요, 순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
: 인간은 누구나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적 위대성을 가진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