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
공허는 나의 삶을 지배해 왔다.
어떤 것도 큰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이는 해본 적이 없는 것과도 관련이 된다.
나만 그런 건 아니지만, 살면서 많은 기회를 갖지 못했다.
대신 꼭 해야 하는 건 다 했다.
정규교육과정을 다 거쳤고, 군대도 다녀왔다.
결혼도 식장에서 했다.
먹고 살기 위한 일도, 비록 정규직은 아니지만
작가들이 하는 짓을 하며 돈을 벌었다.
공모전에 도전하고, 낙방하고.
제일 힘들었던 일은,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는 것이었다.
난 정말 학교가 싫었다.
무엇을 배우는 지, 왜 배우는지 전혀 이해를 못했다.
안 맞으려고, 안 혼나려고
책을 보고 외웠다.
대충 그렇게 하면, 무관심군에 속할 수 있어 조금 안전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많은 황금같은 시절을 낭비했다.
정말 정말 용기가 있거나
정말 정말 용기를 가르쳐 준 이가 있다면
난 자퇴를 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난 없었다.
물론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 6년동안
자퇴한 학생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다만 선생한테 책상을 집어 던져
퇴학당했다는 애를 멀찍히서 본 기억은 있다.
그 애가 학교근처를 배회한 건 아마도 다시 학교에 오고 싶어서 였을 테니
나의 경우와 맞지 않다.
지금도 난 내 삶에 공허를 느낀다.
난 공식적으로 이 나라와 이 사회에 무의미하다.
세금을 내고, 소비를 하지만, 이런 글을 쓰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나를 대신할 사람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다니기 싫은 학교를 다녔듯
그렇게 숨쉬기를 지속하고 있다.
난 왜 살까?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든 게 후회와 공허로 가득하다.
이제 작가로 성공한 듯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들보다 20년은 뒤졌는데.
그러다 상담치료를 받게 됐다.
이런 저런 얘기를 몇 주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한다.
난 누구지?
내가 없다.
내 감정은 있는데,
내 생각은 없다.
끝임없이 어떤 가치와 기준을 주입받는다.
난 따라하거나 흉내낸다.
그 짓을 6년 내내, 아니 더 오래 했는데.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공허, 무의미, 따분함.
이건 다 나의 것이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나의 기준이 아니다.
난 이걸 원한 적이 없다.
세상의 기준에서 나를 봤다.
그럼 남는 건 공허밖에 없다.
어차피 영원한 내 것은 없으니까.
무슨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나에게 의미있으면 된다.
싸구려 음식을 먹어도
그게 나를 배부르게 해주면 된다.
싸구려 옷을 입어도
그게 나의 몸을 가릴 수 있으면 된다.
싸구려 차를 타도
그게 나를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면 된다.
나의 초라한 거처가
나의 몸을 쉴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모든 행동은, 오직 내가 기준이 되야 한다.
정말 후진 회사를 다녀도, 나에게 월급을 주면 된다.
더 받고 싶으면, 더 주는 회사로 가면 된다.
사장님, 동료, 가족은 공허만 안겨줄 것이다.
싸구려라고
쪽팔리거나 창피해 할 필요는 없다.
오직 나에게 의미있으면 된다.
세상의 기준을 나에게 맞춰야 한다.
이게 옳다는 게 아니라.
그래야 공허를 마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나의 경우다.
한때 노라고 말하는 일본이란 책이 인기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란 책도 있다. 이런 저런 책이 잇다
그건 저자의 입장이다. 그러니 혼자 노라고 하고, 혼자 청춘타령 하면 된다. 속지 마라. 저자들을 봐라.
대기업 회장님과 명문대 교수님이다. 그들이 노라하고, 아프다 지껄이는 건. 지들 사정이다. 당신이 아니다. 마치 회장님이라도 된 마냥, 서울대 교수라도 된 마냥 착각하면 안 된다. 그런 책은 빌려 읽고 그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
애국? 요즘 국민타령하는 사람이 많다.
본인은 수백억씩 쟁겨놓으면서. 없는 사람 25만원이 큰 돈이라 투덜댄다.
수십억 자산가를 위해 기꺼이 영치금을 채워주는 사람도 있다.
머리가 나쁜 것도 축복이다.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이 나라를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