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장통을 듣는 법
퇴근길, 언제나처럼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학교 어땠어?”
“괜찮았어.”
평소보다 짧은 대답, 그리고 조금 힘 빠진 목소리.
엄마의 귀는 아이의 마음결을 먼저 듣는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별일 없었어.”
하지만 ‘별일 없었어’라는 말 속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숨어 있다.
자연스레 물었다.
“혹시 누가 속상하게 했어?”
“음... 체육시간에 티볼 연습을 하는데, 남자 아이가 갑자기 내 옆으로 훅 들어오는 바람에 내가 충분히 잡을수 있는 공이었는데, 공을 놓쳐버렸어.”
그 말로 대화는 끝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목소리 끝에 묻은 작은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금세 잊었을 딸이, 오늘은 달랐다.
“그래서 그 일 때문에 속상했구나?”
“아니, 뭐... 그건 그렇고...”
딸은 잠시 멈추더니, 조용히 덧붙였다.
“사실은 친구랑 카톡 하다가 조금 기분이 상했어.”
그제야 실마리가 풀렸다.
남자아이의 일은 겉이었고, 딸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여자친구와의 대화가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 뒤에는 언제나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여러 겹의 결을 가지고 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게 성장통이구나.’
이제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의 문턱이다.
말 한마디에 울고, 표정 하나에도 서운해지는 나이. 앞으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며 친구와 부딪히고, 상처받고, 다시 화해하며 조금씩 자라겠지.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통과의례다.
“엄마는 항상 알아채잖아. 내가 괜찮다고 해도.”
그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아이의 하루 속엔 작은 상처와 배움이 공존한다.
부모의 역할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대화의 동반자’다.
아이의 문제를 대신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스스로 길을 찾을 때까지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일이다. 성장통은 아이의 몫이지만, 그 손을 잡아주는 건 부모의 몫이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팀원들이 일 이야기를 꺼낼 때, 처음엔 늘 겉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업무가 너무 많아요.” “시간이 부족했어요.”
하지만 조금 더 묻고 기다리면 진짜 이유가 나온다.
“우선순위를 몰라서 헤맸어요.”
“자신이 없어서 미루게 됐어요.”
문제의 본질은 언제나 ‘두 번째 말’ 뒤에 숨어 있다.
대화의 기술은 결국 기다림의 예술이다.
듣는다는 건 침묵으로 함께하는 일이다.
조언을 서두르지 않고, 판단을 멈추고, 상대가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고요히 귀 기울이는 것. 이건 부모에게도, 리더에게도 똑같이 필요한 태도다.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이렇게 말했다.
“공감이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을 떠받치는 감정에 연결되는 것이다.”
(Empathy is not connecting to an experience, it’s connecting to the emotions that underpin an experience.)
아이의 하루든, 팀원의 보고든, 사람 사이의 대화든 진짜 이야기는 늘 두 번째 말 속에 있다.
오늘도 ‘듣는 엄마’, 그리고 ‘듣는 리더’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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