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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Jun 04. 2024

무대일가

제 1 부   1

제1부

1  


 


  한상현이 죽자, 장남 한동섭은 아버지의 눈을 감겨 드리는 것으로 초종을 시작했다. 전주댁은 시아버지의 윗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북쪽을 향해 시아버지의 이름을 세 번 불렀다.


  “한상현, 한상현, 한상현!”  


  전주댁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한 번 육체를 떠난 영혼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주댁이 남편 한동섭을 향해 눈짓을 하며 곡을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이것을 신호로 가족들은 그다지 슬픈 기색이 없이 입으로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음 날 대영면 각지의 사람들이 문상을 오고, 키가 작고 앞머리가 벗겨진 호상, 서당선생이 고인의 명정을 만들었다. 소렴, 대렴을 마친 시신을 관에 넣은 후에 상복을 갖추어 입은 상주들은 성복례를 지냈다. 묘지 조성을 하러 나갔다 들어온 사람들은 상두계원들이었다.


  1978년 9월 14일이었다. 새파랗고 고요한 하늘에 흰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화창한 가을, 전라북도 남원과 경상남도 함양의 접경 마을인 월암의 한 슬레이트집에서 한상현의 장례가 시작되었다. 조우조(朝于祖)가 끝나자, 영좌 앞에 상이 놓였다. 집례가 상에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었다.  


  “영원히 떠나시는 예를 행하겠나이다. 혼령께오서 오래 머무실 수 없으시기에 이제 구차(柩車)에 받들어 모시고자 하나이다.”  


  곧이어 상주들의 곡이 이어졌다. 그 중 한상현의 둘째아들 한동규의 것이 유독 크고 구슬픔을 띠고 있었다. 이것이 전주댁에게는 응어리진 감정의 발산처럼 느껴졌다. 한동규는 버림받은 자식으로 오랫동안 객지를 전전해왔다. 어느 곳에도 의지할 곳 없었던 어린애가 그렸을 사랑이나 원망, 슬픔. 이것들이 하루아침에 당사자를 잃고 허덕이고 있었다. 한동규에 비하면 남편 한동섭의 곡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는 무감각하게 입 주변의 근육만 움직여 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평소 아내나 자식들을 향해 내지르는 커다란 목소리에 비하면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곡이 끝날 시점이 되어도 한동규는 멈추지 않았다. 이 놈이 정말, 한동섭은 막내 동생의 지나친 울음에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껏 그는 양반의 자손답게 과도한 감정 표출은 좋지 않다고 여겨왔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행동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늘 자신이 앞장서서 들로 나가는 대신 아내를 들볶아댔다.


  관을 상여에 싣기 위해 운구꾼들이 고인이 모셔진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비닐로 덮고 새끼줄로 얽어놓은 목관 아래로 광목을 집어넣었다. 그들은 양쪽에서 힘겹게 관을 들었다. 상두계원 김판수는 앞서 나가며 도끼로 문지방을 살짝 찍었다.


  관을 든 운구꾼 여섯 사람이 마루로 걸어 나왔다. 관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시체가 부패하면서 나온 붉은 물이 비닐에 갇혀 출렁거렸다. 동네 사람들은 못 볼 것을 보았을 때처럼 급히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운구꾼들은 홍동수가 댓돌 위에 놓아둔 바가지를 관의 앞부분으로 깨고 토방으로 내려섰다. 그 때였다. 누런 삼베로 지은 상복과 건을 쓴 한동규가 앞을 가로막더니 관을 부둥켜안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버님, 아버님!”  


  한동규는 또 한 번 크게 울부짖더니, 고개를 들어 운구꾼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 관은 못 나갑니다, 못 가요! 절대 보낼 수 없어요.”  


  여섯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하고 서로 묻는 눈치였다. 한동규는 죽은 아버지의 혼이 부유하고 있을 허공을 향해 외쳤다.  


  “아버님, 저도 같이 갈랍니다. 평생 자식들 효도 한번 제대로 못 받아보고 이렇게 가시면 우리는 어찌 삽니까? 아버님, 아버님!”  


  동규의 눈에서 흥건한 눈물이 흘러 얼굴을 적셨다. 운구꾼들은 뚤방에 선 채 어찌할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당에 서서 관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동네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져 있다가 동규의 눈물을 보자, 얼마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으면 저럴까 추측하는 사람, 행동이 도를 넘친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 제각각이었다.   


  동규의 울부짖음이 맏형인 동섭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 그것은 애처로움을 느껴 위로해주고 싶은 나약한 초식동물의 것이 아니라 사자나 늑대의 울음소리였다. 당장이라고 자신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움켜쥘까 몸을 떨고 있던 동섭은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마침내 운구꾼들은 관을 동규에게 맡겨 버렸다.  


  “제기랄 마음대로 하게 둬.”


  운구꾼의 말에 소란을 피해 한쪽으로 물러나 있던 한상두가 앞으로 나아갔다. 한상두는 관에 엎드려 울고 있던 조카의 등을 탁탁 소리나게 두들겼다.


  “자, 자 그만하고 일어서야제. 이러다가는 오늘 상여도 못 나가겄다. 성님도 인자 가실 때가 되었은께 그만 일어나라.”  


  순간 관에 엎드려 있던 동규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눈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작은아부지가 왜 나서요, 나서기를! 나는 어디 자식도 아닌가요? 전 아부지가 죽어도 마음놓고 울지도 못해요? 그리고 작은아부지가 언제 우리한테 신경이나 써 봤어요? 아부지가 객지 나가서 어렵게 사실 때 한번 찾아라도 온 적 있어요?…… 도대체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나서서 지랄이요, 지랄이!”  


  동규에게 작은아버지는 목에 힘주고 간섭이나 하는 존재였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취해서는 안 될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그랬다. 한상두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동규를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앞에 선 마을 사람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뒤에 선 사람들은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한 눈빛이었다.  


  “뭐라고? 이 놈아! 왜 나한테 염병이여, 염병이!”  


  한상두는 두려움과 수치심에 턱을 덜거덕거렸고 공연히 발을 잘못 디뎌 발에 오물에 묻혔을 때처럼 억울하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한상두는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에헴, 하고 헛기침 소리를 내며 집밖으로 나가버렸다.


  “흐흐흐!”  


  동규는 억지 웃음소리를 짓더니 두 팔로 관을 얼싸안고 들려고 했다. 그러나 관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몇 배나 더 무게가 나간다는 것을 동규는 잠시 잊고 있었다. 관에서 흘러나온 물이 동규의 상복을 붉게 물들였다. 순간 마을 사람들이 기대해마지 않던 일이 터졌다. 관을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동규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맹수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그런 뒤 토방 아래 그릇을 말리기 위해 놓아 둔 평상을 들이 엎고, 나무를 깎아서 만든 절구통을 번쩍 들어서 십여 미터 거리에 있는 돼지우리를 향해 던져 버린다. 사람들은 그것이 윙, 하고 허공을 가르며 돼지를 가두고 있었던 문이 와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것을 보았다.  


  우리 안의 돼지는 꽥꽥 비명을 지르며 안을 몇 차례나 돌았다. 그러다가 우리를 뛰쳐나와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 속으로 돌진했다. 아낙네와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그런데 돼지도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놀랐는지 사람들을 피해 집 입구를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비수가 허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간담이 서늘해진 동섭은 돼지를 잡으러 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밖으로 나와버린다.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집안으로 들어올 작정이었다.   


  이제 끝난 걸까.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거의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던가, 까무러칠 정도로 박진감이 있었다는 등의 말을 토해낸다. 그러다가 문득 이 날의 주인공이 여전히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그들은 그 자리에서 화석이 되었다. 그들은 몸을 움직이지도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이 때 하얀 두루마기를 걸친 남자가 나타났다. 동섭의 매제인 박성기였다. 이제는 됐구나. 골목에서 동섭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박성기가 어디에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부엌에 있었을까, 도장방에 숨어 있었을까. 그 곳에서 동규와 약속한, 적당한 시점이 오기를 기다렸을까. 박성기는 동규 앞으로 걸어가더니 어깨를 툭 쳤다.


  “이 사람이 왜 이래!”


  동규는 누군지도 모르고 눈을 치켜뜨려다가 매형인 것을 알자 다소곳해진다. 순간 동섭은 두 사람 사이에 교환된 의미 있는 시선을 보았다. 둘은 사전에 약조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박성기는 한참 동안 쉰 목소리로 동규를 달랜다. 그 말은 동섭에게까지 들리지 않았다. 얼마 뒤 박성기는 처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완벽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그것을 보고 있던 동섭은 약간 처참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벌벌 떨고 피하던 동생을, 매제인 박성기는 한바탕 호통을 친 후 달래서 데리고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로서는 견딜 수 없다. 두 사람은 얼마나 자주 만났고, 또 무슨 말을 나누었을까. 아무튼 동섭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박성기가 자신이 할 수 없는 형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동쪽 길 위에서 가물가물해진다. 그제야 동섭은 집 안으로 기어들었다. 잠시 일을 중단했던 운구꾼들은 뚤방 위에 놓여 있던 관을 들어 상여 위에 얹었다. 그 위에 덮개와 종이꽃이 씌워지자, 상두꾼들은 상여를 들어 올렸다.  


  앞소리꾼이 매기는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상두꾼들의 뒷소리가 처량하지만 우렁차게 흘러나온다. 상여 앞쪽이 집을 향하여 세 차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간다. 그들이 고인 대신 이별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한상현과 이 집의 인연은 끝난 것이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화 어화 어너리 넝차 어-화


 


  상여는 머리를 돌려 집 입구를 향해 서서히 나가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 담 너머나 밤나무 아래에 있던 구경꾼들도 삼삼오오로 움직인다. 그들 사이에 노제를 어디서 지내는지 묻고 답하는 소리들이 오간다.  


  장례행렬의 맨 앞에는 검은 상의에 붉은 아래옷을 입고 왼손에 창을 오른손에 방패를 든 사람 크기의 좌 우 두 개의 방상씨, 붉은 바탕에 하얀 한자가 씌어진 명정, 상여를 줄여 놓은 듯한 영여, 만장, 그 다음에는 공포가 길게 늘어섰다. 이것들은 상여가 가는 앞길을 열기도, 누구의 장례 행렬인가를 나타내기도, 죽은 이를 슬퍼하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글이 씌어 있기도, 길이 좋고 나쁨을 알리는 신호기의 역할도 했다. 그 뒤를 상여, 상주와 복인들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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