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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Jun 18. 2024

무대일가 3

  제1부  3

                            3     


  한 시간가량 걸은 동섭 내외는 구영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동섭의 장인, 고 이명진 처사의 제사 때문이다. 두 사람은 잠시 쉬기 위해 정자나무 아래에 가서 앉았다. 동섭은 느티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느티나무는 밑동 반지름이 이 미터도 넘는 거대한 고령의 나무로, 대영면에서 견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수백 년 수령의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매년 싹을 내고 잎을 드리우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썩은 고목처럼 보이는 나무에 어떻게 수액이 흐르며 맨 꼭대기 가지까지 물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문득 동섭은 이것이 인간의 가계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씨 가계는 오백 년이 넘었다. 아직까지 요행히 싹을 틔우고 잎을 내밀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고목이 되어 쓰러질지도 몰랐다. 그때도 이 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처럼 굳게 버티어 서서 지나는 사람들이나 동물들, 나무에 앉아 조잘대는 새들을 보고 있겠지. 

  “그만 가요!”

  전주댁의 말에 동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일제시대 지어진 후부터 그때까지 면사무소 건물로 사용되는 목조건물의 담을 따라 걸었다. 구(舊) 면장 집은 그 담이 끝나는 길 건너부터다. 동섭은 이끼가 낀 수십 개의 돌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오랫동안 신실한 면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주씨의 집 뒤편이 바로 처갓집이었다. 

돌계단을 다 오르자, 눈앞에 세 갈래 길이 나타났다. 정면에 보이는 계단을 그대로 올라가면 박 부잣집이고, 오른편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고랑의 서지영이 사는 집, 왼쪽으로 틀어 주 면장집 뒷담을 따라 걸으면 바로 처갓집이었다. 

  전주댁은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 그보다 먼저 입구에 들어섰다. 

  “어머이!”

  대문도 없고 초인종도 없는 집에 들어서며 사람의 기척을 알리는 고래로부터의 방법이었다. 동섭도 입구를 통과했다. 순간 코를 찌르는 향기가 느껴졌다. 가만히 보니 입구에 서 있던 삼에서 풍겨 나오는 진한 향이었다. 비위가 상할 정도로 독한 냄새가 나서 동섭은 고개를 돌렸다. 

  “어머이!”

  마당에 발을 내딛으며, 전주댁이 다시 외쳤다. 전주댁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그녀의 둘째 언니인 장수댁이었다. 장수댁은 양동이를 손에 든 채 부엌에서 나오던 중이었다. 

  “아, 월암에서도 오네.” 

  장수댁은 두 사람을 보자 반가워했다. 동섭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점잖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다. 그가 생각해도 자신은 양반의 자손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에 별일 없으십니까?” 

  “예, 별고 없으시지요?”

  인사를 나눈 후 장수댁은 물을 긷기 위해 공동우물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다음으로 그들은 부지깽이를 들고 부엌에서 나온 부엉댁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주댁은 큰언니를 슬쩍 본다. 언제 보아도 큰 키에 듬직함을 지닌 부엉댁은 친정과 같은 마을에 살면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지만 어딘지 애처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데가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들면 눈은 자연 팔로 가게 된다. 한쪽 어깨가 축 처지고 한쪽 팔이 약간 비틀어진 채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애처로운 느낌을 주는 원인이 거기 있다. 부엉댁이 팔 하나를 쓰지 못하는 불구자가 된 것은 열 몇 살 무렵 몸에 열이 있었음에도 동네 의원에게 침을 맞힌 후부터였다. 그 때문에 그녀는 불행한 결혼을 했고 가엾은 여자가 되어 갔다. 혹쟁이 남편에게 시달림을 받고, 되바라지고 싸움을 일삼는 둘째 아들로 인해 가슴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방에서 나온 임춘복 여사가 마루에 앉아 마당에 선 그들을 보고 있다. 동섭이 늘 하는 생각이지만, 이 집안의 불행은 장모가 잃은 아들 넷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마흔이 넘어서 낳았다는 아들만 살아만 있었어도 장모는 양아들을 들이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고, 그가 함양을 오가며 내키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별일 없지요?”

  인사를 한 후 동섭은 자리에 앉아 장모와 몇 마디를 나누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넓은 들과 동면(東面)으로 흘러가는 개천이 내려다보이고, 물 건너 마을까지 보였다. 그 너머 산을 넘으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상상은 하지 않은 지 오래다. 이제 그는 외부세계나 사람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마당과 집 둘레에는 배나무, 탱자나무, 꽈리나무, 모과나무 등 갖가지 나무와 꽃이 들어 차 있다. 이것들은 죽은 장인이 가꾸어 놓은 것들이거나 인간에게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살던 부엉댁이 심어 놓은 것들이다. 그런데 임춘복 여사는 이런 것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 동섭과는 반대로 그녀는 인간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평생을 한 자리에 붙박여 살아야 하는 식물 대신 애정을 쏟을 대상으로 인간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녀는 평생 많은 일거리 속에 있었다. 아니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다. 그녀의 딸들은 모두 가난한 남자들과 결혼해서 자식을 제대로 먹이고 입힐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외손자들을 하나씩 둘씩 맡아서 기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수가 열둘에 이르렀다. 

  임춘복 여사가 동섭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동섭을 마음 좋은 호인으로만 여길 뿐 집 안을 힘 있게 이끌어 나가는 믿음직한 사람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동섭도 그걸 잘 알고 있다. 장모가 외손자들에게 아내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는 것에서도 드러났다. 어느 날인가 모르겠어. 들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아직 어린 옥자가 베틀에 혼자 앉아 베를 짜고 있더라니까. 이제는 죽고 없는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영특했던 옥자에게 학교를 쉬게 한 것은 정말 잘못된 결정이었어. 동섭은 생각했다. 아내가 내게 시집을 오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아내는 큰 저택에서, 농사꾼의 아내가 아니라 마님이 되어 하인들을 호령하는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장모가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 여자 팔자는 뒤웅박이라고 강조하는 것에 불과했다. 전주댁은 더 불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동섭은 검버섯이 얼굴 곳곳에 핀 쭈글쭈글한 피부의 장모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팔순이 가까워져 오고 있지만, 가장 많은 뇌세포가 살아 있고 그 활동이 강렬한 젊은 사람 못지않은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것이 때로 정확지 못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장모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 말이 전해오는 과정에서 생긴 착오나 말을 전하는 사람의 잘못된 판단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온 동네 사람들의 생일날, 제삿날을 모조리 꿰고 있었을 뿐 아니라 과거 어느 날 어느 때 누구네 집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었는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녀는 그날 저녁 누구네 집에서 제사떡을 가지고 올 것이라거나 어떤 집안들 사이에 얽힌 원한의 뿌리를 찾아낼 수도 있었다. 그녀의 말은 늘 틀림없었다. 예고한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제사떡을 머리에 인 여자가 장모의 집으로 왔고, 위에 말한 집안사람을 만나 슬며시 과거를 들춰보면 어김없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이 마을의 역사를 온몸으로 관통하고 있는 터줏대감인 셈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또렷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왜일까. 동섭은 늘 이 점을 생각해 보고 몇 가지 답을 찾았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그녀가 네 명의 자식을 차례차례 잃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네 명의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그녀는 쉽게 잠들 수도 어떤 일을 쉽게 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뒷문 벽에는 한 장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동섭의 장인이다. 키가 작고 깐깐한 장인의 볼은 야위어서 볼품이 없지만, 부드러운 활 모양의 입과 그다지 크지 않은 코와 이마가 빚어내는 조화로 인해 인자함이 엿보인다. 만약 장인이 전주댁의 말처럼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동섭의 집은 좀 더 부유해졌을지 모른다. 장인은 동섭과 전주댁이 객지를 돌며 상(床)장사를 해서 번 돈을 관리해 주는 정도가 아니라 매년 얼마씩 불려주었다. 하지만 장인이 오래 살았더라면 동섭이 먼저 장사를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동섭은 돈 버는 일에 재미를 느낀 적이 없고 타관을 떠돌며 상을 고치고 칠을 하기 시작한 지 몇 년 후 그 일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다.  

  동섭은 마당으로 가서 장작을 패고 나뭇짐을 한 바리 들여준 후 부엌에서 부치는 전을 가져다 술안주로 먹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마시고 싶으면 마실 수 있는 곳이 바로 처갓집이었다. 

  “장모님!”

  둘째 동서인 강종문이 두 아이를 데리고 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서는 부지런하고 일을 잘해서 곧잘 전주댁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일을 잘해서 곡식이나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좋았는데 먹고 마시는 데 늘 도를 넘어서 살림이 피어나지 않았다. 버는 족족 쓰는 사람에게 당할 것은 없는 것이다. 발그레하지만 잘생긴 동안(童顔)의 주인이 흘러내리는 코를 씩 소매로 훔치며 동섭에게 다가왔다. 

  “잘 지냈는가?”

  “성님은요?”

  두 사람은 악수한 후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았다. 동섭이 동서를 볼 때마다 신기하게 여기는 것은 하루 종일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섭은 종문과는 정말 달랐다. 동섭은 하루에 한 주전자의 물을 마셨다. 

  세 자매가 부엌에서 전을 부치고 떡 시루에 불을 때는 동안, 이종 간인 창수와 경수, 재문이와 재선이가 교대로 부엌을 들락거렸다.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들은 아무 때고 얻어먹을 수 없는 시루떡, 배추전, 생선전, 고구마전 같은 것을 먹기 위해,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부침판 위를 날아다니며 밀가루 반죽을 얹고 뒤집고 있는 전주댁의 손을 보고 있다. 

  전주댁이 누런 양푼에 전 몇 개를 담아 주자, 아이들이 와, 하는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나갔다. 그때 모퉁이에서 나뭇짐을 부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섭은 술을 먹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씨 집안에 양자로 들어온 광수였다.

  “뭐 하러 이런 날, 나무를 해온다고 그런 디야?” 

  임춘복 여사가 퍼뜩 방문을 열고 혀를 끌끌 찼다. 광수는 이제 스무 살로, 장인이 죽은 후 양자로 들어왔다. 광수가 양자로 들어오게 된 데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공공연한 비밀에 속하는 사항이지만, 고 이명진 처사는 죽으면서 광수를 양자로 들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광수가 어리석고 모자라서 집안을 이끌어 나갈 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갓집 옆 고랑에 살면서 이씨 집의 후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전주댁의 아재뻘인 서지영의 ‘광수는 분명 이씨 집 자손이 분명하다’는 주장에 장모는 구암의 먼 일가의 아들을 양자로 들이려는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지금 와서 임춘복 여사는 그때 서지영을 물리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광수는 착하고 순진하기는 하지만 고 이명진 처사의 유언대로 어딘가 멍하고 모자란 구석이 있었다. 하는 짓마다 여사의 기대에 못 미치고 어수룩해서 과연 이씨 집안을 이어 나갈지 의심을 들게 했다. 아니 그녀는 남편이 대를 잇기 위해서 딴 여자와 동침하여 낳아온 자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지 몰랐다.

  서지영의 주장으로 인해 광수가 이씨 집안의 양자로 들어와서 살게 열 살 때였다. 전에 쓰던 이름과 성을 버리고, 새로운 성과 이름을 취하는 일을 동섭이 해 주었다. 그만한 학문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맡게 된 역할이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는 함양의 호적에 올라 있는 박영호의 사망신고를 내고, 새로이 대영면의 호적에 이광수라는 이름을 올렸다. 

  광수는 양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듣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사립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지만 광수는 곧 여러 사람 속에 섞여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광수를 데리고 들어온 사람들은 동섭의 처이질인 노유성과 대성의 식구들이었다. 

  얼굴이 검고 피부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험상궂게 보이는 노유성은 남원에 있는 운수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미끈한 얼굴에 말상인 박대성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잠시 형에게 붙어 있었다. 

  “그동안 안녕들 하셨어요?”

  아이를 안은 유성의 처가 맨 뒤에 들어오면서 소란스럽게 인사를 한다. 그녀는 피부가 하얀 것보다 얽은 것이 먼저 눈에 띄는 여자였지만 동정심이 많았다. 시어머니인 부엉댁이 팔 하나를 쓰지 못하고 겪은 그간의 세월을 이해한다는 듯 주말마다 다니러 와서 집안청소를 한다, 빨래를 한다 법석을 떨었다. 그때마다 혹쟁이 남편에게 구박받으며 지냈던 부엉댁은 자기 눈을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눈을 비비며, 자신에게 과분해 보이는 며느리를 바라보곤 했다.

  유성과 대성이 술잔을 들고 동섭에게 온다. 동섭은 그들이 인사치레로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영수는요?”

  술을 따라준 대성이 갑자기 영수에 관해 물었다. 다 아는 일을 가지고 새삼스럽게 물어보는 것이 동섭은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하지만 나이도 어린 처이질에게 화를 낼 수 없어 안부를 묻고, 사기로 된 사발을 건네며 술을 권한다. 대성도 더 묻지 않았다. 

  술을 따라준 후 멍한 상태가 되어 동섭은 영수를 떠올린다. 문득 대성이 한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을 그는 깨닫는다. 이제부터는 장남인 영수와 함께 이런 자리에 올 수 없는 것은 물론,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에도 같이 있을 수 없다. 한두 번도 아닌, 평생 그럴 거라 싶어 동섭은 기분이 언짢아졌다. 잘 돌아가고 있던 세상이 뒤죽박죽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꼭 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좀 더 달리 산다는 것도 멋지다! 그럼에도 화가 남아 있다. 자식 하나 없는 셈 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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