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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Jul 02. 2024

무대일가 5

1부 - 5

                           5      

  월암에는 평야 지대보다 일찍 서리가 내리고 첫눈도 먼저 내렸다. 눈이 내리자 마을 동쪽에 있는 옥잠봉과 북쪽의 봉화산이 백발의 늙은이가 되어 있다. 

  가장 먼저 일어난 동섭은 밤새 식어버린 구들장을 데우기 위해 군불을 땠다. 그는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누구도 그가 혼자 있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밟고 가지 않는 고요함이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는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다. 너는 다른 사람을 해되게 한 일도 없고 욕심을 부린 일도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해악을 끼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은 너를 형편없는 인간으로 취급하고 그가 없는 곳에서 조롱하기도 한다. 하긴 너는 일을 잘하지도 못하고, 힘이 세지도 못하다. 네게 일을 하러 와 달라고 청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너는 소로 논을 갈 줄도 모르고, 못줄 앞에서는 늘 허둥대는 무능한 농사꾼이다. 그러니 아내의 불만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내는 되레 일꾼이라고 할 만하다. 몸동작이 빠르고 부지런하기 그지없다. 넌 부지런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아내의 요구대로 살아낼 수가 없다.


  전주댁이 일어나는 기척이 들리더니 따뜻해진 큰솥의 물로 밥 지을 준비를 한다. 이제 동섭은 가축들에게 달려간다. 아래채 돼지는 나무로 만든 우리에 갇혀 짚 검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인기척이 느껴지자 꿀꿀거리며 벌떡 일어난다. 그는 돼지에게 따뜻한 구정물과 겨를 먹인 후 헛간의 염소에게 달려간다. 염소는 아래채 헛간에서 쪼그려 자고 있다가 문이 삐그덕거리는 소리에 큰 눈을 동글동글 움직이며 동섭의 손에 들린 콩깍지를 보고 꼬리를 흔든다. 그것을 내밀자, 염소는 덥석 입에 물고 먹기 시작한다. 


  아침 일과가 끝났다. 동섭은 안방으로 들어와 필터 없는 담배를 피운다. 씁쓸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폐부로 흘러 들어온다. 그런데 거기에 기다리던 쾌감이 있다. 난 이렇게 형편없는 촌부로 생을 마칠 것이다! 

  밖에서 전주댁이 닭에게 모이를 던져주며 안을 향하여 잔소리를 해댔다. 잘 들리지 않지만 분명 방에 굴뚝이 하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여자들은 왜 그다지 실현 가능성 없는 잔소리를 하는 것일까. 화는 동섭의 내부에 가라앉아 그 전의 것 위에 쌓였다.


  둘째 창수가 가방을 든 채 마당에 서성거리고 있다. 겨울방학이 끝난 이틀째다. 창수는 동섭이 방에서 마루로 나와 양치질을 하는 내내 동섭을 힐끔거리며 살피고 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지만 동섭은 모르는 체했다. 그는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아 평소보다 열심히 양치질한다. 

  겨울이면 동섭은 방안에 치약을 두고 양치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차차 마루로, 수돗가로 나와 일을 끝마쳤다. 치약의 거품이 입안에 차올랐다. 동섭은 치약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역스럽지만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노력은 가끔 무위가 되는 수가 있었다. 누군가 말을 시켰을 때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려다가 치약을 삼키기도 하고 갑자기 기침이 나서 치약 거품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별 탈 없이 일을 끝낸다. 동섭은 양치질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루에서 샘으로 걸어갔다. 이때 창수가 옆으로 다가왔다. 

  “아부지(아버지)! 오늘 선생님이 방학 책값 갖고 오라고 했어요.”

  창수는 학교에서 표준말을 배우고는 있지만 여전히 남원지방 고유의 억양과 말투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의 화가 동섭의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동섭은 견딜 수 없어 소리를 내질렀다.

  “없어!!” 

  창수는 동섭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달랐다. 창수는 늘 제 어머니의 역성을 들었다. 아버지의 권위 따위는 도대체 인정하지 않고, 그의 말이 옳으니 그르니 대들고 따졌다. 그러다가 한 번은 동섭에게 군용 허리띠로 살점이 튀도록 맞은 일도 있다. 하지만 동섭이 그런 것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수에게 고함을 지른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창수는 간혹 그와 전주댁 사이를 매끄럽게 해주기도 했다. 단지 창수는 때를 잘못 고른 것이었다. 


  아버지의 호통에 창수는 찍소리 못하고 슬그머니 집 밖으로 나갔다. 동섭은 창수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화를 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때는 늦었다.

  며칠 전 일이 동섭에게 떠올랐다. 눈을 쓸어라, 하는 아내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삼 형제는 이불 속에서 꼼짝도 않고 구들막을 파고 누워 있었다. 보다 못한 동섭이 두 개의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래도 두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창수만이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매번 영수와 경수는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지만 창수는 늘 그렇지 못했다. 언젠가 전주댁은 이렇게 말했다.


  “창수는 안 하려고 해서 그렇지 일을 하려고만 하면 아주 잘해.”

  그것은 동섭이 생각해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아, 그놈들이 어제 우리들 모르게 왔다가 갔다네.” 

  전주댁이 흥분해서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마루로 올라서려다 넘어질 뻔했다.

  “누가 말이여?” 

  동섭은 불안해졌다. 전주댁은 그를 정지상태에 내버려둔 적이 거의 없었다. 끊임없이 그를 놀라게 하고 동요하게 했다. 

  “이놈들이 아주, 즈그가 지금 잘 산다고 우리 겉이 흙이나 파먹고 사는 인간은 사람으로도 안 보이는 갑제. 시커먼 자가용 타고 와서 지애비만 살짝 내리주고 가부리여? 집안 어른들은 찾아보도  않고…… 즈그가 언제부터 서울 사람이여?” 


  전주댁에게 평택 당숙네 아들, 한동열의 반지르르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이제 농사꾼이 아니었다. 아주 높은 곳에 앉아 있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 

  “그러먼 지금 당숙이 작은집에 와 있다는 말이여?” 

  “그래, 다른 사람 다 가는 군대를 안 가겄다고, 그놈이 군대 빼준다는 말만 믿고 홀딱 넘어가 가지고 쌀을 몇 가마이나 갖다주고, 등신도 그런 등신이 없어.” 

  그 일은 벌써 20년도 전의 일인데 전주댁은 생각날 때마다 끄집어냈다. 어느 해인가 동섭은 병역을 면하게 해 주겠다는 당숙의 아들, 동열의 말에 속아 쌀 두 가마를 갖다 바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그 혼자만 연루된 것이 아니었다. 갑장들을 비롯해 이십여 명의 대영면 사람들이 관계된 큰 사건이었다. 그때는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아무리 어두운 시절이라도 해도 쌀 두 가마니를 그토록 많은 사람이 내놓다니… 하긴 군대에 가지 않으려면 동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동네 사람들도 동향 사람이 감히 사기를 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동열이 서울로 떠난 직후 사람들은 병무청에서 각자의 이름으로 발송된 징집소집장을 받았다. 그리고 소집장 하단에 씌어 있던, 더 이상 징병을 기피 하다가 법적인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경고문을 보았고 자신들이 멋지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놈이 지금 서울에서 다방 허고 있는 거이 그때 그렇게 홀꾼 돈 가지고 시작을 헌 거 아이라. 근께 지금 와서는 동네에 발도 못 디디고 당숙만 내리주고 가제. 글고 당숙도 그놈이 돈을 잘 벌고 그런께 촌에 오먼 행세를 하는 것이고.” 

  억울하고 분한 일이 생겼을 때 전주댁은 혼자서 삭히기도, 앞집 임실댁에게 털어놓기도 했지만 간혹 동섭의 면전에서 무섭게 터트리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전주댁은 신세 한탄을 하며 서럽게 울기도 하고 쥐약 봉지를 꺼내 들고 함께 죽자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동섭은 가슴이 뜨끔해서 내가 또 뭘 잘못했나, 반문했다.

  그런 뒤 전주댁은 동섭의 무능함을 탓하고 불행한 신세를 탓하는 내용의 말을 퍼부어 댔다. 이럴 때 동섭이 취하는 태도는 오직 한 가지였다. 그런 투정이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이 남편의 미덕인 양 입을 꾹 다물고 대꾸 없이 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전주댁에게 불만이었다. 무엇이 쓰면 쓰다, 무엇이 달면 달다는 말을 제발 해달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다정다감한 위로를 주거나, 동정이 가득한 눈으로 애처롭게 바라보며 아픈 상처를 쓰다듬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섭은 전주댁이 원하는 것들을 해줄 수 없었다. 낯간지러운 일이기도 하고, 한 번도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몰랐다. 

  “왜 그렇게 해 주면 남자 근본 떨어져?”

  아내의 지청구에도 동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순간 동섭에게 다음에 이어질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이놈들, 두고 봐라, 네 놈들이 천년만년 배 두드리면서 잘사는가 보자, 라는 말이다. 그런데 전주댁은 그의 예상과 달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토방 위에 있던 함박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동섭도 부랴부랴 대문채에 세워져 있던 지게를 지고 따랐다. 작은집에서 순두부를 만들기로 되어 있었다.

  “어서 가요!”

  “응.” 


  두 사람은 집을 나와 골목길을 걸어갔다. 길 왼쪽에 앞집 아재네 블록 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에 공동우물로 사용하던 작은 공터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 쭈그려 앉아 있다. 노센네 집 막내딸로 집에서 쫓겨난 것이 틀림없다. 창수는 노센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창수는 전주댁에게 빗자루로 맞았다. 하지만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 아이는 몇 올 남지 않은 흰머리에 몸은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든, 피부에 살이라고는 없는 할머니에게 쫓겨난 것이다. 그 애는 집에서 내쫓기면서 할머니에게 온갖 욕을 다 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전주댁도 할머니가 욕하는 것을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 우연히 주위에 있다가 들어도 차마 들을 수 없는 지저분하고 섬뜩한 욕을 했다.

  “오살을 할 놈, 쫙쫙 찢어 죽일 놈.”

  사실 할머니가 한 욕에 비하면 전주댁이 한번씩 하는 욕은 욕도 아니었다. 전주댁은 썩을 놈, 잡놈, 망헐 놈이 고작이었다. 전주댁이 갑자기 핑, 하고 코를 풀었다. 


  작은집은 골목의 끝과 정자로 가는 넓은 길이 만나는, 마을 남쪽 끝에 있다.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이 작은집 앞을 흐르고 있고 그 위에 나무와 흙을 버무려 만든 위태한 작은 다리가 걸려 있다. 이 집에서 무지개댁은 남편 한상우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또다시 큰아들 영민을 서울로 보낸 후 막내아들 성민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한상우는 9년 전, 58세를 일기로 죽었다. 150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허연 수염을 늘어뜨리고 뒷짐을 진 작은아버지가 집 주위를 느릿느릿 걷고 있다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던 순간이 동섭에게 떠올랐다. 

  작은아버지가 동네로 나와 걸어 다니는 모습은 자주 보이지 않았다. 활기차게 말하거나 호탕하게 웃는 것을 그는 보지 못했다. 어쩌다 작은집에 들렀을 때도 그랬다. 탕약 달이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작은아버지는 매번 자리에 누워 있었다. 


  작은아버지가 일제 징용령에 따라 강제로 끌려가게 된 것은 동섭이 여덟 살 무렵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때의 일을 어렴풋이 밖에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인가 그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작은아버지는 조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었고 얼마 후에 마을에서 사라졌다. 그때 작은아버지는 징용을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조부를 뵈러 온 것이었다. 

  동섭이 들은 바에 의하면 1944년 무렵, 작은아버지(한상우)가 조선인 징용자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곳은 북해도 공지(空知)지청, 금정강(禁井江) 탄광이었다. 그곳에서 작은아버지는 징용으로 끌려온 노동자들을 위해 임시로 지어진 임시 건물에 수용되어 식사로 나오는 콩을 먹으며, 하루 서너 시간 잠을 자는 것을 빼고는 하루 종일 일했다. 남경대(南京袋)라는 얇은 여름옷을 입고 이부자리도 홑이불 같은 것을 덮었다. 작은아버지는 그해 여름부터 시작해서 다음 해 여름이 올 때까지 중노동을 하면서 많은 조선인이 영양실조와 과로로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곧바로 죽음으로 연결되었는데 그곳에는 그들을 치료해 줄 의사도, 간호해 줄 가족도 없었다. 다행히 작은아버지는 조국이 광복을 맞아 귀국할 때까지 잘 견뎠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형제들과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러다 몇 년 뒤, 한 번씩 무지개댁과 한상두 사이, 즉 수숙간(嫂叔間)에 말다툼이 한 번씩 벌어졌다. 

  “남편이 아주버님 대신에 징용을 갔다 왔으니 약속대로 전답을 내놓아야지요.”

  무지개댁이 고함을 지르자, 작은아버지는 냉정하게 말했다.

  “이미 약속한 전답을 주었는데 무슨 소리여!”

  “사람이 다 죽게 생겼는데 그럼 약도 한 첩 쓰지 말고 죽게 내버려두란 말이요?”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도 형제간에 징용에 대한 밀담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애초 면사무소에서 징용대상자로 결정을 내렸던 사람은 바로 한상두였다. 삼 형제 중 자신이 징용 대상자로 결정된 것이 한상두는 불만스러웠다. 사실 징용에 끌려가게 되면 죽어서 돌아오게 될지 살아서 오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한상두는 누군가가 대신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마음이 여리고 순한 동생 한상우를 대신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는 동생에게 징용을 가 있는 동안 가족들을 보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가진 논도 떼어 주겠다고 유혹했다. 한상우는 가족들이 배 불리는 아니지만 끼니를 거르지 않게 되고, 논이 생긴다는 형님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막내이기 때문에 밭 몇 뙈기밖에 물려받지 못한 한상우는 소작을 하고 있어서 일 년 내내 끼니를 때우기가 힘들었다. 가을이면 일제로부터 공출이 실시되었고, 농민들은 순사들에게 다음 해에 파종할 볍씨까지 빼앗기고 있었다. 다음 해 보릿고개도 걱정이었다. 보릿고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은 풀뿌리를 캐 먹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다 먹으며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몸이 부어 누렇게 떠서 죽어가던 시절이었다. 


  한상우는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형 대신 죽으러 가는 일은 그다지 슬픈 일이 아니었다. 그는 형을 잘 알고 있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해서 처자식을 둔 남자의 목숨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적어도 처자식이 끼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그곳이 생각처럼 지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를 변화시켰다. 


  마침내 한상우는 일본행을 결정하고 무지개댁에게 이 결심을 털어놓았다. 당연히 무지개댁은 남편이 사지로 가는 것에 반대했다. 아무리 못 먹고 못 살아서 굶어 죽어도 좋으니 제발 그런 생각을 그만두라고 말렸다. 하지만 한상우는 논이라는 말에 아주 잠시 동안 빛나던 아내의 눈동자를 본 후였고, 얼마 후 그는 형님 대신 징용을 떠났다.    

  “즈그가 우리헌테 해 되게 허고 잘 살지 알아? 언젠가 즈그도 그런 해를 당허게 되는 거여. 아니면 지 자식이 받는 것이고. 세상은 돌고 도는 건께 말이여.” 

  동섭은 제발 그만해 주었으면 하고 바랬지만 성깔이 있는 전주댁은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재작년 가실에는 왜 넘의 밭에 와서 몰래 호박을 따고 고추를 따 가지고 가? 우리가 피땀으로 지은 농산디…그런 농사를 지을라고 해 봐, 손이 몇십 번 몇백 번이 가고 얼매나 땀을 흘려야 되는디…….” 

  전주댁의 분노가 동섭의 가슴에까지 와 닿은 적은 거의 없었다. 여자의 그런 말은 아무래도 좋다! 그는 내내 그런 생각이었다.


  “내가 이녁 겉은 사람허고 이약을 허다니 참, 차라리 벼룽박허고 이약을 허제.”     

  어느새 두 사람은 작은집에 다다라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며 동섭은 온 집안에 배인 구수한 콩 냄새를 맡았고 부엌에서 김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동섭은 부엌문 앞으로 다가갔다.

  “작으메!”

  무지개댁이 부엌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깡마른 얼굴에 쪽을 진 머리카락 몇 가닥이 얼굴 위로 흘러내려 있다.

  “들어와, 인자 다른 집 꺼는 다 했은께.”


  동섭은 부엌 안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부엌 안은 뿌우연 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득한 열기 때문에 얼굴도 화끈거렸다. 어디에 맷돌이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궁이에 지펴 놓은 불이 불그스름하게 타오르고 있어 솥이 걸린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나무로 만든 기구로 맷돌을 돌리는 작은어머니의 모습, 아궁이에 지펴진 장작불과 그 위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는 솥. 바로 이것들이 두부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다. 


  무지개댁은 돌리던 맷돌을 멈추고 동섭에게 사발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금방 솥 속에서 퍼낸, 아직 응어리지지 않은, 뜨거운 국 같은 두부가 들어있다. 그것을 받은 동섭은 천천히 불어가며 마셨다. 신선한 콩 냄새가 진동해서 다 마셨을 때는 입안이나 목이 온통 콩으로 가득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인자 자네 꺼 할건께 콩 가지고 와!” 

  깡마른 몸집만큼이나 똑똑 부러지고 거친 목소리가 동섭의 귀를 울렸다. 전주댁의 쇳소리보다 더한 금속성이고, 약국집 옆 텃밭에서 자라는 작약의 냄새처럼 신경을 자극하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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