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산호 Jun 11. 2024

무대일가2

제1부    2

                            2                                  

  장례가 끝난 후 계원들은 동섭네 작은방 옆에 기둥을 세우고 짚과 새끼를 둘러쳐서 궤연을 꾸몄다. 전주댁은, 그녀의 이름은 이옥자이다, 이곳에 마련된 영좌 위에 마치 산 사람을 대하듯 조석으로 음식을 올려놓고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을 한다. 

  교의 위에는 한상현의 흑백사진과 흰 고무신, 안경 등 생전에 쓰던 물건이 놓였다. 이것들을 대할 때마다 동섭이 느끼는 것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금방이라도 되살아난 아버지가 자신을 어둠의 세계로 끌고 갈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생전에 홀대한 죄를 묻기 위해 저주를 내릴 것도 같았다. 이런 느낌은 사진을 볼 때 더욱 뚜렷해졌다. 눈은 영혼을 파먹을 것처럼 노려보는 듯하고, 입가에는 이승이나 저승에 속하지 않는 심술궂은 미소를 띤 것처럼 보였다. 


  동섭을 본받은 아이들은 더욱 유난을 떨었다. 영좌에 올려졌던 수저나 그릇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간혹 밥상에 그것들이 올라오면 기겁했다. 마치 그것들에 귀신의 혀가 붙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다. 한 번 죽은 자가 다시 돌아와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동섭은 몇 차례 그런 생각을 했다.

  며칠 뒤 동섭은 또 하나의 두려운 대상을 발견했다. 그것을 본 순간 그는 어두운 동굴에서 박쥐를 만났을 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감히 그것을 펴볼 용기를 갖지 못했다. 그것은 장남 영수의 책상에 놓여 있던 한 권의 책이다. 검은 비닐 표지가 입혀지고, 죽은 자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고 알고 있던 붉은 색 책갈피로 된 것이다. 정말 끔찍해. 악령이 붙어 있는 것 같아. 


  그날 저녁 그는 잠자리에서 전주댁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지금껏 그는 아내인 전주댁에게 자기 생각을 거의 숨김없이 말해왔다. 그녀만이 자신을 이해해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전주댁도 마치 자식의 얘기를 들어주는 양 동섭의 말에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

  “정말 이상한 책이야.”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전주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영수의 책상이 있는 도장방으로 달려간다. 

  “어디 있다고 그래?”

  동섭도 자리에서 일어나 도장방으로 갔다. 정말 없었다. 그가 두려움 속에서 보았던 책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그것이 바로 성경책이요, 성경책!” 

  전주댁이 큰 소리로 외친다. 그 책의 주인이 장남인 영수라는 것을 알게 된 동섭은 당황했다. 동섭은 장자였고 아버지도 장자였으며 할아버지도 장자였다. 장자는 제사를 물려받아야 하고, 가문을 이어갈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동섭은 누구에겐가 대부분의 장자가 무능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이 녀석도 나처럼 무능하고 겁이 많은 것일까, 어디엔가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것일까. 


  한 집안의 장자라는 것은 많은 것을 누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 미개척지를 탐험하는 외로운 존재였다. 이때 부모는 그다지 많은 도움이 될 수 없었다. 과거의 예절이나 윤리가 절대불변의 진리라도 되는 양 들려주거나 인간 세상의 처세를 알려줄 뿐 정말 자라는 자식에게 필요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말만 장남이었지 다른 형제들에 비해 부모에게 천대받았다.


  그렇게 자라 난 동섭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 해도 벅차했다. 그도 한때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고자 했었지만 모두 실패했고 이젠 농부로 늙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대범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쩔쩔맸다. 주위에 허다한 일꾼들처럼 일을 잘하거나 힘도 세지 못했다. 

  사실 그는 열심히 일을 해서 재산을 늘려갈 생각이 없었다. 도대체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전주댁으로부터 늘 왜 이렇게 욕심이 없느냐고 타박을 듣지만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왜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살지 못하냐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동섭이 조부로부터 배운 글은 현실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인간관계를 왜소하게 만들고 현실을 바라보는 창에 불투명한 유리를 끼워 놓았다. 한자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를 존경하는 사람도, 운에 맞춰 한시를 멋지게 지어도 칭송할 이도 없었다. 이미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사람들의 관심은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열심히 일하고 가난을 벗어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이 한 번씩 동섭에게 내면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 인생이 그에게 실어 오는 번뇌를 잊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잠시 일상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점에서 학문은 노래와 같았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전혀 다른 세상 속에 들어와서 세상을 해부해 보면 온갖 시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꿈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제사는 어떻게 한다지? 내 대로 끝나 버리게 되는 걸까, 아니면 둘째 아들이 이어받게 되는 걸까. 동섭은 장남으로서 천대받았기 때문에 지금껏 영수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애써왔다. 전주댁도 마찬가지였다. 전주댁도 자식들을 똑같이 대한다는 말을 곧잘 하면서도 어느 시기까지 영수를 우선으로 생각해 왔다. 


  장남의 뜻대로 예수 귀신을 섬기도록 놔둘 것이냐, 아니면 조상신을 섬기도록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을 것이냐, 만약에 끝까지 말을 듣지 않고 부모의 뜻을 거역하면 어찌할 것이냐 등에 대해 동섭은 고심했다. 사실 어느 귀신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어느 것이 더 영험할 리도 없었다. 그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영수에게 명할 수 없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는 지금까지 죽어서 자손들을 벌하거나 돌본다는 귀신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끼치는 해악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반면 전주댁은 약간 달랐다. 그녀는 생각보다 보수적이었고 전통이라는 것을 따졌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예수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지금껏 조상이 해 온 대로 살아가려고 했다. 제사를 지내고 다른 사람들의 입에 좋은 일로 오르내리기를 바랐다. 좋은 평판을 가지기를 바라고 자식들이 성공하기만 하면 가문을 빛내고, 자신도 호강할 시대가 올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전주댁은 장남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자고 했다. 

  “그렇게 안 허먼 저승에 가서 조상을 뵐 묀목이 없어.”

  그런데 그녀에게 비친 예수라는 귀신은 어느 악귀 이상으로 강하고 질긴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초반부터 다부지게 밀어붙이자고 했다. 동섭은 전주댁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현실에 대해 둔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지금껏 현실적인 아내 덕분에 살아올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세 끼를 해결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다음 날이었다. 전주댁은 학교에서 돌아온 영수를 큰방으로 조용히 불러들였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크게 긴장하지 말라는 듯 작고 나직한 목소리였다.

  “무릎 꿇고 앉을 것까지는 없어. 그냥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건께 말이여.”

  “예, 말씀하세요.” 

  그럼에도 영수는 자진해서 전주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니 ~ 이, 네가 교회 나가는 걸 누가 봤다고 해서 말인디 정말이냐?”

  “ …….” 

  영수의 눈빛에 당황함이 가득하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교회 다니는 것이 뭐 숭(흉)이나 되냐?” 

  전주댁의 목소리가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영수의 마음을 가라앉혀 진실을 말하게 하고, 또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되살려 마음을 돌리도록 하는 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 듯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영수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것이 전주댁에게 마치 신의 음성을 들으려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람은 땅을 쳐다보며 살아서는 안 된다, 하늘을 올려 보며 살아야 한다, 그 태도는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수가 아직 신을 만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영수는 무의식적으로 빨려들고 있을 뿐이었다. 영수는 눈을 뜬 후 어머니를 바라본 후 아이처럼 순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어머니를 놀라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교회 나가는 것이 부모님과 사이가 나빠지고 이 가문을 수렁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어머니가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으셨는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는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누구보다도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우리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발이지, 제가 주님께 가는 길을 막지 말아 주십시오.” 

  영수는 조금도 더듬거리지 않는다. 학교에서 웅변할 때처럼 유창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물기가 어려 있다. 전주댁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조금 전과는 달리 약간 흥분된 목소리다. 달래는 듯한 말투도 사라지고 없다. 그녀는 강압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수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영수의 몸 곳곳에 두려움이 깃들어 있다. 불안이 스며있는 큰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러다가 영수는 신에게 두 손을 꽉 잡음으로서 눈앞에 닥친 고난을 이겨내려고 한다. 영수는 교회에서 배운 가르침대로 무릎을 꿇고 사는 길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전주댁이 헛기침을 했다. 기침 소리가 들리자, 동섭은 밖으로 나간다. 그는 모퉁이에서 장작개비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갑작스럽게 발생할 일에 대비해서 문을 걸어 잠그며 그는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그는 전주댁을 본다. 전주댁은 그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다. 전주댁은 그가 들어오는 순간 생길지도 모를 영수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빳빳이 든 영수의 자세가 동섭의 눈에도 거슬린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런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 전주댁이 알고 있듯이 동섭은 아버지 앞에서 죽는시늉도 했다. 전주댁이 영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는지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들아, 내 아들아! 네가 언제부터 이런 몹쓸 병에 걸렸냐? 나는 다 알고 있다. 어느 못된 녀석이 순진하고 착하디착헌 너를 꼬드겼고, 너는 헐 수 없이 끌리 들어갔다는 걸 말이여. 근께 너는 아무런 죄도 없는 거여. 글고 니가 다시 착헌 아들로 돌아와 주기만 험사, 일가들한테도 이번 일을 안 알릴 거고 이 동네 사람들도 전혀 모르게 헐 거여…근께 이 일은 이 세상에서 우리찌리만 알고 묻어 두먼 표가 안 나는 일이여…내가 뭐 땜에 너헌테 이러는지 너도 나이가 들었은께 알아들을 꺼여…니가 다시 우리 집안의 장손으로 돌아와 주기만 헌다면 우리는 옛날겉이 오손도손 살 수 있지 않겄냐? 허지만 예수 귀신하고는 안 된다, 그건 절대로 안 되는 짓이여, 조상한테 누를 끼치고 죄를 짓는 일을 어찌 후손이 할 수 있다냐. 어쨌거나 마음을 돌리 묵어라. 그 귀신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 집보다 좋고 우리 식구보다 좋겄냐?” 


  전주댁은 머릿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하한 어휘를 다 동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수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등을 곧게 편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런 태도에는 분명 누군가의 그릇된 가르침이 들어있다. 전주댁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혼자서 깨우칠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전주댁은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영수도 아버지가 문을 잠그고 방 안으로 들어온 까닭을 눈치챘고, 당장이라도 예수를 버린다고만 하면 육친으로부터 참혹한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수는 아름다운 석양이 비치는 형장과 끝까지 믿음을 고수한 죄로 아침 이슬처럼 사라진, 망나니의 칼에 의해 베어진 후 피를 뿜으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이리저리 허공에 솟구치고 있는 순교자의 머리를 상상한다. 그런데 그것이 그에게 묘한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어머니, 저는 주님을 영접하고 이제 막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만약에 어머니한테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분이  계신다면 어머니는 그분을 쉽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 저는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그분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몸을 빌려서 태어나기는 했어도 오직 예수, 그분만이 저를 구원해 주셨고, 또 앞으로 우리 집을 구원해 주실 분도 그분뿐입니다. 사람은 육신만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구원받으려면 어머니, 아버지도 주님을 영접하셔야 합니다. 구원은 각자가 개인적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만약 제가 바라는 대로 우리 집안 전체가 구원받게 된다면, 저는 부모님 동생들과 함께 천국에 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영수의 목소리는 죽음을 각오한 것처럼 비장했다. 영수는 말을 끝내고 나서 의미를 알아채기 힘든 눈물을 떨구었다. 동섭은 생전 들어보지 못한 ‘구원’이나 ‘영접’이나 ‘천국’ 같은 이상한 단어들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혼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영혼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잠시 동안 전주댁은 장남을 측은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 이놈의 자식이 교회에서 떠들어대는 것을 바보처럼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게 틀림없어. 도대체 어린애에게 이런 신앙이 생겨날 수가 없어. 이건 잘못된 거야.


  “야, 이놈아! 송충이는 솔잎을 묵고 살아야제, 갈잎 묵으먼 죽는 거여. 내가 누구냐, 네 에미여! 부모가 자식 해 되게 시키는 거 봤어? 왜 전도사가 허는 말은 곧이곧대로 다 믿고 따름선 왜 내 말은 안 듣는 거여! 우리 집 안은 대대로 조상 생기고 제사 지냄서 살았는디 장남인 니가 탁 배틀아진 돼지 뒷발톱겉이 어긋나 부리먼 대체 어쩌자는 거여?” 

  전주댁이 보기에 영수는 한치도 물러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뽑은 털을 제자리에 집어넣을 정도로 고지식한 놈! 부모가 죽은 다음 자식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얻어먹는 것은 당연한 거야.


  “저는 오직 예수만을 믿고 의지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전주댁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장남의 뺨을 후려갈겼다. 한순간 영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온화한 빛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전주댁에게는 한없이 역겹게 느껴졌다.

  “뭐해요!”

  전주댁의 외침에 동섭은 손에 들고 있던 장작개비를 들어 영수를 후려갈기기 시작한다.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이여!” 

  동섭은 이를 꼭 다물고, 눈을 감은 채 몽둥이를 마구 휘두른다.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그는 몇 번 꿈속에서 본 적이 있는 용의 형상을 본뜬 괴물을 본다. 내가 지금 싸우고 있는 상대는 영수가 아니라, 바로 이 괴물이다. 그는 이 비열한 괴물을 향해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너 같은 귀신은 필요 없어, 꺼져!


  영수는 장작개비를 피하려고 들지도, 손을 들어서 막지도 않는다. 장작개비를 맞고 옆으로 쓰러지는 순간까지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를 유지한다. 아니, 이럴 수가! 영수의 태도에 놀라면서도 동섭은 관성의 작용으로 인해 여전히 장작개비를 휘두르고 있었다. 숭고하면서도 끔찍하기조차 한 자세, 이 괴이한 자세를 보자, 그는 맥이 빠져 장작개비를 던지고 밖으로 나왔다.

  닷새 뒤다. 동섭의 사촌 형인 한동준이 출근하는 길에 집으로 찾아왔다. 한동준은 동섭을 보자마자 비아냥거렸다. 

  “잘한다, 잘해! 자식 하나 후려잡지 못하고… 앞으로 큰집 제사는 누가 지낼란가?” 

  동섭도 예상하던 터였다. 이 문제는 한 집의 문제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집안 전체의 문제였다. 동섭은 죄송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동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있을 따름이다. 전주댁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안 단속 좀 잘해!” 

  한동준은 헛기침을 크게 하고 입구를 향해 돌아섰다. 동준이 가는 것을 보며 동섭은 이제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며 전주댁을 보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같은 집안이라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었다. 누구에게든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입 밖에 내어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주댁은 종종 쉽사리 포기하려면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뇌었다. 그러면서 영수를 옴짝달싹 못 하게 감시했다. 특히 예배가 있는 날은 감시를 강화했다. 그래도 영수도 포기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체하면서 달력으로 겉을 싼 성경책을 몰래 읽고 있었다.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한다는 핑계로도 은밀히 교회에 드나들었다. 한 마디로 영수는 예전과 다름없이 주를 믿고 사랑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이전 01화 무대일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