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났을 때였어. 중학교 2학년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원장이 의자에 앉으려는 그를 나지막이 불렀어.
“애들 말 받아주지 마세요. 국이, 동이, 혁이.”
그는 무슨 일일까 싶었어. 녀석들 모두 아주 세게, 두 대씩 손바닥을 때리고 나오는 참이었거든.
“네.”
그는 무어라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어. 말대답을 하지 않았지. 그랬다가는 어떤 불벼락이 내릴지 몰랐으니까. 이건 그가 알고 있는 상식과 배치되는 것이었어. 논술을 가르치면서 늘 생각했지만, 이 땅의 아이들에게는 말대답하는 법을 허해야 했어. 반론을 제기할 줄 모르면, 그건 논술도 아니고 토론도 아니었어.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냥 예, 라고만 하는 것은 자신의 머리로 사고할 줄 모르는, 그저 체제 순응형 인간을 키우는 꼴이었으니까. 이 땅의 아이들에게나 아랫사람에게 반론을 할 기회를 주세요, 그는 늘 생각에 머물 뿐이었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거야, 그는 원장을 보며 잠시 숨을 멈추었어. 하긴 뭐, 원장 책상에 앉아 있으면 무슨 말이고 다 들리지. 알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뭐라고 하든지, 선생이 뭐라고 하는지.
“여학생, 하나 있는데 시끄러워 공부를 못 하겠답니다. 이번에도 여학생 나가게 되면 진짜 다시 데려오기 힘들어요. 한 명이 있어야 두 명이 되고, 세 명이 되는 거니까. 내가 겨우 달래서 데리고 왔으니까, 영어 선생님도 문답식 수업 같은 거 하지 마세요.”
원장이 영어 선생 쪽을 한번 보았다가 고개를 돌렸어. 그러자 책상에 앉아 있던 그녀가 조신하게 네, 하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대답했고. 그 순간 그는 뭔가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 머릿속에 번뜩이는 번갯불을 본 것처럼 말이야. 그래, 오직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만이 원장의 목표였어. 그러니까 밖에서 보기에, 조용하게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원이지. 뭐 애들이 공부를 하든 안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던 거야. 또 하나, 역설적이지만,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이 자∼알 나오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그렇지만 공부를 하지 않고 어떻게 성적이 나올 수 있는가. 미리 정답을 알려줄 것도 아니고. 뭐 어디에서는 족집게 강의를 하는 곳도 있다던데. 그러려고 하는가.
몇 번이고 그는 푸른 잎 가운데 오직 한 송이 핀 붉은 꽃, 키 작은 여학생이 없을 때가 더 나았다고 중얼거렸어. 누구도 듣지는 못했지만. 남자애들이야 학교에서 다 아는 사이고, 늘 시끌시끌했으니 그걸 가지고 말할 애들은 없어. 그 애들에게 누구도 그런 것들을 기대하지는 않으니까. 원장은 자신의 말만 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어. 늘 그랬던 것처럼. 원장은 그가 보기에 선생들이 하는 말은 아무래도 좋은 듯했어. 선생들과 모여 회의할 때도 그랬었지. 원장은 자신이 할 말만 하고는, 그걸로 끝이었어. 제길, 그만두라고 하면 언제든 그만두어야지. 정규직도 아니고 퇴직금을 받을 것도 아니고. 4대 보험에 들어있지도 않고. 대범해져야지. 이런 일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고. 어디 장사 한두 번 하냐. 내일 일은 또 내일 생각하자. 이렇게 생각해도 울컥해진 그의 속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어. 그는 한참을 평정심을 찾기 위해 애썼어. 사람의 감정이란 늘 좋을 수는 없지. 좋을 때만 있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나쁠 때도 오지. 그러면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고. 그러나 감정이란 파도와 같아. 좋든 나쁘든 금방 왔다가 밀려가 버리거든. 언제까지 머물러 있을 것 같아도.
아무튼 원장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어. 그에게도 생각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원장에게 머리를 조아리기는 해도 시키는 대로만 살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지. 그런 인생이란, 뭐냐. 그러니까 안락을 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물의 타고난 본성대로 꿈틀대며 산다는 거였지. 물론 어떤 목표가 생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좋아. 하지만 여학생이, 그것도 혼자서, 성페로몬 냄새를 풍기는, 거친 남학생들 속에서 견디기 힘들 거야. 수컷들의 사회는 좀 살벌한 데가 있고. 어쩌면 애들이 아니라 원장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윤이가 학원 그만두고 싶다고 자주 말하는 저변에 원장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않게, 그는 우연히 원장이 한 말을 듣게 되었어. 그것은 아이들 심장에 못을 박을 정도의 폭언이었어. 여기서 그 말을 한 사람의 심정은 오죽하냐는 둥 비루한 말을 할 필요는 없어. 더 빼고 말 것도 없어. 원장은 중학교 3학년 지노나 영지에게 쓰레기라고 퍼부었거든. 학생은 뛰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성격이 고분고분 할 수도 있고, 반항적일 수도 있고. 공부를 잘하고 천분이 좋기만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 아닌가. 그러나 오십이 한참 넘은 원장이 아이들에게, 열여섯 열일곱 먹은 학생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무어라고 해도 설명이 되지 않지. 애들은 애들일 뿐이지, 홍시는 홍시일 뿐이고. 왜 애들이 그 모양이냐고 물을 수는 없어. 아직 생각이나 행동이 유치하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제어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가 생각하기에 원장은 잘못해도 크게 잘못하고 있었어.
학원도 사업이 아니었나. 교육이라는 사업. 누가 이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원장도 할 말이 있을 거야. 학원은 자선 단체가 아니야, 봉사단체도 아니고. 물론 사랑의 학교는 될 수 없어. 그러나 그가 생각할 때 원장은 제왕처럼 여겨졌어. 너희들에게 어떤 질문도 허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말할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