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여름 저녁이다. 서쪽 하늘에 길게 늘어뜨려진 낙조를 볼 수 있다. 황금색, 분홍색, 갈색 등으로 채색된 노을을 본 사람은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노을이 저렇게 아름다울 리 없다.
저녁 식사 때다. 영수가 저녁 어스름을 타고 집으로 기어들었다. 가족들은 저마다 인사를 하지만 그리 정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수가 제 갈 길로만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수만이 일어나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영수에게 달려갔다.
예수 사건이 있고 난 후 영수와 동섭 내외는 사이가 극단적으로 나빠졌다. 그러다가 영수가 공고에 진학하면서 약간 좋아졌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양극단에 서서 구경만 할 뿐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들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간 영수는 틈만 나면 돈을 부치라는 편지를 짤막하게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동섭은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마지못해 장남의 뒤를 봐주고 있을 뿐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다. 부모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식의 뒤를 무작정 봐준다는 생각을 그는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식을 그만큼 길러주었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느냐고 영수에게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 못할 뿐이었다.
전주댁이 밥을 가지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섭은 수저를 잠시 멈추었다가 말없이 식사를 계속한다. 그 때 창수가 숟가락질을 멈춘 채 영수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띄었다.
“어서 밥 먹어라.”
동섭은 창수의 태도가 이해가 갈 듯도 했다. 창수는 지금 무서운 범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어쩌다 주말에 한 번씩 집에 들를 뿐인 영수가 처음부터 창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건 물론 아니었다.
처음에 영수는 순전히 형다운 관심에서 창수가 공부하는지 감시하거나, 부모님께 순종하기를 권고하는 잔소리꾼에 불과했다. 또한 창수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한가하게 낮잠을 자는 것을 웃으며 나무라는 선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것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아마 첫 번째 검정고시에 실패하고 난 이후부터, 영수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돈 문제로 동섭 내외와 다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 때부터 영수는 창수에게 여러 가지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지 못한 몫까지 다해 부모님께 효도할 것을, 잠시도 쉬지 말고 공부할 것을,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약간 봐주는, 즉 에누리라는 것이 있었다.
검정고시에 연거푸 두 번 실패한 이후 영수는 한층 달라졌다. 소심하고 착한 평소의 인품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날이 갈수록 동섭에게 대드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고 쉽게 흥분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런 기분은 창수에게 옮아갔다. 창수의 실수를 용서하려 하지 않았고 일초도 게으름 피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혹 그런 모습을 보면 영수는 창수를 뒤안으로 불러 앞에 세워 두고 일장 연설을 했다. 열중 쉬어, 차려! 를 반복해서 시키고 자신이 한 말을 복창시키기도 했다. 심지어는 매를 드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부모가 옆에 있는 경우에도 영수는 개의치 않았다.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효도해야 한다, 또는 내가 그래도 네 형이니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거야, 라고 말하는 영수에게 동섭은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전주댁은 영수가 동생에게 거는 기대가 크고 아끼니까 그러는 것이라 역성을 들었다. 하지만 동섭은 영수의 진심을 알기 힘들었다. 영수의 태도가 위선적으로 보이고, 그에게 못한 분노를 창수에게 풀고 있다고 여겨질 때가 허다했다.
동섭은 창수에게 다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전주댁이 부엌에서 밥을 가지고 들어오자 영수는 밥을 먹기 시작한다.
“저녁 먹고 나서 갈 데가 있으니까, 기다리고 있어!”
몇 숟갈 뜨다 말고 영수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창수를 본다. 순간 창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창수는 무겁게 숟가락질을 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소나무의 옹이가 있고 결이 그대로 드러난 둥근 나무상 아래 방바닥에서 식사를 마친 전주댁도 부엌으로 나간다. 전주댁까지 일어서자, 동섭은 놀란 눈이 되었다. 평소대로라면 전주댁은 제일 늦게까지 그 자리에 눌러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아이들을 상대로 잡담, 아니 사설을 풀고 있어야 했다. 견디다 못한 동섭이 상을 마루바닥에 탕 소리를 내며 내려놓을 때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던 전주댁이 물을 가지러 간다며 제일 먼저 일어섰던 것이다. 역시 기분이 좋지 않은 거야, 떨떠름한 기분으로 앉아 있던 동섭은 서둘러 밥을 비웠다. 자식이 상전이라더니. 잠시 윗목에 앉아 담배를 꺼내다가 그는 밖으로 나온다. 지금껏 방안에서 담배를 피웠지만 갈수록 반항적이 되어 가는 영수가 무슨 말을 꺼내놓을지 불안했다.
마당에는 비가 올 때 만들어졌던 발자국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다. 사람은 늘 이런 식으로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려 한다. 그걸 남기면 어쨌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동섭은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마루에 걸터앉았다.
“창수야!”
방문이 열리고 영수가 고개를 내밀었다. 동섭도 고개를 들어 주변을 훑어보았다. 창수는 집안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이 어디를 갔지?”
영수는 마당에서 또 한 차례 창수야, 하고 불렀다. 역시 대답이 없다.
“창수 못 봤어요?”
동섭은 못 들은 체하고 고개를 돌렸다. 영수에게 창수를 안겨줘 봐야 좋은 일이 생길 리 없었다.
“이 놈의 자식이 어디를 간 거야?”
영수는 아래채의 화장실을 향해 걸어간다. 창수가 그 곳에 숨을 리는 없었다. 동섭이 알기에 창수는 한 번 발견된 곳에는 두 번 다시 숨지 않았다. 어디에 숨었을까.
야단 맞는 것을 싫어하는 창수는 늘 좋지 상황에 맞닥뜨리는 대신 은밀한 곳에 숨었다. 한 번은 어둡고 냄새나는 변소, 또 한 번은 불을 때지 않아 작은 벌레들과 쥐들이 사는 도장방, 또 한 번은 연장들을 넣어두는 헛간에서 발견됐다. 차라리 꾸중 한 번 듣고 말지, 하고 전주댁이 타일러도 창수의 숨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갔던 영수가 혼자서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동섭은 내심 쾌재를 부르며 창수가 어딘가에 잠들어 있으리라 직감했다. 동섭처럼 잠이 많은 창수는 저녁 아홉시를 넘기는 법이 없었다. 그런 창수를 보며 전주댁은 늘 걱정했다.
“아이고, 아이고 이 잠충아, 너는 필시 잠 때문에 망할 거여!”
게으르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전주댁은 몰랐다. 좀 더 사려 깊고, 민감한 감수성을 키울 여지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언젠가 며칠 동안 창수를 찾아내지 못한 적이 있었다. 창수는 집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밥만 챙겨먹을 뿐 며칠 동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섭이 일을 나가지 않고 지킬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전주댁은 창수를 찾아냈다.
“이리 와 봐요. 창수에 여기 있는 갑서.”
“어디?”
동섭이 가까이 가자, 전주댁은 마당에 놓인 쇠뒤지 문 앞에 귀를 대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정말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이 창수였다. 창수가 아니라면 경운기 소리 같은 콧소리를 낼 사람이 없었다. 동섭이 문을 열자 쇠뒤지의 물건들 속에 묻혀 웅크려 자는 창수가 있었다. 몰래 가져다 먹은 밥그릇도 있었다. 동섭은 창수의 얼굴을 보았다. 지극히 평화롭고 삶이 할퀴고 간 상처라고는 없었다. 그 때 그는 누가 이 애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가, 하고 중얼거렸다.
이윽고 영수는 찾는 것을 포기하고 푸른 가방을 챙겼다.
“막차 타고 갈라면 얼마 안 남았어요. 수강료 좀 주세요.”
영수는 마루 위에 앉아 있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주댁은 기다렸다는 듯 속옷 속에 감추어 두었던 빈 주머니를 홀딱 뒤집어 보인다.
“내가 돈이 있으먼 안 주겄냐. 너도 눈이 있으먼 이 조마이를 좀 봐라!”
영수가 입가에 능글맞은 웃음을 띤다. 이제 그런 약은 수에는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람 성질 돋구지 말고 어서 줘요.”
영수의 목소리가 험악해진다. 영수는 제 삼촌들을 닮아가고 있다, 전주댁은 생각했다.
“돈이 필요하면 미리미리 말을 할 것이지 밤중에 나타나서 무슨 돈을 달라는 것이냐?”
“앞집에 가서라도 꿔오면 되지, 뭔 잔말이 많아, 이렇게.”
영수가 거친 반말로 대꾸하자, 동섭도 녀석에게 응전할 태세를 갖추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식한테 이런 말을 들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는 전주댁의 말처럼 ‘무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 때였다.
“야, 이 놈아! 내가 그래도 니 부모여, 이 놈아! 어디다 대고 못 배워먹은 놈 겉이 싸가지 없는 소리를 허고 그래?”